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5시집 2020. 9. 21. 09:30

 

 

꽃 지는 날 있으면

꽃 피는 날 오고

 

눈물 이운 자리에는

환한 웃음이 핀다.

 

그대여, 오늘 막막하다고

아주 쓰러지진 말게나.

 

삶은 늘 출렁이는

파도 같은 것

 

 

2020. 9. 21

posted by 청라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시/제5시집 2020. 9. 11. 20:47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이별을 말하던 날 빛나던 해당화는

다홍빛이 아직 다 바래지 않았는데

나는 왜 노을 지는 저녁이면 여기에 와서

쓸쓸히 바다에 취해있는가.

주인 없는 찻잔을 바라보며

긴 한숨 내뱉으면

그리움은 사랑보다도 달콤하다.

 

 

2020. 9. 11

posted by 청라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시정신

엄기창론 2020. 9. 1. 07:45

이달의 문제작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시정신

 

                                                    김기덕문학평론가

 

 

  아인슈타인은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단 하나의 이론, 우주의 모든 섭리를 설명할 수 있는 원리를 찾고자 연구에 매진하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인슈타인이 연구하던 통일장이론은 지상의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끈이론이라는 새롭고 급진적인 이론을 통해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충격에 빠질 것이다. 끈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실은 실제와 공상과학이 뒤섞인 세계라는 것이다. 만물의 이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끈이론의 기본 개념은 제일 작은 입자에서부터 머나먼 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물질이 단 하나의 끈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그 끈은 진동하는 에너지이며, 우주는 진동하는 끈들의 연주로 만들어낸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말과 행위로써 자신을 드러내도록 배운다. 다양한 공동체 안에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구성원으로서 언어 소통을 통해 사회적 참여와 보편적 사고를 가지며, 자기 이해를 위한 모든 만물로 이루어진 끈을 향유한다. 세상 만물은 끈 아닌 것이 없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끈에 의해 연결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끈의 에너지들이 인간을 구성하고 사고하게 한다. 세상에 충만한 끈의 에너지들은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나의 삶은 독자적인 삶이 아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과도 유기적 관계를 가지며 공동체적 관계를 이루고 살아간다. 인간은 공동체적 삶의 관계 속에서 오류가능성의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고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해 나간다. 그러한 자아성찰로 시인들은 언어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하나의 끈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삶의 거대한 융합을 거쳐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이다.

 

고향 마을에 하천 공사를 한다고

포크레인 여러 대가 하천 바닥을 퍼내고 있다.

작은 새의 보금자리도 막 피어나는 풀꽃들도

사정없이 부서져서 트럭에 실려 가고 있다.

전두측두엽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뇌 속처럼

수없이 깎여나가는 소중한 추억들

톱날 같은 삽날이 부릉거릴 때마다

아름다운 내 어린 날들이 수없이 파여져 나간다.

아내의 기억 속에서도 하루에 몇 십 조각씩

금가루들이 부서져 내린다.

(중략)

망각의 날개는 왜 가장 아름다운 것부터 지워가는 것일까.

하천 정비가 끝나면

기억할 것들도 사랑할 것들도 모두 파여 나간 고향 냇가에는

머물 곳을 잃은 물들만 외면한 채 달려가겠지.

포크레인의 폭력에 아름다운 어린 날은 모두 깨어졌지만

힘겹게 혼자 남아 뒤뚱대는 배꼽바위 모양으로라도

아내의 수첩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고 싶어서

오늘도 아리셉트를 챙겨주기 위해 아내의 잠을 깨운다.

-엄기창,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일부

 

  엄기창 시인은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뇌와 포크레인에 파괴되어 가는 고향마을을 대비하여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아내의 뇌 속에서 뇌세포들이 파괴됨으로써 금가루 같이 아름다운 기억들이 사라져간다. 그것은 어린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고향이 개발의 시대적 흐름에 밀려 파괴되는 것과 동일시된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자연의 파괴를 망각으로 환치시켜 아름다운 순간들이 다 지워진다 해도 아내의 수첩 속에서만큼은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사랑을 표현했다.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를 지켜보는 삶은 절박한 현실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포크레인이 하전을 파괴할 때 엄기창 시인의 어린 날들이 파여져 나가고, 아내의 기억 속에서 금가루들이 부서져 내리는 것은 운명공동체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의 하천의 파괴는 곧 엄기창 시인의 추억의 파괴이며, 아내의 소중한 기억의 파괴가 된다. 그 속에서 힘겹게 혼자 남아 뒤뚱대는 배꼽바위 모양으로고향에 남듯 아내의 수첩 속에 남기를 소망하는 것은 아내와 동일화된 존재로서의 간절한 염원이 된다. 변하는 현실 속에서 엄기창 시인은 시간을 뛰어넘어 천륜적 사랑의 끈을 끝끝내 놓지 않으려 한다.

