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귀향

시조/제3시조집 2024. 2. 11. 15:26

섣달 귀향

 

 

겨울밤 내 고향은 함박눈으로 반겨주네

설레는 잠속에서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

온 밤 내 잠들다 깨다 어린 날로 돌아가네

 

아침에 문을 열면 우렁우렁 일어서서

눈꽃에 몸을 씻는 산바람 골물 소리

철승산 큰 품을 열어 포근하게 감싸주네

 

옛날을 그려보니 안 먹어도 배부른데

골목길 담 벽마다 쟁쟁한 어머니 음성

정들은 사람은 갔어도 나의 쉴 곳 여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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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

시조/제3시조집 2024. 2. 9. 11:14

홍매

 

 

허공 한 점에

은밀한 초경처럼

진홍빛 설렘이

살며시 벙글더니

봄 어서

오라는 손짓

하늘 가득 저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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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 납월매

시조/제3시조집 2024. 2. 4. 20:33

금둔사 납월매

 

 

사랑을 

받아봐야

사랑 주는 법도 안다

 

금둔사 납월매는

지허스님 숨결로 커

 

매화야

정 담아 부르면

섣달에도 마음을 연다

 

햐아 이 맛에

중노릇을 하는기라

 

정 주듯

목탁소리 울림으로

키운 매화

 

참 도는

아득하지만

가슴마다 법열法悅이 인다

 

 

posted by 청라

마음이 허전한 날

시조/제3시조집 2024. 1. 29. 10:07

마음이 허전한 날

 

 

마음이 허전한 날

태화산 계곡에 가

 

물소리로 몸을 닦고

별빛으로 혼을 씻어

 

한 송이 산나리 꽃으로

노닐다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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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묘지에서

시조/제3시조집 2024. 1. 28. 10:19

애국지사 묘지에서

 

 

아 저기 창공에다 목소리를 달고 싶다

만주 벌판 말 달리며 나라 위해 몸 바치던

선조들 온몸으로 외친 그 기도를 올리고 싶다

 

피 흘리는 가슴 속에 꼭꼭 숨겨 간직했던

평화의 흰 바탕에 꿈틀대는 청홍 태극

온 세계 용틀임하는 그 자랑을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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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

시/제7시집 2024. 1. 22. 16:32

목줄

 

 

아내가 목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다

파란 힘줄이 앙버틴 양 다리에서 소름처럼 돋아난다

눈 감고 생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동행하는 나의 목에도 줄이 매어져 있다

살아있는 것들의 목엔 모두 굴레가 채워져 있다

인생이 개처럼 인연의 목줄에 꿰여

덧없이 끌려가는 운명이라 해도

가장 낮은 자리가 내 자리라고 웃으면서 살아가자

지금은 혼자 다독이는 슬픔에 절어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삶이라 해도

잘 말린 구절초 꽃잎처럼

우릴수록 향이 깊어지는 그런 사림이 되자

올무에 옭힌 세상은 온통 눈밭이지만

나 혼자만 매화로 피어날 수는 없다

 

posted by 청라

삼월

시조/제3시조집 2024. 1. 11. 17:44

삼월

 

 

목련이 허공위에

첫정을 붉힌 것은

 

당신을 향한 마음

남몰래 부풀리다

 

이제는

참지 못하고

터졌다는 고백이다

 

posted by 청라

첫눈

시/제7시집 2023. 12. 23. 08:52

첫눈

 

 

바람 편에 배달된

아내의 걱정

 

이 먼 들녘까지 따라왔구나

 

정겨운 잔소리처럼 팔랑대는

기차의 창문 너머로

 

평생을 몰래 숙성시킨

속말을 보낸다

 

아내여

멀리 보내놓고

두근거리는 가슴처럼 날리는 눈은

 

다음 또 다음 생애에서도

천 년을 함께하고픈

내 마음이다

 

posted by 청라

낮달

시/제7시집 2023. 12. 12. 17:05

낮달

 

 

새 신을 사시고도

어머닌 오래도록 헌 신을 기워 신으셨다

 

찢어진 데가 또 찢어져 발가락이 나와도

시렁 위에 모셔둔 신발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저 건너로 가시고 난 후

 

너희들이나 신으라고 어머니 벗어놓고 간

하얀 고무신 한 짝

 

어머니

저승의 주막집까지 

맨발로 절뚝이며 가셨는가요

 

오늘도 끼니 거르신

창백한 얼굴이 가을 하늘에 슬프다

posted by 청라

두 석상의 하나 되기

시/제7시집 2023. 12. 10. 09:11

두 석상의 하나 되기

 

 

통일 전망대 내리는 비엔 소금기가 배어있다

갈 수 없는 마을이 그리워 울다 떠난 사람들의 눈물과

높새바람에 펄럭이던 수많은 소망들이

포말처럼 부서져서 해당화로 피는 곳

남해에서 달려온 꽃바람이 철조망에 막혀

한숨으로 시드는  곳

겨울만 사는 동네는 봄이 와도 쪽문을 열지 않는다

산 하나 넘으면 저기가 고향인데

나의 그리움은 늘 우연雨煙에 가로막힌다

두고 온 어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고향 마을의

학 울음소리

나의 어린 시절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봄이면 제비처럼 찾아와 울던 고향이 함흥이라는

그 할아버지

발걸음 뚝 끊긴지 오래인데

아직도 하나가 되어 하늘에 닿지 못하였는가

미륵불 성모 마리아 두 석상의 기도는

이산가족의 간절한 소망처럼 끝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잎새 툭 하고 떨어지고

국토는 아직도 굳게 동여맨 허리띠를 풀지 않는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