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리랑

시/제7시집 2026. 4. 14. 06:33

우리 아리랑

 

 

강의 가슴에서 핏물이 배어나오듯

심금心琴을 울려주는 애잔한 가락

오천 년 흰옷의 애환哀歡 깃발처럼 펄럭이며

광화문 목련 봉오리에 봄이 켜지고

아지랑인 듯 아롱대는 세상은 온통 보랏빛이다

산이 많아서 삶의 고개도 많았던가

눈물의 골짜기 굽이굽이 헤어보면

밟히다 밟히다 질경이처럼 꺾인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

아리랑이여

잡는 손 뿌리치고 강을 건너다 빠져버린

백수광부白首狂夫를 그리는 공후箜篌의 흐느낌과

행상行商을 나가 진 곳을 디딜까 남편을 기다리며

밤새 두드렸을

다듬이소리에 담겨있는 아낙네의 기도祈禱

함께 버무려져 연분홍 꽃으로 피어난

우리 노래여

눈물도 망초처럼 어깨동무로 함께 하면

별이 되어 반짝이는 것을

노래 하나로 세계를 불러 모아

노랫가락에 어깨춤으로 풀어내는 정갈한 슬픔

신화神話의 봄은 서울에서 일어서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한 몸 되어 출렁이는 오대양 육대주는

모두 아리랑이다

 

 

 

posted by 청라

그리움 옹이 박혀

시조/제3시조집 2026. 3. 6. 09:20

그리움 옹이 박혀

 

이 빠진 징검다리

뻐꾸기 울던 날에

한 번 건너 준 후

그리움 옹이 박혀

평생을

내려놓고

업고 가는 사람아

posted by 청라

설렘으로 오는 봄

시조/제3시조집 2026. 3. 1. 19:43

설렘으로 오는 봄

 

 

골짜기 눈 녹는다고

산비둘기 구구구구

 

복수초 꽃 핀다고

설레어서 구구구구

 

봄 아직 반도 못 왔는데

목이 벌써 쉬었다

posted by 청라

세석평전의 오월

시조/제3시조집 2026. 2. 18. 19:53

세석평전의 오월

 

 

뻐꾸기 한 푸념이

한 송이씩 망울 틔워

메아리 번지듯이

산비탈을 오르다가

철쭉은 박장대소로

꽃 바다를 이뤘다

 

산은 나를 불러놓고

온종일 웃기만 하고

나는 산이 되지 못해

염화시중 못 이뤄도

꽃빛에 물이 들어서

근심 바랑 가볍다

 

posted by 청라

조약돌

시/제7시집 2025. 12. 9. 13:20

조약돌

 

 

저 애들이 처음부터

저리  올망졸망 했던 건 아니다

 

우주만 한 바위였다가

 

뿔처럼 모났던 젊은 날의 객기

다 쪼아내고

 

사랑의 기쁨과

멍울처럼 금간 아픔도 다 깎아내고

 

마침내 오랜 세월의 숫돌에

모든 미련까지 다 갈아내어

 

밤톨만 해진 화두話頭만 남아

저리도 반질반질

빛들을 내는 것이다

posted by 청라

산촌 서정

시조/제3시조집 2025. 12. 7. 08:52

산촌 서정

 

 

산촌 살림에는

온 마을 다 한 식구라

 

해질녘 다랑논을

반달만큼 못 채우면

 

사립문 열린 집마다

손 하나씩 보태준다

 

 

젊은이는 돈 번다고

도시로 다 떠나고

 

홀아비 외딴 집에

지난밤 불이 꺼져

 

정 많은

큰소쩍새는

밤새 안부 묻는다

posted by 청라

우리들의 천국

시/제7시집 2025. 12. 6. 10:03

우리들의 천국

 

 

서귀포 앞 바다는 지금도 만원이다

 

고추냉이 맛 세상의 바람도

여기 와서는

숨죽은 채 야자수 잎에 머물고

 

흰 말떼처럼 갈기 휘날리는 파도는

초원을 휘저으며 뛰놀고 있다

 

전생의 반쪽을 만나듯

서귀포 동백꽃은

봄이 설레어서 몰래 붉는가

 

밭머리에 선 돌담처럼

가슴마다 구멍 뚫린 채 한숨에 젖던 사람들도

모두 꽃빛으로 향기롭게 익는구나

 

단비에 머리 감은 한라산아

정갈한 네 정수리까지 다 드러나는

아침이 오면

 

외돌개 눈망울 걸어놓은 먼 수평선에

흰 돛배 하나 떠서 오겠지

 

 

 

 

 

posted by 청라

산사 가는 길

시/제7시집 2025. 11. 28. 07:45

산사 가는 길

 

 

풍경소리는

그냥 내려오는데

나는 마중 나왔다고 반겨주고

 

산꽃 향기는

어제나 그제나 똑같은데

오늘만 특별히 향기롭다고

박수를 친다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엔

초록을 밟고 가는 바람에도

가슴이 뛴다

 

불당 가득 채운 미소에

어서 기대고 싶은 욕심에

지름길로 들어서면

 

돌아가는 길이 빨리 가는 길이라고

뻐꾹새 운다

posted by 청라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

시/제7시집 2025. 11. 22. 10:48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처럼

능소화 송이들 중 그냥 한 송이

 

어울려 핀 모습은 화려하지만

자세히 보면

미소 뒤에 감춰진 저 단단한 멍울

 

아프다 아프다 해도 소용없으니

능소화는

그냥 입다물고 시들어간다

 

그래도

이름 없이 돋았다 지는 풀이 아니라

꽃으로 핀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픔 없이 사는 것이 어디 있으랴

 

posted by 청라

탱자 가시

시/제7시집 2025. 11. 20. 15:16

탱자 가시

 

 

예쁜 꽃으로 필 야망은 조금도 없다

 

연분홍 향기로 몸단장하고

꺾어갈 사람 애타게 기다리며

가슴 졸일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항시 하늘 향해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벌 나비도 새들도 안을 수 없는

천형의 몸이라 해도

 

부정한 것들에 몸을 숙이지 않고

옳은 것은 옳다고 지키며 사는

진초록 마음을 지닌 사내로 살겠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