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공화국

 

 

은밀한 것들 모두 끄집어내어

빨랫줄에 걸어놓는 일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들 모두 지나가면서

흙 묻은 작대기로 수도 없이 후려치는 일

빛나는 일인지 모르겠다.

 

지나온 길 되돌아보면

부끄러움 하나 없는 사람

어디 있을까

 

아름답던 것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일요일 아침

꽃은 피어서 무엇 하나.

 

 

2018. 2. 25

posted by 청라

우수雨水 일기

우수雨水 일기

 

 

첫울음

연초록이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우내 웅크린 가지

속살에 배어있던

종달새

아껴둔 노래

분수처럼 솟고 있다.

 

 

2018. 2. 21

 

 


posted by 청라

맹지盲地

맹지盲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을 하나씩 끊는 일이다.

 

사방으로 열려있던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문을 닫아거는 일이다.

 

어느 날 새벽 바람결에

나는 문득

내 목소리가 혼자라는 걸 느낀다.

 

무한히 열려있던 세상 속에서

한 군데씩 삐치고 토라지다가

물에 갇힌 섬처럼 내 안에 갇히고 말았다.


아, 타 지번地番의 군중들로 둘러싸여서

나는 그만 맹지盲地가 되고 말았네. 

겨울 들 말뚝처럼 

적막에 먹히고 말았네.

 

 

2018. 2. 10

대전문학80(2018년 여름호)

시문학20193월호

posted by 청라

해우소解憂所에서

 

 

들어갈 땐 고해苦海에 찌든

얼굴을 했다가도

해탈한 듯

부처님 얼굴을 하고 나온다.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얼마나 더 눈부신 일이냐.

 

염불 소리도 하루 몇 번 씩은

해우소解憂所에 와서

살을 뺀다.

 

배낭에 메고 온

속세의 짐을 모두 버리고

한 줄기 바람으로 돌아가 볼까.

 

냄새 나는 삶의 찌꺼기들 모두 빠져나간

마음의 뜰에

산의 마음이 새소리로 들어와

잎으로 돋아난다.

 

 

2018. 2. 6

문학사랑131(2020년 봄호)

posted by 청라

산정호수의 구름

산정호수의 구름

 

 

어제 벙근 구름 건져

내 어항에 심었는데

오늘 아침 꽃구름이

수련처럼 또 피어났네.

뿌리 채 곱게 캐어서

네 마음에 전하네.

 

잔뿌리도 상하잖게

네 울안에 모종하게.

서울의 하늘에서

이런 구름 보았는가.

사랑을 일고 또 일어

산의 숨결로 빚은 구름

 

 

2018. 2. 2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