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꽃

시/제3시집-춤바위 2009. 7. 6. 18:53

 

망초 꽃


망초 꽃도

모여서 피니

온 밭둑이 화안하데…….


가느다란 대궁들이 하나씩

서로의 아픔을 채워

혼자 있을 때 드러나지 않던

작은 꽃빛들을 싹틔우고,

등 기댄 채 어느 달 없는 밤

한 목소리로 날 세워 개화함이여!


망초 꽃도

모여서 피니

온 세상이 화안하데.

 

2009. 7, 6




posted by 청라

대청호

시/제3시집-춤바위 2009. 6. 24. 17:10

 

대청호

 

그 자리에 가면 언제나

네가 있어서 좋다.

 

초파일 무렵 긴 가뭄으로

사랑이 목마를 때

연초록 산, 하늘 보듬어 안고

누이나 어머니 같이 거기 있기만 해도 좋다.

 

내 삶의 옥타브가

너무도 길고 지루할 때

작은 물결 파랑을 일으켜

언제나 내 아픔을 닦는 노래여!

 

나는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삶의 상처를 달래주는

네 노래의 향기를 마신다.

 

대청호에 가면

시들했던 내 삶이 연꽃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묻고 떠난 사람들의

고향 이야기가

밤이면 별처럼 반짝이는 곳

 

젖을수록 뜨거워지는

네 마음의 저녁놀로

내일의 내 삶에 모닥불을 피운다.




posted by 청라

동해 기행

시/제3시집-춤바위 2009. 6. 13. 09:21

 

동해 기행


서른한 해 만에 나는

아내를 새로 사귀었다.


긴 머리만 보아도

가슴 떨리던

봄날 풀빛 같던 사랑은 흐려지고


손잡고 긴 세월의 강을 건너는 동안

아내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아

가슴 속 모닥불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우리의 여행은

목적지가 따로 없었다.

감포 대왕암에서 처음 바다에 반해

한사코 바다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마을길 산길로만 차를 몰았다.


이름 모를 고개 마루에서 울렁거리는

바다를 보며

나는 문득 아내 얼굴의 작은 실금에서

동해의 물이랑을 보았다.


발맞추어 어깨동무로 걸어오면서

무심한 내 눈빛에 상처 받고

가라앉은

처녀 적 열정을 일으켜 세워주는

동해의 바람소리를 들었다.


바다의 젊음은

세월의 창날에도 찢기지 않는 것이냐?

포효하며 달려드는 파도의 근육마다

알알이 일어서는 원시의 힘줄



방파제가 있는 조그만 횟집에서

소주 한 잔에 타서 풍랑을 마시면

바다를 못 다 물들인 금빛 햇살이

세월을 거슬러

처녀 적 회오리바람으로 일어서서


서른한 해 만에 나는

아내를 새로 사귀었다.


2009.6.13






posted by 청라

어머님 제삿날

시조 2009. 5. 31. 22:30

 

어머님 제삿날


까치소리 몇 소절이

살구나무 꽃눈을 쪼더니

해질녘 빈 가지에

두 세 송이 꽃등 밝혀

어머니 젖은 목소리

화향(花香)으로 오시다.


지방(紙榜)에 반가움 담아

병풍 아래 모셔놓고

살아생전 못 드시던

떡 과일 가득 차렸지만

향불이 다 사위도록

줄어들 줄 몰라라.


빛바랜 추억담을

갱물 말아 마시면서

벽 위에 걸려있는

초로 적 고운 사진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돌아갈 수 없는 세월.










 



posted by 청라

모정

시/제3시집-춤바위 2009. 5. 17. 23:50

 

모정


포수의 번득이는

눈빛 아래서

아기 고라니 한 마리

무너졌다.


잦아드는 숨결

그 곁에서

피어날 진달래꽃은

사정없이 피었다.


메에에… 메에에…….

애잔한 울음 하나

핏빛 꽃길 따라 흘러갔다.


열두 발짝 산등성이

넘어 산그늘

어미 고라니도 죽어있었다.


창자 열 두 토막

끊어진 채로…….


2009. 5. 17


posted by 청라

독도 2

시/제3시집-춤바위 2009. 2. 24. 19:47

 

독도 2


고국에서 불어온 바람결에

작은 씨앗 몇 개 묻어와

갯패랭이 땅채송화

붙안고 산다.


괭이갈매기도 한사코

모국어로 운다.


쓰시마 열도 휘돌아온

파도여!


두드리고 두드려서

온 몸 깎여 뼈만 남아도

멍 하나 지울 틈이 없다.


지킬 것이 많아서

나는 가라앉을 수 없다.



2009. 2. 24

posted by 청라

포기원을 쓰면서

시/제3시집-춤바위 2009. 1. 29. 09:55

 

포기원을 쓰면서



포기원을 쓰면서

걸어온 길 돌아보네.


세른 세 해 입고 있던

솜옷을 벗은 듯하네.


마음에 남은 얼룩

한숨 뱉어 지우고


푸른 깃발 내린 깃대에

무채색 깃발을 올리네.


가끔은 쉬어가며

세상 구경 하려 하네.


아이들 곁을 지키는

파수꾼이나 되려 하네.





2008. 12. 10

승진 포기원을 내면서

posted by 청라

시詩

시/제3시집-춤바위 2008. 12. 28. 18:33
 

시詩 


내 삶에 대롱을 박아

진액津液만 뽑은 노래,


세월의 바퀴 갈고 갈아

조약돌로 남은 노래,


시간의 지우개로

지워 봐도

지워지지 않는 노래…….


2008. 12. 28



posted by 청라

동학사 가는 길

시/제3시집-춤바위 2008. 12. 7. 12:27

 

동학사 가는 길


산문에 다다르기 전에

범종 소리 먼저

마중을 나온다.


새벽

산길

맑게 쓸면서 내려온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가끔은

석간수 한 모금으로도 이루어지는 것,


들리는 새소리에

초록빛이 떠돌아

구부러진 나무도 가지런한 산.


계곡 물소리 한사코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데

한 발짝씩 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아침 해가 뜨면

햇살이 가장 밝게 고이는 곳….


동학사 가는 길에는

항시 

몸보다 마음이 먼저 올라

부처님 입가에 어린 미소를 배운다.


2008년 12월 7일





posted by 청라

山房 四季

시조 2008. 11. 27. 22:05

 

山房 四季



(봄)

산 벚꽃 폭죽처럼 터져오는 산기슭을

담채화(淡彩畵) 두어 폭에 담뿍 담아 걸었더니

화향(花香)이 봄 다 가도록 집안 가득 떠도네.


(여름)

베개 밑 골물소리  꿈 자락에 묻어나서

근심 빗질하여 바람 속에 던져두고

기름진 잠결에 취해 여름밤이 짧아라.


(가을)

용소(龍沼)에 가을 달이 집 틀어 누웠기에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어 두었더니

아침에 햇살 비추니 단풍산도 따라왔네.


(겨울)

선계(仙界)에 덮을 것이 무엇이 남았다고

검은 이불 걷힌 아침 하얀 속살 드러낸 산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지워지고 없구나.


2008. 11. 26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