봄날

봄날

 

 

아파트 정원엔 봄꽃이 다 졌는데

태화산 골짜기에 와 보니

봄은 모두 거기에 모여 있었다.

사진에 담아 가 무얼 하려는가.

산은 붓으로 그리지 않아도

마음에 향기로 배어 있는 걸

새 소리 몇 소절에 꽃은 아직 피고 있어서

문득 내 인생의 봄날에

음각으로 도장 찍힌 사람을 생각하며

그냥 산이 되어 보았다.

기다림은

삶의 옷자락에 찍혀지는 무늬 같은 것

비웠다 생각하면 언제나 지우다 만

색연필자국처럼

초록으로 일어서는 당신,

신열처럼 세월의 갈피에

숨어 있다가

고향에 오면 끓어오르는 봄날이여!

 

posted by 청라

삼충사三忠祠의 문

삼충사三忠祠의 문

 

 

궁금하지도 않는가보다

뻐꾸기가 부르는데

굳게 잠겨있는 삼충사 문 밖에서

오월의 연초록 목소리로 두드려 본다.

사람은 바뀌어도 그 자리에 서면

모두가 의자왕이 되더라.

민중들의 목소리는 늘

허공에 흘러가는 바람이더라.

아프고 아픈 것들 철쭉꽃으로

피었다가 지는데

깨져버린 마음처럼

삼충사 문은 열릴 줄 모른다.

 

 

 

posted by 청라

사월

사월

 

 

태화산 골물소리에  송홧가루 날린다.

뻐꾸기 노래에도 노란 물이 들었네.

술잔에 담아 마시네. 내 영혼을 색칠 하네.

 

다람쥐 한 마리가 갸웃대며 보는 하늘

무엇이 궁금한가 연초록이 짙어지네.

온종일 앉아있으니 내 손 끝에 잎이 피네.

posted by 청라

오월

오월

 

 

아이들 웃음소리가

이팝꽃을 피우고 있다.

리모델링을 한 거리로

도솔산 뻐꾸기 소리 

 내려오면

주문呪文처럼 조롱조롱 피어나는

황홀한 예감

오래 닫혀있던 그 사람 

마음의 창이 열릴까.

 

 

2017, 5, 6 

문학사랑124(2018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엔

당신의 창가에 커튼이 내려져도

서러움이 덜할 것 같다.

 

가로등 일찍 꺼진 거리에

수많은 꽃잎들이 불을 밝히고

안개처럼 흐르는 향기

 

도솔산 뻐꾸기 소리 한 모금

커피에 타서 마신다.

온몸으로 번져가는 나른한 행복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

꽃이 다 지지 않는 한

닫혀 진 커튼 더 활짝 열리겠지.

 

아직 잠들었던 작은 봉오리마다

황홀한 예감들이 깨어나고 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