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솔향기 길에서 봄을 마시다

 

 

  노은동 수산시장 주차장에서 홍 선생 차로 갈아타고 대전을 출발한 것은 봄꽃이 만발했던 48일 오전 730. 하늘은 큰비라도 쏟아낼 듯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전주의 향란 씨 정년퇴임 기념으로 태안 천삼백 리 절경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솔향기길로 초대를 했는데 비 때문에 올라가보지도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여왕처럼 위해줘야 해

  문득 선영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엄숙하게 한담.

  스쳐가는 차창 밖의 봄꽃들에 정신이 팔려있는 명중이, 덕규, 선영이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들이다.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은 교사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대전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대전에 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평생을 몸담아온 교단에서 물러나 허탈해하고 있을 친구를 초대해주고, 그런 친구를 여왕처럼 위해주자는 웃기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순진한 친구들. 내 남은 인생에 저 친구들과 함께라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만대항으로 들어서며 하늘이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개었다. 푸른 바다 위로 쏟아지는 4월의 은빛 햇살, 떼 지어 나르는 갈매기 소리, 짭조름한 바다 냄새. 그래, ‘솔향기길에 간다고 그렇게 가슴이 뛰었던 것은 내 잠재적 의식 속에 4월 바다의 몽환적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풋풋하게 안겨오는 바다의 흐트러진 몸짓 위에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만대수산앞에 주차를 하고 솔향기길안내판 뒤 산길을 오른다. ‘솔향기길은 태안의 상징인 바다소나무를 테마로 하여 태안군에서 조성한 생태 탐방로인데 현재 5개 코스 51,4km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원래 이 길은 200712월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방제작업을 위해 만든 작은 길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자원봉사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 이원면민회 회장 차윤천 선생이 길을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방제작업이 끝난 이후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따라 산책로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태안군의 협조를 받아 오늘의 이 길을 완성했단다. 우리가 오늘 걸어야 할 길은 다섯 개 코스 중 제일 아름다운 제1 코스 만대항부터 꾸지나무골 해수욕장까지 10,2km. 생업까지 젖혀놓고 이 길에 매달렸을 한 사람의 땀과 의지에 머리가 숙여진다.

   등성이로 올라가며 보니 온산이 진달래꽃으로 불이 붙었다. 연분홍으로 혹은 진주홍으로 풀섶마다 바위틈마다 일어난 불길이 산봉우리 가까이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꽃 사이로 들어서면 온몸이 불길에 타오를 것만 같다. 산길을 오르는 것도 잊고 모두들 카메라에 이 화려한 봄의 향연을 담아놓느라 정신들이 없다. 왼쪽으로는 가로림만의 풍광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론 중국까지 이어진 서해바다. 봄은 관능적인 몸짓으로 여기 와서 벌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기만 하는 길이 힘들어서일까, 아래로 치달린 길이 백사장으로 이어져 있다. 해안가의 집 몇 채가 옹기종기 정답다. 여기가 큰구매수동. 들어왔다 나간 물 자국 선명한 백사장 끝 작은구매수동 쪽으로 삼형제바위가 온몸을 드러내고 있다. 같은 터전 안에 있어서 보는 장소에 따라 하나로도 보이고 둘로도 보이고 셋으로도 보이는 이 바위는 한집안에 살을 같이하는 삼형제가 서로 의좋게 지내면서 잘못된 것은 숨겨주고 잘된 것은 드러나게 하는 현상과 같다고 하여 명명되었다 한다. 가족 간의 정이 이익 앞에 산산이 부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발길 한없이 무겁다.

