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허수아비

 

 

빈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겨울 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退任

눈부신 정적靜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깨우면.

수만 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다 벗은 채

지워지는 허수아비

 

 

2017. 12. 17

시문학20183월호

대전문학82(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