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수필/청라의 사색 채널 2015. 4. 3. 08:53

<청라의 사색 채널>

 

나를 따르라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19742월 말 ROTC 소위로 임관하여 광주 보병학교에 입소하였다. 소정리역에서부터 구보를 하여 훤히 동트는 새벽 상무대에 도착했을 때 연병장에 새까맣게 앉아있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불길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 속에서도 나를 감동하게 했던 것은 보병학교에 걸려있던 부대 구호였다. “나를 따르라!” 이 얼마나 멋진 구호인가.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도 이 구호를 썼는데 이것은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앞장선다는 뜻이며, 가장 위험한 선봉에 지휘관이 모범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 구호 속에는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적진을 향해 부하들보다 먼저 튀어나가는 용기와 부하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하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는 자신에 대한 강한 신뢰가 담겨있다.

  보병학교에 도착했던 첫날 떠오르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전율케 했던 이 구호는 내 평생 삶의 구호가 되었으며, 소대장을 할 때도, 아버지가 되었을 때도, 교직자로 교단에 서 있을 때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소대장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교사로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항시 아쉬워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은 어째서 이러한 구호 하나 마음속에 담지 못하는 것일까? 얼마 전 김영란 법(부정청탁 방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통과되었을 때 나는 한없는 기쁨 속에서도 씁쓸한 마음 한 자락 들고 일어남을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민들 누구나가 생각해도 가장 큰 부정의 소지가 있는 정치가, 국회의원에게는 이 법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었다. 관민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관피아 방지법에서 관의 핵심이 되는 사람들의 목에 줄이 없는데 이 법이 무슨 큰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전쟁터에서 자신의 몸은 뒤로 빼면서 부하들에게만 진격 앞으로!” 한다면 누가 적진을 향해 돌진하겠는가.

  이제 국회의원의 국민 지지도가 17%에서 까딱거리게 되었음을 인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우리 국회에서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꽃은 찾아볼 수 없다. 자신들의 이익과 당리당략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하고, 자신들이 요구하는 정책이 관철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강하게 반대하던 사안들도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교환조건으로 찬성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은 장외투쟁을 하다가도 국회의원 봉급 인상이나 연금 책정 같은 법안은 모두 참여하여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정치가,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나 당의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김영란 법 같은 지뢰밭도 솔선해서 앞장서고, 자식들 군대도 앞장서서 보내야 한다. 여당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 같은 것 인식하지 말고 대통령이 옳게 국정을 꾸려가도록 그림자처럼 도와줘야 하고, 야당 대표는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국가와 국민에 이익이 되는 일에는 박수쳐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위험한 곳에 자신이 앞장섰을 때, 큰 이익을 양보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따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목소리가 우렁찰 때 국민이 의심 없이 믿어주고 밀어주며 뒤를 따르는 것이다


                                                                          <금강일보> 2015년 4월 3일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