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하나

동시 2019.03.19 12:03

사탕 하나

 

 

꼭 쥔 주먹 안에

반쯤 녹은 사탕 하나

 

아가는 잠자면서도

방긋 웃고 있다.

 

빨다가 너무 맛있어

엄마 주려고

 

꼭 쥐고 놓지 않는

쪼글쪼글한 알사탕 하나

 

 

2019. 3. 19

posted by 청라

꽃이 피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

 

 

삼월이 오면 우리가 할 일은

비둘기 맨발에

꽃신을 신겨주는 일이다.

얼마나 추운 것들이

많은 세상이냐.

우리가 봄 햇살 같이 다가가

꽁꽁 언 가슴마다

불씨 하나 지펴준다면

그리하여

빙산처럼 단단한 슬픔에

금 하나라도 가게 할 수 있다면

! 눈물 맑은 노래들이 피어올라서

이 세상을 데워주겠지.

주위를 돌아보며 사는 일들은

꽃이 피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

 

 

2019. 3. 16

posted by 청라

삼월

 

 

산수유 뽀얀 숨결

언 가슴 녹인 불씨

비둘기 맨발에도

꽃신 한 짝 신겨줄까

잊었던 노래 가지마다

두런두런 피는 꽃등

 

털모자 벗으며

시든 사랑에 물을 준다.

듬성한 머리 사이

꽃대 한 촉 싹이 틀까.

신바람 나비 춤 앞세워

분홍 발로 오는 삼월

 

 

2019. 3. 1

posted by 청라

미소가 따라와서

 

 

엊그제 마곡사

석가 불 그 미소가

내 꿈속 비좁은

골목까지 따라와서

아이 참, 욕하려 해도

빙그레 웃음만

 

그러게 살던 대로

막 살면 되는 게지

마음속에 부처는

왜 모시자 욕심 부려

아이고, 이제 큰일 났네

욕도 한 번 못하고

 

 

2019. 3. 6

posted by 청라

제비꽃에게

시/제5시집 2019.02.28 17:10


제비꽃에게

 

 

콘크리트 사이에

뾰족이 고갤 쳐든 제비꽃아

괜찮다. 괜찮다.

목련꽃처럼 우아하지 않으면 어떠리.

겨우내 툰드라의 뜰에서

옹송그리고 지내다가

봄 오자 단단한 벽을 허물고 깃발 세운

네 눈빛만으로 골목이 환하지 않느냐.

 

괜찮다. 괜찮다.

어린 아이들아

공부를 좀 못하면 어떠리.

까르르 까르르

너희들의 웃음만으로도

온 세상이 환하지 않느냐.

 

2019. 2. 28

posted by 청라

서해의 저녁

 

 

바다의

비린내를

노릇노릇 구워놓고

지는 해

노른자처럼

소주잔에 동동 띄워

마신다.

귀가 열린다.

물새들의 속삭임에

 

기우는

하루해를

잡아서 무엇 하리.

잔 부딪칠

사람 하나

있으면 그만이지

파도로

어둠 흔들어

잠 못 드는 밤바다

 

 

2019. 2. 17

posted by 청라

눈 오는 날

시/제5시집 2019.02.02 09:10

눈 오는 날

 

 

술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해야겠다.

 

따뜻한 정종 몇 잔 함께 마시고

어깨동무하고

대전의 밤거리를 걸어야겠다.

 

서먹했던 마음의 골목

밝게 비추는 불빛

수만의 벌떼처럼 잉잉대는 눈발

 

고희古稀의 문턱인데

명리名利를 다퉈 무엇 하리.

 

묵은 둥치일수록

단단하게 붙어있는

잔나비걸상버섯처럼

 

겨울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가자고

손을 내밀어야겠다.

 

 

2019, 2, 2

충청예술문화20193월호

posted by 청라

장날

동시 2019.01.24 21:02

장날

 

 

엄마가 왔나보다.

사립문이 덜컹거린다.

펄쩍 뛰어 나가보면

지나가는 바람

 

사탕 한 봉진 사오시겠지.

살구나무 위 까치는

어림없다고 깍깍깍

 

미루나무처럼 목이 길어져 바라보는

산모롱이 길 

해가 이슥하도록

아지랑이만 아롱아롱

 

 

2019. 1. 24

 

posted by 청라

사막을 일구다

시/제5시집 2019.01.08 08:18

사막을 일구다

 

 

사랑편지를 전했더니

사막을 보내왔다.

그녀의 답신答信은 사막의 달빛처럼

무채색이다.

내 사랑 어디 씨앗 하나 싹틔울 곳 없어

도마뱀처럼 납작 엎드려

기어도 기어도 꽃은 피지 않는다.

선인장 가시에 긁힌 바람만 몇 올

모래언덕을 헤집다 스러진다.

사랑이여!

작은 생명 하나 움트지 못할

불모의 땅에 뿌리를 내려보자.

깊이 숨어있는 초록의 숨결을 모아

천둥 번개를 불러오겠다.

바삭거리는 당신의 가슴에

몇 천 번이라도 비를 퍼붓겠다.

나는 사막을 일궈

사랑 한 그루 푸르게 크게 하겠다.

 

 

2019. 1. 8

posted by 청라

간송澗松 미술관에서

 

 

일본 땅 어디쯤 헤매고 있겠지

빼어난 어깨 위에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온유한 가슴에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당신의 열정

민족혼이 지켜낸 천학매병千鶴梅甁

 

! 천 마리의 학들이 날아오른다.

비취빛 하늘

편편이 날리는 구름을 뚫고

 

종소리처럼 솔향기처럼

보아도 보아도 눈을 뗄 수 없는

가녀리고도 질긴 힘이여!

 

오롯한 한 가지만 심어도 좋을

좁은 입 속에

야월 한설夜月寒雪 피어난 한 송이 매화꽃 같은

당신의 정신만 꽂아놓고 싶었다.

 

 

2019. 1. 4

시문학20193월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