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처럼 사오시라

 


訟詩



솔처럼 사오시라




산처럼 커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물처럼 부드러워

쉽게 노하지 않는 사람


한 시대를 밝히던 횃불을 끄고

四十年 넘게 걸어오신

빛나는 발자취 돌아보는 뒷모습에

은은한 난초향이 풍겨옵니다


님이여!

당신이 첫발을 딛으시던

민족의 새벽은 너무도 춥고 어두웠습니다.

황량한 역사의 들에

묘목을 심고

풍설 속에 지성으로 가꾸신 당신의 손이

삼천리 강산 곳곳마다

초록빛 광휘 찬란한 한낮을 빚으셨습니다.


잡을 수 없는 거리만큼

이제

물러나시는 당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시는 당신,

솔처럼 늘 푸르게 사오시며


무사히 맺으시는 작은 福

꽃으로 피워

가시는 발걸음마다 큰 福으로 열리소서.


<權義石 校長先生님 停年 退任式에 붙여>

posted by 청라

학같이 살으소서

 


頌詩



학같이 살으소서




나무라 치면

하늘 향해 팔벌린

낙우송이라 할까.

둥치처럼 견고한

내면의 성 쌓으시고

초록빛 그늘 드리운

당신의 가슴은 늘 열려 있어서

목마른 새

날개 지친 새들이

따스한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몸짓의 껍질을 벗기고

열려진 가슴 사이로 속을 들여다 보면

안경 너머로 건너 오는 눈빛이

너무도 정다워서 고향 같은

당신은

민족의 새벽 등불 들고

빛을 세우던 사람.


한 올씩 나눠주던 당신의 빛으로

삼천리 방방곡곡 조금씩 밝혀지고

그 빛이 다시 빛을 일구어

우리는 이리도 환한

한낮을 맞았더니다.


당신이 가꾸시던 이 꽃밭은 거칠어

아직도 많은 손길이 필요하지만

풍설 온몸으로 막으며

사십년 넘어 외로이 걸어오신

외길

질기디 질긴 끈을 끊으오니


님이여!

학같이 살으소서

학같이 살으소서.


<金洛中 校長先生님 停年 退任에 붙여>





















posted by 청라

야간 자습

 

야간 자습




투명한 유리창은

아이들의 상승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수많은 목소리에 눌려

작아질대로 작아진 아이들의 소망은

가끔은 무지개빛 호랑나비가 되지만


초록빛 자유로운 바람으로

날아오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철조망은 날개를 찢어 놓았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은 멎어 있었다


영산홍꽃 꽃가지마다

불을 지핀 오월이

산 접동새 소리로 아이들을 데리러 왔지만


유리창에 부딪쳐

힘없이 비가 되었다


어둠을 태우는 형광등

환한 불빛이

우리 아이들에겐 오히려

진한 어둠이었다










posted by 청라
 

네잎 클로버 깃발처럼 내 가슴에 펄럭이는 날은




Ⅰ. 네잎 클로버를 따서

가슴에 꽂았다.

하루 내내 초록의 문을 열어 맞아들인

그 환한 보름 같은

주문을 안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 다방 그 자리에서

오늘도 너를 기다려야지

조금은 술에 취한 듯

흔들리는 도시를 안고

굳게 옭힌 매듭을 한 올 한 올 풀면서

네 얼굴 뒤에 숨은

또 하나의 얼굴을 보리라.


Ⅱ. 빌딩 숲 그늘에 눌려 살아서

응달 어린 싹처럼 노랗게 지나온 나날

산보다 더 높이 둥그렇게 달을 띄우고

오늘만은 절대로

허리 굽히고 살지 않으리

키작은 사람은

키작은 사람끼리 어깨동무 하고

마른 수숫대 모여 겨울을 버텨 내듯이

칡덩굴로 한데 얽혀 뻗어 가리라.

