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봄날

 

 

이쁜이는 열여덟 살

푹 익은 찰 토마토

 

타는 몸 붉다 붉다

터질 듯 꼭지 돌아

 

눈웃음 살짝 보내면

톡 하고 떨어지겠네.

 

 

202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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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雪花

설화雪花

 

 

옷 벗은 빈 산하山河엔 달빛이 창백한데

홀연 함성처럼 일어서는 북 소린가

새벽에 박수 치며 온 저 사나이 너털웃음

 

시들었던 팔과 다리 넘치는 빛의 향연饗宴

깨어진 아픔 위에 덧 피어난 무궁화여

청년아, 서릿발 같은 깃발 하나 세우거라.

 

 

202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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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에게

시/제5시집 2019. 12. 30. 09:33

은행나무에게

 

 

외로움을 선택했구나.

그래서 열매도 맺지 않았구나.

싹트면 제 알아서 자라는 것들

아예 씨조차 뿌리지 않았구나.

 

근심을 거부하면서

네 집 문전엔 웃음 한 송이 필 날 없겠지.

커피 잔을 들어도 마주 대는 사람 하나 없고

네가 꺼놓고 나간 거실의 불은

어둠인 채로 너를 맞을 것이다.

 

채우면서 살아가라.

어치 두 마리 네 어깨에 앉아

고개를 갸웃대고 있다.

네 삶의 겨울에 네게서 끊어진 자리

여백으로 그냥 남기려느냐.

 

소소하게 반짝이는 근심을

즐겁게 마시면서 살아가라.

외롭게 외롭게 사라지기보다는

세상에 네 왔다간 점 하나 찍어놓아라.

 

 

2019. 12. 30

 

 

posted by 청라

아내의 푯말

아내의 푯말

 

 

아내가

가슴 속에

푯말 하나 세웠다기에

깊은 밤 꿈을 열고

마음 살짝 엿봤더니

정 헤픈

남자는 사절"

붉은 글씨로 써 있네.

 

 

201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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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장미

시/제5시집 2019. 12. 3. 10:00

12월의 장미

 

 

한 철의 사랑만으론

목이 탔는가.

너무 뜨거워 서러운

내 사랑이 눈을 맞고 있다.

사람들은 눈보라 속에 핀 장미를

불장난이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참고 참아도 활화산처럼

터져버리고 마는 마음인데

 

 

2019.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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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시/제5시집 2019. 11. 22. 08:48

평화

 

 

평화는

나만 착하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굶는 이웃에게 밥을 주고

내 힘을 깎아내 어깨를 맞춰주고

나 혼자만 칼을 버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아!

모두 잃은 후 목선을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목숨을 구걸하러 다니려느냐.

평화는 내가 약해져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주 강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019. 11. 22

충청예술문화93(2019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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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

시/제5시집 2019. 11. 5. 08:31

도담삼봉

 

 

도담삼봉을 보고 돌아온 날 저녁

꿈길로 따라와

내 마음에 집을 지었다.

자동차 소리에도 맑은 물 찰랑거리고

물에 어린 단풍은

꽃 비녀를 꽂아놓은 듯하다.

두루미 한 마리 구름을 물고 있다가

날개를 활짝 펴 삼봉 선생을 찾아가는고.

빈 나루에는 배 한 척만 떠있고

산 그림자는

전설처럼 길게 누워있다.

단양에 다녀와

도담삼봉을 품고 살아가니

신선의 마을에 사는 듯 마음이 한가하다.

 

 

2019. 11. 5

문학사랑130(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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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빛깔

시/제5시집 2019. 11. 3. 07:35

나이의 빛깔

 

 

나이는 마음이다.

 

스물이라 생각하면 가슴에서

풀잎의 휘파람 소리가 나다가도

일흔이라 생각하면

은행잎 노란 가을이 내려앉는다.

 

일흔이라도

스물처럼 살자.

언제나 봄의 빛깔로 살아가자.

 

 

2019. 10. 3

시문학581(2019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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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연서

가을 연서

 

단풍 물에 담갔다가 국화 향에 말린 사랑

종소리에 곱게 담아 가을 연서 보내주면

네 가슴 굳게 닫힌 문 까치집처럼 열릴까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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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법칙

시/제5시집 2019. 10. 25. 08:43

슬픔의 법칙

 

사람은 태어나는 날

누구나 다 슬픔도 예약 받지만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위하여

미리 슬퍼할 필요는 없다.

멀리 떨어진 슬픔을 마중 나가

조급하게 아파하다가

익기도 전에 떨어질 필요는 없다.

아직 오지 않은 아픔을

미리 아파하지 말자.

아직 오지 않은 슬픔을

미리 슬퍼하지 말자.

오늘의 작은 행복도 가꾸고 즐기면서

남은 햇살에 느긋하게 익어가자.

 

2019. 10. 25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