  이름도 정다운 붉은앙뗑이, 새막금쉼터, 큰노루금 등을 지나 당봉전망대에 다다랐다. 섬처럼 양편의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길, 바위들 절묘하게 선 절벽 끝엔 한없는 바다. 날은 활짝 개어 눈을 크게 뜨면 바다 너머 중국이 보일 듯도 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솔향기가 가득 온몸으로 들어온다. 이러다가 온통 솔향기에 절어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또 어떠리. 속진에 절은 몸을 솔향기로 목욕한다면 이보다 더 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매서운 기세는 가셨지만 아직도 드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니 거기 섬이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함초롬히 서 있었다. 해안에서 좀 떨어져 둥그렇게 솟은 모습이 신기하다. 옛날 선인들이 이 섬 이름을 지을 때 이 섬이 유일하게 하나만 남게 될 것을 예견하고 남을 여()자를 붙여서 섬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북쪽 가마봉 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여인상으로도 보이고 서쪽 끝부분 우뚝 솟은 바위가 마치 남자의 신()처럼 보인다고도 하는데 눈썰미가 없어서 그런지 도통 그런 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오묘하게도 절벽 이어진 바닷가에 어찌 또 저런 섬을 지어놓았을까? 조물주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여섬을 지나 다시 등성이로 올라가는데 앞서가던 향란 씨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길가에서 뱀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단다. 다 늙은 할머니 뭐가 매력적이라고 봐. 콧방귀를 뀌며 달려가 보니 능구렁이 한 마리 진달래꽃 사이로 황급히 몸을 숨긴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화사(花蛇)’가 생각났다. “사향(麝香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뱀을 보며 시를 읊조리다 보니 친구들은 벌써 산모롱이를 돌아갔다. 봉우리를 넘어가보니 그림같이 아름다운 해변에 펜션들이 줄지어있다. 시간이 있다면 아름다운 봄의 서정이 넘치는 펜션에서 며칠 쯤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션촌에서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이 용난굴, 해변 절벽 위에 용이 빠져나온 자국인 듯 동굴이 덩그렇다. 동굴 천장엔 안에서부터 밖까지 하얀 바위가 길게 뻗어있는데, 마치 한 마리 용이 굴을 빠져나오다가 바위로 굳은 듯하다. 용난굴 앞바다에서 일어난 파도소리는 용난굴을 채웠다가 비워지고 화석으로 굳은 용의 몸을 쓰다듬고 사라진다. 곰보처럼 고동들로 덮여있는 바위와 절벽에 서있는 해묵은 소나무들. 그럴 듯한 전설 하나 여기 산다고 고개 저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에서 수줍게 피어난 하얀 제비꽃을 보았다. 진달래 화려한 자태와 이웃해있어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 없을 것 같다. 젊었을 때 안보이던 꽃이 늙으니까 보이는 것일까. 이제 내려가면 솔향기 풍기는 봄의 향취를 한참은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정의 마지막 봉우리에서 나는 진달래꽃 향기를 마시고, 봄 바다의 파돗소리를 마시고, 봄 물기 싱싱한 솔향기를 마시고, ‘솔향기길의 청아한 봄을 몽땅 마셔버렸다


                                                                            2015년 4월 11일

                                                                           <문학사랑> 2015년 여름호(112호)

posted by 청라

장가계(張家界) 기행(紀行)


淸羅 嚴基昌

 상해 홍교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어둠 속을 달려 장가계(張家界)공항에 우리 ‘선비회’ 11쌍의 부부를 쏟아놓은 시간은 밤 12시. 비행기에서 내려 좌우를 둘러보니 어슴프레한 달빛 속에 천문산(天門山) 산봉우리가 버티고 선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좌우에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던 산의 능선들이 유독 천문산(天門山)에 이르러서만 날고뛰는 천신(天神)의 모습처럼 역동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하늘로 오르는 산이라는 산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지녔다, 산봉우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니 십삼 야월(夜月)의 달빛이 넘실거린다. 산 위에 떠 있는 달은 한국의 달과 같은데 몸은 만 리 밖 외국 땅에 서 있구나. 대전에 비해 이곳 날씨는 봄인 듯 따뜻하다. 처음 오는 외국인지라 가슴이 더욱 뛴다.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 김양(김미화: 조선족으로 길림성에서 왔다 함)과 간단한 인사를 한 후 도로 정리가 덜 되어 터덜거리는 산길을 40분 쯤 달려 도착한 곳이 개천호텔. 지금 시간은 12시 40분, 한국 시간으로 보면 1시 40분이다. 우리 일행들은 장가계(張家界) 첫 밤에 대한 설렘을 펼쳐볼 시간도 없이 각자 지정된 방에 들어가 중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밖에 나가니 심산(深山)의 아침이라 햇살이 더욱 투명하다. 대전을 출발할 때는 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날씨라 걱정을 했는데 청주 공항에서부터 우리를 인솔한 현대천 이사님이 삼일 전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빌었다더니 제법 효험이 있나보다. 이곳은 남방의 습한 날씨가 계속되므로 1년 중 140일 정도 비가 내리고, 250일 정도 안개가 낀다는데, 오늘 날씨는 비정상적으로 맑다.
 조식 후 풍경구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맨 앞에 전개되는 산봉우리 사이의 계곡이 ‘백장협’. 옛날 이 곳에서 일백 번 전쟁이 치러졌기 때문에 ‘백장협’이라고도 하고, 산의 높이가 사람 키로 일백 길 높이라서 그렇게 명명되었다고도 한단다. 계곡의 넓이는 넓은 곳이라야 50m 정도이고, 좁은 곳은 20m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양편은 도끼로 찍은 듯한 수직의 봉우리가 서 있으니, 열 명이 가로막으면 능히 백 명의 적을 감당할 수 있겠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까. 반마춘(磐馬椿), 마도석(磨刀石) 너머로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하다.

