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수필/서정 수필 2016. 12. 2. 11:00

그믐달

 

 

 목요 합평회에 참석하려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하늘을 가로질러가던 그믐달이 갤러리백화점 피뢰침에 죽지를 꿰어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을. 마치 창공을 날던 새가 꼬치에 박혀 피를 흘리는 듯 애처로워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왜 갑자기 고향 산 돌무덤에 피어있던 도라지꽃이 떠올랐을까. 7, 8월이면 형님의 돌무덤에 피어 어머니 가슴에 박힌 대못을 확인시켜주던 그 꽃. 자줏빛 꽃잎이 별모양으로 벌어져 바람에 파르르 떨던 도라지꽃. 나는 도라지꽃만 보아도 눈 감고 멀리멀리 돌아가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하였다.

 

  형님은 6.25 민족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17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한다. 우리 집은 마을의 맨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집 옆으로 논이 조금 있었고, 그 너머로는 넓은 개울이 펼쳐져 있었다. 개울 건너 마곡사로 올라가는 도로가에 형님 친구네 집이 있었다. 그 날의 얘기를 하실 때마다 어머니 눈에서는 늘 장맛비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하고 친구 몇 명이 흥생이네를 갔었단다. 비가 올락 말락 그믐처럼 깜깜한 밤이었지.”

  얘기는 이제 막 시작인데 어머님은 벌써 목이 메었다.

  “아들이 오지 않아 밤늦게까지 기다리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막 눈을 붙이려고 하는데 글    세 개울 쪽에서 형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지 않겠니.”

  세상 모든 어머니의 육감은 자식을 위해선 특히 발달하였는지 멀리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아들의 소리란 걸 금방 알았단다. 신발도 신지 않고 형님이 듣게끔 마주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가 막 개울가에 다다르니 형도 비명을 지르던 채로 가슴에 와서 폭삭 안겼단다. 그리고는 그대로 실신했단다. 다음날 깨어나 헛소리를 하면서 배를 잡고 뒹굴더니 저녁 무렵 눈을 감았단다.

  “옥현이가 데려간 거여. 육시랄 놈들.”

  형님이 건너오던 개울에 오리나무보라는 깊은 둠벙이 있었고 형님 친구 옥현이란 사람이 어린 시절 빠져 죽었단다. 어머니는 늘 그 옥현 형 혼령이 가장 친하던 형을 데려갔을 거라며, 같이 들 놀러가서 형만 혼자 밤길로 보낸 형님 친구들을 원망하였다. 때로는 남자의 잠자리는 무거워야 한다.’고 교육시켰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남자는 아무데서나 잠자면 안 된다고 형들을 닦달했기 때문에 혼자 밤길을 오다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병원에 한 번 데리고 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

  내가 태어난 것은 그 해 9. 나의 출생은 어둡고 막막한 우리 집 분위기를 밝혀주는 한 줄기 빛이었단다. 나의 웃음에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녹고, 집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우리 집에 희망을 품고 온 천사였다. 어린 시절 늘 착하고 인사성 바르다고 칭찬을 받으며 자랐고, 초등학교 때 공부도 늘 1등이었으며, 6년 동안 줄곧 반장을 맡았었다. 그러나 늘 가슴에 화인처럼 박혀 지워지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한숨이었다. 내가 우등상장을 타와도, 검정고시 합격 증서를 갖다 드려도 어머니는 늘 입으로는 웃으셨지만 눈은 젖어있었다. 형님의 죽음은 어머니 가슴에 박힌 대못이었다. 평생 동안 빠지지 않을 질긴 대못이었다. 어머니의 큰 슬픔에 같이 아프면서도 나는 나의 뛰어남이 인정받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리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은근히 마음속으로는 어머니를 원망하였다.

  소나기가 한 줄금 시원하게 내린 날 아침이었다. 산밭에 들깻모를 모종한다고 어머니랑 누나랑 밭으로 가고 있었다. 그 날은 처음으로 잘 안 다니던 샛길로 접어들었는데 작은 고개를 넘어서자 어머니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칫거리셨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더니 허뚱허뚱 걸어가셨다. 어머니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감겨있었다.

  “엄니, 왜 그래요? 어디 아퍼요?”

  “저기, 저어기.”

  나는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바위 가에 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자줏빛 도라지꽃이 한 송이 바람에 떨고 있었다. 7월의 산속은 짙은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기, 뭐요? 뭐땜에 그래요?”

  “네 형, 네 형 묘

  나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기였구나. 어머니의 가슴에 피멍으로 남아 평생 한 번 활짝 웃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못하게 한 곳이. 어머니의 눈에 눈물 마를 새가 없게 만든 곳이 저 곳이구나. 나는 어머니가 산밭에 갈 때마다 멀리 돌아가던 비밀을 그 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형님은 내 의식 속에 작은 못으로 남아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릴 때마다 신나게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가신 형님에 대한 애잔한 마음은 덩달아 따라와 나의 예민한 곳을 찔러댔다. 아마 갤러리백화점 피뢰침에 걸려 파르르 떠는 낮달을 보고 갑자기 형님이 떠오른 것은 그 긴 하늘 반도 가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그믐달의 운명에서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진 유일한 그늘이었다. 나는 갑자기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시조 한 수를 읊조리고 있었다.

 

  돌무덤에 도라지꽃

  일찍 죽은 형님 영혼

 

  어머니 가슴 속에

  대못으로 박혔더니

 

  꼬치에 심장을 꿰어

  파르르르 떨고 있네.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흥얼거리다가 아직도 비극으로 남아있는 형님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종장을 바꿔보았다. 창공에 / 아픔을 삭혀 / 밝혀놓은 등불 하나.


  종장을 바꿔놓으니 형님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이 조금은 낳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창백한 낯으로 파닥거릴 그믐달을 생각하면서 형님의 다음 생애엔 창창한 온 하늘을 다 가는 초승달로 태어날 것을 빌면서, 이젠 툭하면 뛰쳐나와 가시처럼 아픈 곳을 찔러대던 형님에 대한 작은 못을 빼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2016. 12. 2

문학사랑2017년 봄호(119)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