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접시

淸羅 嚴基昌
칼바람에 갈린 눈부신 햇살이
이마 위에 찰랑이는 가을날 오후
막막한 어둠이 발밑에 질척이는
지하도 입구로 들어서면

강가에 떠밀려와 버려진
고무신처럼
울 밖으로 밀려난 앞못보는 아이
아이가 받쳐든
빈 접시 하나,

팔매질 하듯 던져 넣은
동전 몇 개와
누군가 장난으로 넣고 간
낯설은 토큰
못다 채운 빈자리에는
겨울이 일찍 와 있다.

풀꽃배 띄워 보내던
어릴 적 꿈들이 죽고
달맞이꽃 피는 동산에서
손 마주 잡아주던
따뜻한 피도 식은 도회의 그늘 밑에서
절규하는 소리로 치켜든
빈 접시 무겁게 가라앉은
밤이 떠나지 않는 하늘
별 하나 못 뜨는 하늘

내가 꽃아주는 억새꽃으로
오늘밤 네 고향 산에
칠색 영롱한 무지개를 걸거라.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