 풍경구(風景區)에 도착하여 셔틀버스에서 내리니 잡상인들이 모여든다. 연령층이 다양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심지어는 어린아이들마저 악착같이 달려든다. 도망을 가도 “천 원, 천 원” 하며 쫓아오는 모습이 거머리처럼 끈질기다. 모두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초라한 모습이다. 고랑이 깊게 파인 얼굴과 거친 피부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몇 개 사줄까 생각하였지만 상품이 조잡하여 살 만한 것이 없었다. 천 원짜리 새 돈을 지갑 가득 가져갔기에 필요 없는 것일지라도 사줄까 하였지만 쓸데없는 외화 낭비라 생각하여 냉정하게 외면하였다.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몇 분 안 걸려 ‘십리화랑’에 도착했다. ‘십리화랑’은 삭계진 풍경구의 서북부에 위치하여 있는 길이 11.6리의 협곡(峽谷)으로 계곡의 길이가 약 십 리에 이른다 하여 십리화랑이라 이름 지어 졌다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천천히 계곡으로 들어서자 잎 진 나무들 위로 솟아오른 기이한 암석의 봉우리들.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를 방불케 한다. 식지(食指)를 세워놓은 듯 우뚝 솟은 봉우리가 식지봉, 세 자매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봉우리가 자매봉, 노인이 약초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의 바위가 약초캐는노인바위, 식탁을 닮은 바위가 식탁바위, 엄마 아빠 아기를 닮았다 하여 가족바위. 암봉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일찍이 중국의 유명한 시인 려성명은 십리화랑을 유람하고 나서 “기봉(奇峰)이 다투어 하늘을 보려고 하니 천태만상(千態萬象)이 화공(畵工)을 이루노라. 수곡청계가 십리라. 사람들은 그림 속을 거니노라.”하는 즉흥시(卽興詩)로서 십리화랑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였다 하거니와 나도 모노레일에서 내려 저 기봉 속을 거니노라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쳐 하늘에 오를 것만 같다. 아름다운 경취에 취해 소리를 지르다 보니 모노레일 차는 계곡을 한 바퀴 돌아 어느새 계곡 출구에 도착해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며 우리는 천자산(千字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6명 수용의 케이블카를 타고 10여 분 간 오른 해발 1,250m의 봉우리, 천자산(天子山)! 탁 트인 시야에 펼쳐지는 비경(秘境)의 웅장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무릉원(천자산자연보호구)의 계곡과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필봉, 서해, 천자각, 신당만, 대관대, 선인교, 장군암 신병집회……. 저마다 다투듯이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혹은 날고 혹은 뛰고. 계곡을 따라 안개의 강이 흐르는 모습이 바라볼수록 신비하다. 속세의 모든 시름들이 산바람에 씻겨 사라지는 듯도 하다. 천자산의 수려한 경관을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니 선인들이 왜 한사코 산 속에 묻혀 강호가도를 즐겼는지 이해할 만하다. 문득 이백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問余何事棲碧山   왜 산에 사느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웃기만 하고 아무 대답 아니했지.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잎 아득히 물에 떠 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   여기는 별천지라 인간 세상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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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천자산>

 천자산은 명나라 홍무 년 간 토가족 수령 향왕천자(향대곤)가 이곳에서 의병들을 모아 명나라에 저항하며 전쟁을 치른 곳이기에 이름 지어진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러할까? 다기(多岐)한 바위의 모습들이 마치 천군만마가 하늘을 향해 기세당당하게 달려 오르는 듯도 하다.
 천자산 정상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한․중국식 뷔페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향이 강한 중국식 식단이 제공되었었는데 한국 관광객이 많아지자 향을 빼고 한국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식사 걱정으로 고추장, 김치, 김 등을 많이 준비하였는데 의외로 식사 걱정 없을 만큼 잘들 먹는다. 식당 좌우에서 들려오는 여행객들의 말이 대부분 한국말이다.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한국의 화폐만으로도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곳. 도무지 외국 여행을 온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장가계를 채운 여행객들의 80% 이상이 한국 사람이란다. 우리의 국력이 이렇게 커졌는가! 기꺼운 마음도 들었지만, 무분별한 외국 여행으로 근로자(勤勞者)들이 힘들여 벌어온 외화를 낭비하고 있다 생각하니 한편 마음이 씁쓸해온다.