네 잎 클로버잎

내 가슴에 깃발처럼 펄럭이는 날은.













posted by 청라

다듬이 소리

 

다듬이 소리




다듬이 소리 청량한 소리

하늘 끝에 하나 남은 별불을 끄고

어둠의 맨땅 위에

길게 누운 아이의 영혼은 들리는가

수목처럼 청청한 목소리로

무한의 바다에 돌을 던지는

엄마의 음성이 들리는가

결고운 細명주

한 올 한 올 다듬는 소리

입을 아이 없는 옷을 만드는

손끝에 바람 이는 마음을 아는가.


posted by 청라

온실

 

온실




아픈 마음으로

촛불을 끄지 말자


온실에 가면

가녀린 꽃잎들이 어깨동무로 팔 벌리고

굳게 겨울을 막아 서 있는 것을.


땅 밑으로 믿음의 수액을 교환하며

늘 훈훈한 마음을 지켜가는 것을


꽃들이 서로 정답게

가즈런한 햇살을 나누어 이고

풀무치 소리는 풀무치 소리대로

아무 그늘 밑에서나 반짝이게 하고…


입동 끝 회색 빛 하늘 아래

작은 새처럼 깃 부비며

혼자 떠는 사람아.


온실에 가면

눈부신 손들이 서로 도와 일으켜 세운

아침이 열리느니

아픈 마음으로

촛불을 끄지 말자.









posted by 청라

낙우송

 

낙우송




바라볼 때마다 늘

새로운 눈빛으로 말하는

나무


수만의 함성으로 솟아 올라

초록빛 순수의 꿈이

마침내 푸른 창공에 젖는다.


곧게만 땅을 딛고 선 마음

허허로워

산처럼 바다처럼 하늘처럼 크고


굳은 듯 보드라운 깃발마다

등불을 켜고

어두운 세상으로 빛을 뿌리고 있다.


새떼처럼 떠나간 사람들 돌아와

피곤한 날개 접으면

가장 먼저 가슴을 활짝 열어 놓는 나무




posted by 청라

경포대에서

 

경포대에서




유리잔 속에 가득 고인

파도 소리를 마시고

황혼이 뜨겁게 달아 오른

바다를 본다.


끝없이 도약하는 파도와

한 송이씩 피어나는

불꽃

은밀한 눈빛들이 서로 얽히고

눈가루처럼 날리는 어둠.


그대 마음은

바다 물빛이 되라.

나는 따스한 눈빛으로 투신하는

별이 되리니.


상기한 바다는 밤새도록

한 잎의 해당화를 피우기 위해

가파른 기슭을 오르내리고,


새벽이 오면 우리는

갈매기 두 마리로 날자








posted by 청라

三月

 

三月




고층 빌딩 위에 까맣게

애드벌룬 하나

젊음은 자꾸만 날아 오르려 하고

도시는 한사코

줄을 당기고 있다.


겨울이 갇혀 있던

손수건만한 나의 뜨락에

분홍빛 바람기로 피어난

진달래꽃 한 송이


아침에 씹은 풋나물들은

햇살같은 웃음으로 살아 올라서

만나는 사람마다 손잡아 흔들고 싶은

마음은 몽롱한 봄안개


실비 그치면

산꽃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고

눈물이 많은 나무는

더욱 고운 새순을 피워 내리라.


영롱한 새 소리에 청람빛 하늘이 녹아

불꽃으로 타오르는 三月에

금광을 캐듯 눈 속에 묻혔던

사랑을 캐보자

소녀야!





posted by 청라

눈오는 밤에

 

눈오는 밤에




세상을 지우며

눈이 내린다.

우리들이 걸어 온

발자욱을 덮는다


어지러운 불빛들도 차분히 가라앉고

포장마차엔

어둠이 반쯤 찬 술잔이 하나

술잔 속에 잠겨 있는 얼굴이 하나


술맛처럼 타오르는 옛날을 마시며

창밖을 보면

그믐의 막막한 어둠바다로

한 조각씩 별이 부서져 내린다.


하얗게 덮힐수록 내가슴 속에

솔잎처럼 파랗게 살아나는

그리움을 묻으라고

눈이 내린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