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5시집 2020. 9. 21. 09:30

 

 

꽃 지는 날 있으면

꽃 피는 날 오고

 

눈물 이운 자리에는

환한 웃음이 핀다.

 

그대여, 오늘 막막하다고

아주 쓰러지진 말게나.

 

삶은 늘 출렁이는

파도 같은 것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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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시/제5시집 2020. 9. 11. 20:47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이별을 말하던 날 빛나던 해당화는

다홍빛이 아직 다 바래지 않았는데

나는 왜 노을 지는 저녁이면 여기에 와서

쓸쓸히 바다에 취해있는가.

주인 없는 찻잔을 바라보며

긴 한숨 내뱉으면

그리움은 사랑보다도 달콤하다.

 

 

2020.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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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의 달

시/제5시집 2020. 8. 26. 17:18

죽서루의 달

 

 

동해에서 막 건져 올린 달이

겹처마 맞배지붕에 앉아 있다

 

죽서루 달빛에서는

천 년의 이끼 같은 향기가 난다.

 

삼척 사람들

오래 가는 사랑처럼

 

파도 소리에 삭히고 삭혀

만삭으로 익은 달

 

오십 여울 돌아 달려온 태백산 물도

죽서루 달빛에 취해

밤새도록 절벽을 오르고 있다.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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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시/제5시집 2020. 8. 16. 14:56

자화상

 

 

내 가슴엔 여백이 많아

채울 것도 많았지.

사하촌寺下村에 살면서

새벽에 떠내려 온 풍경소리 건지면서

부처님 미소를 마음에 심었네.

 

부처님과 가장 닮은

아이들과 살고 싶어서

나라 말을 공부했네.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세월 가는 줄도 몰랐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부처라 하고

제자들은 나를 보고 스승이라 했지만

나는 부처도 스승도 되지 못했네.

 

세월의 바퀴에 감겨

이만큼 지나와서 생각해보니

삶의 폭풍 속에서도 나를 견디게 해준 건

반짝이는 몇 편의 시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기쁨이며

행복이 되려 하네.

서툴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은

나의 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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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공주

시/제5시집 2020. 8. 4. 15:22

내가 사랑하는 공주

 

 

공산성에서 가을에 취해 있다가

금강으로 와서

얼굴을 비춰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도

코스모스 꽃씨만한 역사가 될까.

 

공주 거리를 걷다가 보면

은행잎처럼 밟히는 게 다 역사다.

 

석장리 유적지엔

못 다 이룬 구석기 시대의 사랑

무령왕릉에선 백제의 웃음소리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의 눈빛에서도

이끼처럼 푸르른

역사의 향기가 풍겨오고 있다.

 

금강교를 건너서

공주의 품에 안긴 사람들은

공주에 취해서 모두 공주 사람이 된다.

 

2020.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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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과학공원

시/제5시집 2020. 7. 18. 07:49

엑스포 과학공원

 

                                  제3

 

 

한빛탑에 올라가면

한 줄기 빛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길이 열리고

 

음과 양이 회전하는

태극 문양이

세계로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꿈과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보라

여기는 구십삼 년

대전세계박람회가 치러졌던 곳

 

민족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경제, 과학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은

대전엑스포가 밀알이었지.

 

우리의 새로운 도약은

여기로부터 힘차게 태동하였는가.

 

청년들이여!

와서 꿈을 키워라.

세계의 주역이 되는 웅대한 꿈을.

 

 

2020.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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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산 자연생태림

시/제5시집 2020. 7. 17. 07:37

식장산 자연생태림

 

 

산이 높아서

오르기 어렵다고 말하지 마라

 

대전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

 

고란초

고라니 울음

품어 키우는 곳

 

길이 있어서

고요가 깨진다고 말하지 마라

 

산사의

목탁소리는

큰 소리로 울릴수록 골짜기가 숙연해진다.

 

주엽나무 속삭이는 바위에 앉아

녹음 차오르는 숲을 바라보면

! 세상은

한 발자국만 돌아서도 피안인 것을

 

 

2020. 7. 17

posted by 청라

장태산 휴양림

시/제5시집 2020. 7. 16. 20:45

장태산 휴양림             

 

                    

반듯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와서

메타세콰이어 숲을 보면 알지

 

줄지어 도란도란 살아가는 것도

하늘만 보고

굽힘없이 살아가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카이웨이 올라

출렁다리에서 몸을 흔들어 사념을 털고

녹음에 묻혀 세상을 보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근심 있는 사람들 와서

장태산 맑은 바람에 근심을 씻게.

비단처럼 고와진 마음의 결에

새 소리 별처럼 총총 심어가면

 

어제까지 등돌리던 사람에게도

웃는 얼굴로

살며시 손을 내밀게 되리.

 

 

posted by 청라

일식日蝕

시/제5시집 2020. 7. 11. 10:40

일식日蝕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하던 운동장에

반달만큼 모인

아이들

 

느티나무에 앉은 까치들이

아이들과

수 싸움을 하고 있다.

 

달그림자 해를 가리면서

어둑해진 시골 학교

 

육십 년 만에 찾아왔더니

내년엔

폐교한단다.

 

 

2020. 8. 3

posted by 청라

갈대와 나팔꽃

시/제5시집 2020. 7. 5. 08:27

갈대와 나팔꽃

 

 

한 길 넘게 자란 갈대를 감아 올라가

나팔꽃이 방끗 피었습니다.

갈대는 압니다.

저 환한 웃음이

나팔꽃의 미안한 마음이라는 걸

갈대는 잎을 내밀어

나팔꽃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람이 붑니다.

모든 갈대들 휘청거릴 때

나팔꽃은 살며시 갈대를 안아줍니다.

흘러가는 물은 알까요.

아주 작은 것끼리도 서로 손을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2020. 7. 5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