 식사를 마치고 찾아간 곳이 하룡공원! 모택동과 함께 중국을 일으킨 하룡장군을 기리기 위해 천자산 입구에 세워진 공원이다. 동상(銅像)은 1986년 하룡원수를 기념하기위해 만들어졌으며, 높이 6,5m, 무게 9톤의 중국 근 백 년 내 이루어진 것 중 가장 크다고 한다. 하룡공원이라는 대리석에 새긴 글씨는 1995년 강택민 총서기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웅대한 천자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서있는 팔자수염 밑에 어린 미소가 웅장한 대자연을 압도하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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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하룡공원>

 다시 버스를 타고 50여 분 간 산 구비 돌아돌아 원가계에 도착. 눈앞에 펼쳐지는 암봉들이 예사롭지 않다. 위태로운 산길을 돌며 내려다보니 눈 아래는 천 길 절벽. 까마득한 바위 아래 계곡에 금실처럼 반짝이며 물이 흐르고 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까마득히 늘어선 바위산들이 날고, 뛰고, 가라앉고, 떠오르고. 준초하게 깎인 모습들이 서로 몸매를 자랑하는 듯도 싶다. 아! 자연은 왜 이리도 웅대하고 아름다운가. 마치 거대한 남화 속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나는 일찍이 기암절벽 아래 폭포가 흐르고 소나무 우거진 곳에 사슴이 뛰노는 중국 관념 산수화를 보면서 상상 속의 세계를 그렸다고 생각했거니와 여기 와 바라보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도 다 그리지 못한 듯하다. 감흥(感興)에 취해 문득 시 한 수가 떠오른다.

신선도를 보고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더니

원가계에 와서 보니
그림이 산수를 다 그리지 못하였네.

폭포 소리 녹아
솔향 더욱 그윽한 곳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면

속진(俗塵)이 말갛게 씻겨
나도 신선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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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원가계>

 마음을 졸이며 천하제일교를 건넜다. 천하제일교는 봉(峰)과 봉(峰) 사이를 산이 기묘하게 이어준 바위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면 마치 동굴모양을 이루었는데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 금편계곡에 몇 조각의 골편들로 흩어지리라. 이 다리를 건너면 99세까지 장수한다 하며, 자물쇠에 이름을 새겨 걸어놓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여 이름 새겨진 자물쇠가 끝도 없이 걸려 있다. 이 신선의 세계에 와서도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묵묵한 자연에 부끄럽기만 하다.

 비경(秘境)에 도취하여 정신을 잃어버린다는 미혼대를 바라보며 걸은 걸음이 어느덧 백룡엘리베이터. 해는 벌써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이 엘리베이터는 수직 높이가 335m, 운행 고도가 313m인데 그 중 156m는 산체 내 동굴이고, 171m는 산체 외부에 붙인 수직철강구조로 이루어졌다. 3대의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운행되면서 삼림계곡, 금편계, 수요사문으로부터 원가계, 오룡채, 천자산을 연길시키는 중요한 교통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100% 투명도의 엘리베이터이며, 세계에서 제일 높은 2층으로 된 관광전용 엘리베이터이며, 세계에서 제일 빠른 관광전용 엘리베이터라는 가이드의 자랑을 들으며, 중국도 세계 제일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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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백룡 엘레베이터>

