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무덤에서

 

 

흠 있는 것들끼리 거기 모여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준다

 

깨어진 것들끼리 거기 모여서

서로의 절망을 다독여준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은 모르리라

이렇게 어둡고

추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삶의 받침대에

손때 한 번 못 묻히고

 

지옥 불 나오자마자

산산이 깨어진 목숨이 있다는 것을

 

 

 

posted by 청라

징검다리

징검다리

 

 

하나쯤은

이가 빠져 있어도 좋다

 

네가 내게 들어와

삶을 춤추게 하던 그 다리 같이

 

등이 간지러운 시간만큼

설렘이 부풀어 올라

 

그 날 산바람에 묻어오던

뻐꾸기 소리처럼

올 것만 같다

 

한 번 업은 후에

평생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아 

posted by 청라

팔월의 눈

팔월의 눈

 

 

그 날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눈보라치는 연미산 고개를 넘으시면서

하얗게 덮인 금강의 백사장이며 빨랫줄처럼 흔들거리는

공산성의 성벽들을 샅샅이 눈에 담으셨다.

내가 이제 여기 또 올 수 있을지 몰라

아버지의 쉰 목소리에서 눈바람소리가 울렸다.

쉰아홉에 휘몰아친 팔월의 눈보라

간이 돌처럼 딱딱해져서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몇 마지기 땅뙈기로 아들 셋을 대학 보내며

꿈꾸었을

아버지의 무지개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는 벌판처럼 쓸쓸해진 그의 시선을 피해

너무도 일찍 와버린 아버지의 겨울을 생각했다

첫 월급을 타서 보낸 한약 한 재가

아버지의 삶에 이른 눈보라를 불러왔을까

아들의 첫 선물에 너무도 좋아하던 환한 얼굴 너머로

죄책감처럼 몰래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꺼질 듯 꺼질 듯 숨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삶의 된서리에도 푸르게 견뎌가던

명아주 한 포기 시들어가는 소리였다.

그 해에는 눈도 참 일찍 왔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