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시조 2008. 11. 14. 23:35

 

세월


가을 마중하러

계룡산도 못 가보았네.


얼룽이는 삶의 무늬

취해서 살다 보니


가로수 

잎 진 가지에

칼바람이 앉아있네.



출퇴근길 은행잎에

가을이 떨어져도


낯익은 풍경이라

세월 자취 모르다가


꿈 깨어

이만큼 와서

눈물 한 모금 삼켜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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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시/제3시집-춤바위 2008. 11. 9. 16:51


 

가을 산


불타는 단풍 산으로

노스님이 들어섰다.


산 빛 깨어지지 않고,

회색 승의가

단풍에 녹아든다.


작은 등짐에 담겨온

속세의 눈물들을

산문 앞에 부려 두고,


조금씩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비우고 비워 산바람이 된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가에

울던 새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저녁 어스름으로

지워지는 산들이

스님의 등 쪽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2008. 11. 9

posted by 청라

영평사에서

시/제3시집-춤바위 2008. 10. 9. 13:57

 

산자락마다 

구절초꽃

목탁소리 먹고 피어


꽃술마다

불음(佛音)에 익은

말씀 한 마디, 


한나절

향기에 젖어

마음 비우고 앉아 있다가


연못 물 보니

연꽃 옆에

웬 부처님 얼굴.

posted by 청라

노을

시조 2008. 10. 3. 22:23

 

노을


어머님이 깔아주신

아랫목 이불인가


겨울날 시린 맘으로

고향 길 들어서면


살며시 

마중 나와서

적셔주는 노을
 

노을


posted by 청라

돌탑

시조 2008. 8. 29. 13:08
 

돌탑



매미 울음 한 소절을

돌에 심어 쌓아놓고


매미처럼 진한 염원

노래로 녹여내어


온여름 산을 울리는

돌탑으로 솟았다.



posted by 청라

아버지의 길

시/제3시집-춤바위 2008. 6. 30. 12:35
 

아버지의 길


때로는 길이 아니라도

가야할 때가 있다.


아이들의 앞길을 닦아주기 위해서는

맨발로 고개를

넘어야 할 때가 있다.


한 잔 술로

고뇌의 구름 지우고

얼굴엔 늘 밝은 햇살을 거느려야 한다.


아무리 걱정을 해도

마음이 다다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믐의 어둠처럼

세상이 막막할 때가 있다.


아이들의 종아리에 새겨지는

눈금만큼

가슴 속에 회초리 자국 피멍으로 새겨 넣고


때로는 울고 싶어도

돌아서서

눈물을 말려야할 때가 있다.


2008. 6. 30 




           fatherThe way of somebody




 

Sometimes it doesn't require long.

 

There is time to go.

 

 

 

The road ahead of the children in order to wipe.

 

Barefoot in the head

 

There are times when to be over.

 

 

 

With a glass of wine.

 

And a torment of cloud

 

Should be always with bright sunshine on her face.

 

 

 

No matter how worried.

 

I have is when you come.

 

 

 

Like the darkness of the end of the month.

 

It's time to grow weary world.

 

 

 

Embedded in their calves.

 

As well as scale

 

Engrave and black cane marks in the hearts.

 

 

 

Sometimes, even if they want to cry.

 

Turned

 

Have time to dry the tears.

 

 

 

2008. 6. 30 

 


posted by 청라

엉겅퀴 꽃의 노래

시/제3시집-춤바위 2008. 6. 27. 16:12
 

엉겅퀴 꽃의 노래


내가 어쩌다

화단 구석에 뿌리를 틀고 앉으면

사람들은 나를 뽑아내려 한다.

자주색 미소

꽃잎에 아롱아롱 피워 올려도

울음보다 못한 내 웃음을 뽑아 

풀 더미 속에 던져 넣는다.

나는 못난이 꽃

화단 전체를 빛나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내 주위의 모든 꽃들을 빛나게 한다.

땅바닥으로만 기어 다니는

채송화 꽃 가난한 속삭임을 돋보이게 하고

시들어 가는 봉숭아 꽃 몇 송이도

등불처럼

찬란하게

한다.

나는 어둠이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해저처럼 깊은 가슴에서 불꽃을 피워 올리는

어둠이다.

내 작은 한숨의 줄기를 밟고 일어서는
빛부신 아침을 보며
분노의 가시 창날처럼 세워 편견 넘실대는
세상을 찔러봐도
분수처럼 솟아나는 건 내 안의 피
내일은 미라가 되어
햇볕 아래 말라갈 지라도
꽃잎을 세운다.
자주빛 작은 소망을 세운다.

2008. 6. 27


 

posted by 청라

九峰山 단풍

시/제3시집-춤바위 2008. 6. 14. 14:34
 

九峰山 단풍


한숨 턱에 닿아

요 봉우리만 올라가야지

생각했다가도


하늘 물살에 머리 젖을 만큼

올라가면

더 아름다운 산봉이 눈에 밟힌다.


岩峰을 불태우려고, 가을은

구봉산에 와서 폭죽을 터뜨렸다.


산불 놓아 산기슭을 달려 오르다

바위틈마다 기대어 서서

단풍으로 익었다.


아! 붉은 치맛자락 포기마다

펼쳐진

자연의 붓질,


뜨거운 몸을 식혀주려고

구봉산 휘돌아 흐르는 갑천도

넋 잃고 있다.


투신하는 산 그림자

차곡차곡

가슴에 품어 안고 있다.




posted by 청라

보문산 녹음

시/제3시집-춤바위 2008. 5. 23. 15:38
 

보문산 녹음



진녹색 함성이다.


그 함성에 몸을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된다.


은행동에서 일어난 바람이

술래가 되어

나를 찾으러 왔다가


내쉬는 내 숨결에

초록빛이 떠돌아

두리번대다 돌아갔다.


보문산 녹음은 너무 커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


산새소리 한 모금에도

귀를 열 줄 아는 사람은 

산그늘 속에 녹아 모두 녹음이 된다.


2008. 5. 23

e-백문학3(2020)

posted by 청라

고개

시/제3시집-춤바위 2008. 5. 16. 21:36

    고개


    장승은
    사람 목소리가 그리워
    고개 아래쪽으로 몸을 굽히고 있다.


    터널이 뚫린 뒤로
    인적 끊긴 성황당 고갯마루….


    돌탑에 담겨있던 소망들은
    장마 비에 씻기고,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성황나무는 귀가 다 달았다.


    야위어가는 길 따라
    추억이여
    너도 돌탑처럼 무너져 풀숲에 묻히겠지.


    2008. 5.16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