 시간에 쫓겨 금편계곡 입구에서 돌아서서 나오는데 건너편 암봉 꼭대기에 마지막 햇살이 눈부시다. 금편계곡은 길이 7,1Km의 아름다운 협곡(峽谷)으로 금편계가 조란조란 흐르는 양 편엔 금편암, 문성암 등의 멋진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무성한 원시림 속에서 삼림욕도 할 수 있다 한다. 서두르면 다녀올 수 있다고 우기는 우리 일행에게 산골의 날씨는 곧 어두워져서 위험하다고 버스에 몰아넣는 가이드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석식 후 장가계 써꺼스를 구경하고 아내와 나란히 누워 마사지를 받았다. 스물이나 되었을까? 어린 소녀에게 몸을 맡기니 손길 닿는 곳마다 온 몸이 간지러운 듯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여행 계획의 일부라니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현재를 즐기기로 마음 을 바꿨다, 살짝 눈을 뜨고 아내를 보니 외간남자에게 몸을 맡겨 놓고 나른한 행복에 취해 있다. 샘이 나서 기침을 해봐도 눈을 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외국 풍물을 경험해 보는 건데 어떠리. 나도 모든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맛보기로 하였다.
 장가계 마지막 밤을 위한 파티가 있다고 하길래 마사지 끝난 후 강 부장 방으로 모였다. 나도 한국에서 준비해온 소주 댓 병과 마른안주를 준비하여 건너갔다. 사모님들과 함께 모여서 도란도란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가족같이 정겹다. 어제 처음 만났을 때 서먹서먹하던 사모님들도 남자들보다 오히려 더 친해진 모습이다. 남방과일의 여왕이라 자랑하며 송 교장 사모님께서 사 오신 듀리안을 먹어가며, 냄새의 지독함에 인상을 쓰면서도 모두 즐겁게 깔깔거렸다. 조국에서의 조그만 인연들이 모여 외국 여행길 같이하는 동안에 어느덧 흠뻑 정이 들어버린 사람들. 그들의 웃음소리 너머로 남방의 풋풋한 정취 넘치는 장가계 마지막 밤은 침침히 깊어갔다.  
 이튿날 아침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눈이 떠진 것은 새로운 경관을 구경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비경 속에서 신선이 되어 노니는 꿈은 너무도 짧아 어제 밤 술 몇 잔에 취해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은 환하게 밝아버렸다. 오늘 아침 첫 여정은 황룡동굴. 늦게 도착하면 사람이 많아 구경도 잘 할 수 없다는 가이드의 재촉 때문에 아침도 뜨는 둥 마는 둥 버스에 올라 황룡동굴 근처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각다귀같이 달려드는 잡상인들을 피해 1km쯤 오르다 보니 가이드 김양이 중국 전통 화장실을 구경하란다. 우리 일행 모두 우루루 들어가 보니 대변소 칸칸 모두 문이 없어서 볼일 보는 동안 신체의 은밀한 부분까지 사정없이 노출될 것 같다. 도랑 식으로 되어 5분마다 물이 쏟아져 나와 변을 씻어내는데 첫 변소나 마지막 변소에 잘못 앉으면 똥물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 하니 불안해서 볼일인들 잘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기념사진을 찍어줄 테니 포즈를 취해보라고 사모님들에게 카메라를 들여대니 모두들 기겁을 하고, 아내는 주책없다고 하얗게 눈을 흘긴다. 이런 야만인들이 어디 있느냐고 푸념하는 사모님들을 이야기를 들어가며 몸은 어느덧 황룡동굴 앞 광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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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황룡동굴>

 황룡동굴은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용암동굴로서 1983년에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상하 총 4층으로 되어있으며, 총 면적은 618ha, 동굴을 지탱하고 있는 종유기둥의 길이를 모두 합한 것이 14,000m에 달하는 규모를 지녔다 한다. 한국에서 이미 ‘성류굴’, ‘고수동굴’, ‘환선굴’ 등을 두루 섭렵한 바 있기에 중국의 동굴이라고 별 수 있으려나 하는 시큰둥한 생각으로 황룡동굴속에 들어갔지만, 100걸음을 채 걷지 않아 나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나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나타나는 지하 광장. 아! 얼마나 웅대하고 신비로운 비경인가. 4, 5백 평 정도의 공간에 마치 전시라도 해 놓은 듯 다양하고 기묘하게 늘어선 석주(石柱)들. 천장은 하늘처럼 높아 수억 년 연륜 속을 자란 석회석 기둥들도 끝까지 다 도달하지 못하였다. 환선굴의 규모와 성류굴 고수동굴의 오묘함으로는 도저히 이 동굴과 비교할 수 없었다. 어제 원가계 경관을 보며 놀랐던 가슴이 이 지하세계의 신비로움을 보고는 놀랄 기운마저 잃고 말았다. 이 동굴 속에서 가장 기이한 것은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는 종유석 기둥으로 높이가 27m에 달한다고 한다. 1998년 중국 평안보험공사라는 보험회사에서 인민페 1억 원의 보험을 들었다고 하니 이 동굴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하겠다. 물기로 반들거리는 것이 젊은 종유석이고, 하얗고 푸석거리는 것이 늙어 죽은 종유석이란 가이드 김양의 설명을 들어가며 삶과 죽음의 이치가 돌에게까지 미친다는 생각에 잠깐 애상에 잠겼다. 동굴 속에 있는 1곳의 물구덩이와 2곳의 강물, 3개의 폭포, 4개의 연못, 13개의 궁전을 구경하고, 20여 분간 배를 타고 도달한 곳은 동굴의 출구, 아쉬운 마음이 동굴 종유석마다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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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보봉호>


