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시/제6시집 사람의 향기 2022. 12. 1. 17:17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가을은

오래 묵혀두었던 그리움을

꺼내보게 하는 계절

 

은행잎마다 내려앉은

노란 그리움에 같이 물들다 보면

서랍 속에 넣어둔 편지를 읽게 된다

 

그리움은 나비이다

 

보고싶다보고싶다보고싶다

갈바람 한 줌에도

무수히 날아오르는 그리움의 군무

 

진정한 그리움은

너에게 닿지 못 한다

간절함의 무게로 떨어져 흙이 된다

 

줍지 마라

흘러간 사랑은

흙이 묻은 채 그냥 놓아두어라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posted by 청라

가을의 파편

시/제6시집 사람의 향기 2022. 11. 12. 12:01

가을의 파편

 

 

조그만 은행잎엔

오롯이 가을이 담겨있다

 

속삭이는 햇살과 나른한 눈빛

포근히 안아주는

고향의 마음

 

나는

가을이 가장 눈부시게 내려앉은

은행잎 한 장 가슴에 깔고

세상에 반짝이는 모든 슬픔들

널어 말린다

 

꽃처럼 떨어진 젊음들과

레일에 깔린 비명

노릇노릇 향기롭게 말라갈 때쯤

 

!

세상의 눈물들아 이젠 모두 가자고

나비처럼 모여 팔랑대는 가을의 파편

 

posted by 청라

경고

시조/제3시조집 2022. 11. 3. 07:37

경고

 

 

있을 때 이 말 하고

없을 땐 저 말 하고

 

수시로 말 바꾸어

세상을 희롱하면

 

언젠가 큰 코 다치리

큰 일 하는 사람들아

posted by 청라

단풍

시조/제3시조집 2022. 10. 26. 07:30

단풍

 

 

 

 매미들아 지난여름

한스럽게 울어대더니

 

잎새마다 진한 멍울

양각으로 찍혔구나

 

사람들

가슴마다로

옮겨 붙는 저 아픔

posted by 청라

시/제6시집 사람의 향기 2022. 9. 23. 08:45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세상을 환하게 한다

 

쓰르라미 울음으로 저물어가는

여름의 황혼 무렵

 

지다 만 능소화 가지 끝에 피어난

저 진 주황빛 간절한 말 한 마디

 

바람의 골짜기에

향기로운 웃음을 전하면서

 

너는

사랑을 잃은 친구의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해준다

 

보라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남의 살 찢으려고 날을 세우는 것들

널린 세상에

 

벌 나비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감싸 안고

젖을 물리듯 자장가 불러 주는

세상의 어머니여!

 

내생에서는 잠시라도

너처럼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다

posted by 청라

어머니가 고향이다

시조/제3시조집 2022. 9. 7. 21:40

어머니가 고향이다

 

 

어머니 없는 마을은 고향도 타향 같다

어둔 밤 재 넘을 제 마중 보내 반긴 불빛

된장국 끓이던 향기 잡힐 듯이 그립다

 

빈 집의 살구꽃은 왜 혼자서 타오르나

돌절구 돌 맷돌은 버려진 채 비를 맞고

노을 녘 부르던 목소리 귀에 쟁쟁 울려온다

 

어머니 가시던 날 고향도 따라갔나

어린 날 추억들은 밤 새 소리에 아득하다

허전해 돌아가는 발길 어머니가 고향이다

 

 

posted by 청라

벌레의 뜰

벌레의 뜰

 

 

화랑곡나방 한 마리

회백색 호기심 활짝 펴고 내 주위를 선회한다

시가 싹트는 내 서재는 벌레의 뜰이다

어디에서 월동했다 침입한 불청객일까

날갯짓 몇 번으로 시상詩想에 금이 마구 그어진다

홈·키파 살그머니 든다

그리고 놔두어도 열흘 남짓인 그의 생애를 겨냥한다

내 살의殺意가 뿜어 나오고 떨어진 그의 절망을

휴지에 싸서 변기에 버리면

깨어진 시가 반짝반짝 일어설까

창 넘어서 보문산이 다가온다

고촉사 목탁소리가 함께 온다

벌레야 벌레야

부처님 눈으로 보면 나도 한 마리 나방

푸르게 날 세웠던 살생을 내려놓는다

벌레하고 동거하는 내 서재는 수미산이다

posted by 청라

물 위에 쓴 편지

시조/제3시조집 2022. 9. 1. 19:58

물 위에 쓴 편지

 

 

물오리 한숨 풀어

물 위에 편지를 쓴다

썼다 지운 이야기는

꽃잎으로 떠도는가

옛날은 희미해지고

향기만 가득 풍겨온다

posted by 청라

4월의 눈

시/제6시집 사람의 향기 2022. 8. 31. 10:56

4월의 눈

 

 

잠 안 오는 밤 접동새 불러

배나무 밭에 가면

4월에도 눈이 온다

보아라!

푸른 달빛 아래

다정한 속삭임의 빛깔로 내리는

저 아름다운 사랑의 춤사위

외로움 한 가닥씩 빗겨지며

비로소 지상에는 빛들의 잔치가 시작된다

배꽃이 필 때면 돌아오겠다고

손 흔들고 떠난 사람 얼굴마저 흐릿한데

사월 분분히 날리는 눈발 아래 서면

왜 홀로 슬픔을 풀어 춤사위로 녹이는가

접동새 울음은 익어

은하수는 삼경으로 기울어지고

돌아온다는 언약처럼

분분히 무유의 흙으로 떨어지는 꽃잎

돌아서서 눈물을 말리는 것은

다정도 때로는 병이 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청라

산안개

시조/제3시조집 2022. 8. 29. 22:35

산안개

 

 

한여름 비온 날 아침 산봉우리 올라 보니

초록빛 골짜기마다 시루떡 찌고 있다

담 너머 떡 사발 나누던 고향생각 아롱댄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