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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일夏日 귀향歸鄕
골목은 사막처럼 비어있었다
분꽃 같던 아이들 웃음소리 다 떠나가고
집집마다 노인들
삭정이 마른 기침소리만 남아있었다
회재를 넘으면 언제나
된장찌개 냄새 마중 보내던 어머니
옛집 마당가에 돌절구로 서있고
저녁이면 밥 먹으라 부르던 정다운 목소리에
별 촘촘 달던
감나무 묵은 둥치엔 허기진 꿈들만 무성했다
그리운 얼굴들 하나씩 소환하며
마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그리운 추억은 늦여름 파장처럼 비틀거리는데
사람 하나 산으로 가면 한 집 대문 닫히고
한 집 대문 닫히면 한 역사에 거미줄이 그어지고
풀들만 웃자란 건너 마을 초등학교에선
언제 또 옛날처럼 종소리가 부르려는지
낯선 언어들로 채워지는 손때 희미해진 거리에
가슴을 치며
홍시처럼 노을만
소멸되어가는 고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
산을 마시다
아침 인사를 하려고
창밖을 보니
산은 가을 안개에 안겨있다
붙어산다고 꼭 정다운 것은 아니다
멀리서 손에 잡힐 듯 타오르는 초록을
한 모금 마신다
래미안아파트 17층
사람 사이에 묻혀 있어도 산과 한몸이 되면
마음속에서 샘물이 솟는다
외로운 사람에겐 꾀꼬리소리를 보내주고
고달픈 사람에겐
고촉사 목탁소리를 보내 달래주고
세상의 바람소리 잠재운 내 가슴의
둥지에
이름 모를 새는 알을 낳는다
글
주홍글씨
내 삶의 지류에서 침몰하는 꽃잎인가
소쩍새 울음 끝에 향기처럼 묻어와서
가슴을 뒤집어놓고 불꽃 접는 휴화산
이 빠진 징검다리 일렁이던 인연의 줄
한 번 업은 후에 평생을 못 내려놓아
이름을 가슴에 새겨 질긴 형벌 되었다
물소리 풀 향기에도 울렁대는 돌개바람
흰 구름 가는 곳에 노을인 듯 익어있을까
청자에 상감으로 박혀 지울 수 없는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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