 버스를 타고 보봉호(寶峰湖)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 시커먼 아저씨들이 가마를 타라고 유혹한다. 다리 성한 사람이 웬 가마냐고 거절하고 나서 일행들끼리 웃고 떠들며 보봉호로 오르다 보니 산 동굴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옛날엔 계곡에 자연적인 폭포가 있었는데, 산 중턱에 터널을 뚫어 호수의 물을 50여m 아래로 낙하시켜 인공폭포를 만들었다고 한다. 폭포만 살짝 내비치고 숨어있는 호수를 찾아 허위허위 고개를 올라가니 저만큼 발밑에 그림처럼 호수가 누워있다. 원래는 수력발전소였던 것을 말레이시아 상인이 투자하여 관광 명소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30여 명이 탈 수 있는 유람선(遊覽船)에 올라 호수를 보니 거울같이 깨끗한 물에 기이한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잠겨 있다. 녹음이 우거지기 이른 철인데도 물은 산으로 인해 푸르고, 산은 물로 인해 더욱 푸르다. 산봉의 호수가 평화롭기 때문일까. 물속에 떠가는 구름마저 여유롭다. 아귀고기의 슬픈 전설을 들어가며 산봉에 취해 물 위를 떠가다 보니 문득 토가족 전통 복장을 한 예쁜 소녀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 남자에게 구애(求愛)하는 노래라고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도 청아하여 오히려 구슬프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부르는 인간의 노래는 오히려 자연의 조화를 깨는 불협화음이 분명할 텐데도 토가족 소녀의 노래는 묘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계곡 속을 울린다. 자연을 마음에 담으면 모두 신선이 되는 걸까. 선비회 22명의 모든 부부들도 모두 한 점의 욕심이 없이 자연에 취해 있으니 이 곧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점심을 먹고 천문산(天文山)엘 올랐다. 장가계에 첫 발을 내딛던 그 밤에 넘실거리던 달빛 아래서 나를 유혹하던 산이다. 장가계 시내의 케이블카 승차장에서 미지의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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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천문산>


 대 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정상까지는 7.2Km. 장가계 시가지 건물들의 지붕을 넘고, 토가족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골 들판과 마을을 지나, 케이블카는 드디어 가파른 산을 오른다. 발밑은 천야만야의 낭떠러지, 앞에는 병풍처럼 막아선 절벽. 떨어질 듯 부딪칠 듯 위태위태하게 헐덕이며 케이블카는 산을 올라가고 있다. 칼끝 같은 기봉(奇峰)들이 점차 낮아지고, 멀리 보이던 천문동굴이 가까워진다. 원래는 까마득히 케이블카 밑으로 구렁이가 꿈틀거리듯 미로처럼 걸려있는 도로를 통해 셔틀버스로 천문동굴까지 갈 수 있다는데, 아직 산 길 위 응달에 잔설이 남아있어 지금은 갈 수 없다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김부장님 사모님도 이 위대한 자연 앞엔 마냥 눈감고만 있을 수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연신 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아! 이놈의 나라는 어찌하여 절경(絶景) 아닌 곳이 없는가! 산은 산대로 기묘한 바위들을 뿌려놓아 비경(秘境)을 이루고, 호수는 호수대로 맑고 투명한 물 위에 그림같은 산을 담아 신비롭고, 동굴은 왜 그리 크고 넓은 곳에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석주(石柱)들의 숲을 만들어 해동(海東)에서 온 나를 이리 기죽게 만드는가. 나는 처음으로 이 광활한 중국의 국토에 대한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천혜(天惠)의 아름답고 웅장한 국토에 사는 사람들이 오만한 중화사상에 취해 왜 그리 편협하고 독선적인 지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내일은 소주에 가서 졸정원과 한산사, 호구사의 호구탑을 보야야 한다.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이 아름다운 신선의 마을, 장가계의 모습을 머릿속 에 깊이깊이 새겨두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