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의 수틀

시/제3시집-춤바위 2014. 2. 24. 09:54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