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가슴 사이

수필/서정 수필 2017. 2. 7. 09:28

머리에서 가슴 사이

 

 

 음력 8월 열 사흘 달빛이 밝았다. 달은 롯데 백화점의 동편 하늘에 둥그렇게 떠올라 도시의 모든 불빛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온 도시를 제 세상인 양 밝히고 있었다. 모처럼 만나 저녁 식사와 곁들여 수다를 떨다가 일어선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남사장의 얼굴이 전에 없이 환하다.

  “아니 남 사장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얼굴이 완전 꽃처럼 폈는데

  “엄 선생님 저 이번 추석엔 서울 동생 집으로 차례 지내러 가요. 동생이 퇴직하고 제사 가져갔  어요.”

  남 사장의 남동생은 경찰서장까지 지낸 경찰 고위직에 있는 인물이었다. 너무 바빠서인지 아니면 기독교를 믿어서인지 평생 외아들인 동생 에게만 정성을 쏟은 부모님의 제사도 몰라라 한다고 남 사장은 늘 푸념을 하였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굶길 수 없어 장녀인 남 사장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자주 동생 욕을 하였다.

  “아니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제사 가져갈 생각을 다 했을까?”

  나의 물음에 남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그동안 출가외인인 큰누나가 부모님 제사를 지내서 늘 목에 무엇이 걸린 것처럼 답답했단다. 그래도 직장이 서울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데 제사 지내러 서울 집에 가기도 그렇고 해서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이다. 늘 머리 속에서는 제사를 가져오라 하는데 가슴 속에서 거부해서 실행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공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제일 먼저 이성이 시키는 대로 누님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자식이 제 마누라랑 와서 찔찔 울면서 죄송하다고 하는데 배길 수가 있어야지. 얄 미워서 평  생 안 보고 살려고 했는데

  말하는 남 사장의 표정이 보름달보다도 더 밝다. 평소엔 자주 우울한 얼굴을 했었는데 마음속의 근심이 모두 해소된 모양이었다. 남의 며느리로서 시집에서 친정 부모 제사 지낸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남 사장 동생도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차가운 이성은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하는데 뜨거운 감성은 내키지 않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늘 살밑에 가시가 박힌 채로 살아가는 듯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머리에서 말하는 바른 소리를 가슴이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거리인 60cm, 어떤 사람은 평생 이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몸이지만 유리된 채 괴로워하면서 살아간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머리에서 가슴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정신적으로 좁혀서 늘 머리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2017. 2. 7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