 

시문학20209월호(590)

 

 

posted by 청라

죽서루의 달

시/제5시집 2020. 8. 26. 17:18

죽서루의 달

 

 

동해에서 막 건져 올린 달이

겹처마 맞배지붕에 앉아 있다

 

죽서루 달빛에서는

천 년의 이끼 같은 향기가 난다.

 

삼척 사람들

오래 가는 사랑처럼

 

파도 소리에 삭히고 삭혀

만삭으로 익은 달

 

오십 여울 돌아 달려온 태백산 물도

죽서루 달빛에 취해

밤새도록 절벽을 오르고 있다.

 

 

2020. 8. 26

posted by 청라

장마

장마

 

 

하늘의 숨결 모아

대청호는 만삭이다.

 

어릴 때 묻고 떠난

내 풋사랑 익었을까

 

그리움 연꽃으로 올라

대청호는 순산이다.

 

 

2020. 8. 18

posted by 청라

자화상

시/제5시집 2020. 8. 16. 14:56

자화상

 

 

내 가슴엔 여백이 많아

채울 것도 많았지.

사하촌寺下村에 살면서

새벽에 떠내려 온 풍경소리 건지면서

부처님 미소를 마음에 심었네.

 

부처님과 가장 닮은

아이들과 살고 싶어서

나라 말을 공부했네.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세월 가는 줄도 몰랐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부처라 하고

제자들은 나를 보고 스승이라 했지만

나는 부처도 스승도 되지 못했네.

 

세월의 바퀴에 감겨

이만큼 지나와서 생각해보니

삶의 폭풍 속에서도 나를 견디게 해준 건

반짝이는 몇 편의 시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기쁨이며

행복이 되려 하네.

서툴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은

나의 노래로.

 

 

 

posted by 청라

내가 사랑하는 공주

시/제5시집 2020. 8. 4. 15:22

내가 사랑하는 공주

 

 

공산성에서 가을에 취해 있다가

금강으로 와서

얼굴을 비춰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도

코스모스 꽃씨만한 역사가 될까.

 

공주 거리를 걷다가 보면

은행잎처럼 밟히는 게 다 역사다.

 

석장리 유적지엔

못 다 이룬 구석기 시대의 사랑

무령왕릉에선 백제의 웃음소리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의 눈빛에서도

이끼처럼 푸르른

역사의 향기가 풍겨오고 있다.

 

금강교를 건너서

공주의 품에 안긴 사람들은

공주에 취해서 모두 공주 사람이 된다.

 

2020. 8. 4

 

 

posted by 청라

엑스포 과학공원

시/제5시집 2020. 7. 18. 07:49

엑스포 과학공원

 

                                  제3

 

 

한빛탑에 올라가면

한 줄기 빛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길이 열리고

 

음과 양이 회전하는

태극 문양이

세계로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꿈과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보라

여기는 구십삼 년

대전세계박람회가 치러졌던 곳

 

민족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경제, 과학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은

대전엑스포가 밀알이었지.

 

우리의 새로운 도약은

여기로부터 힘차게 태동하였는가.

 

청년들이여!

와서 꿈을 키워라.

세계의 주역이 되는 웅대한 꿈을.

 

 

2020. 7. 11

 

posted by 청라

식장산 자연생태림

시/제5시집 2020. 7. 17. 07:37

식장산 자연생태림

 

 

산이 높아서

오르기 어렵다고 말하지 마라

 

대전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

 

고란초

고라니 울음

품어 키우는 곳

 

길이 있어서

고요가 깨진다고 말하지 마라

 

산사의

목탁소리는

큰 소리로 울릴수록 골짜기가 숙연해진다.

 

주엽나무 속삭이는 바위에 앉아

녹음 차오르는 숲을 바라보면

! 세상은

한 발자국만 돌아서도 피안인 것을

 

 

2020. 7. 17

posted by 청라

장태산 휴양림

시/제5시집 2020. 7. 16. 20:45

장태산 휴양림             

 

                    

반듯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와서

메타세콰이어 숲을 보면 알지

 

줄지어 도란도란 살아가는 것도

하늘만 보고

굽힘없이 살아가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카이웨이 올라

출렁다리에서 몸을 흔들어 사념을 털고

녹음에 묻혀 세상을 보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근심 있는 사람들 와서

장태산 맑은 바람에 근심을 씻게.

비단처럼 고와진 마음의 결에

새 소리 별처럼 총총 심어가면

 

어제까지 등돌리던 사람에게도

웃는 얼굴로

살며시 손을 내밀게 되리.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