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시조/제3시조집 2025. 12. 7. 08:52

안부

 

 

산촌 살림에는

온 마을 다 한 식구라

 

홀아비 외딴 집에

지난밤 불이 꺼져

 

정 많은

큰소쩍새는

밤새 안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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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시/제7시집 2025. 12. 6. 10:03

우리들의 천국

 

 

서귀포 앞 바다는 지금도 만원이다

 

고추냉이 맛 세상의 바람도

여기 와서는

숨죽은 채 야자수 잎에 머물고

 

흰 말떼처럼 갈기 휘날리는 파도는

초원을 휘저으며 뛰놀고 있다

 

전생의 반쪽을 만나듯

서귀포 동백꽃은

봄이 설레어서 몰래 붉는가

 

밭머리에 선 돌담처럼

가슴마다 구멍 뚫린 채 한숨에 젖던 사람들도

모두 꽃빛으로 향기롭게 익는구나

 

단비에 머리 감은 한라산아

정갈한 네 정수리까지 다 드러나는

아침이 오면

 

외돌개 눈망울 걸어놓은 먼 수평선에

흰 돛배 하나 떠서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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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가는 길

시/제7시집 2025. 11. 28. 07:45

산사 가는 길

 

 

풍경소리는

그냥 내려오는데

나는 마중 나왔다고 반겨주고

 

산꽃 향기는

어제나 그제나 똑같은데

오늘만 특별히 향기롭다고

박수를 친다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엔

초록을 밟고 가는 바람에도

가슴이 뛴다

 

불당 가득 채운 미소에

어서 기대고 싶은 욕심에

지름길로 들어서면

 

돌아가는 길이 빨리 가는 길이라고

뻐꾹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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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

시/제7시집 2025. 11. 22. 10:48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처럼

능소화 송이들 중 그냥 한 송이

 

어울려 핀 모습은 화려하지만

자세히 보면

미소 뒤에 감춰진 저 단단한 멍울

 

아프다 아프다 해도 소용없으니

능소화는

그냥 입다물고 시들어간다

 

그래도

이름 없이 돋았다 지는 풀이 아니라

꽃으로 핀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픔 없이 사는 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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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가시

시/제7시집 2025. 11. 20. 15:16

탱자 가시

 

 

예쁜 꽃으로 필 야망은 조금도 없다

 

연분홍 향기로 몸단장하고

꺾어갈 사람 애타게 기다리며

가슴 졸일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항시 하늘 향해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벌 나비도 새들도 안을 수 없는

천형의 몸이라 해도

 

부정한 것들에 몸을 숙이지 않고

옳은 것은 옳다고 지키며 사는

진초록 마음을 지닌 사내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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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절벽 앞에서

시/제7시집 2025. 11. 15. 09:23

인구 절벽 앞에서

 

 

나무가 없으면

산이 아니다

 

풀이 없으면

들이 아니다

 

사람이 없는데

나라라고 온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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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석

시조/제3시조집 2025. 11. 15. 09:22

사랑의 정석

 

 

편지도

메시지도

전화도 묶어놓고

 

그 얼굴

그 그리움

꾹꾹 눌러 참아내니

 

뜨겁게

발효되어서

깊은 맛으로 익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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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석

시조/제3시조집 2025. 11. 2. 17:04

사랑의 정석

 

 

편지도

메시지도

전화도 돌려놓고

 

그리움

보고픔을

꾹꾹 눌러 참다보니

 

사랑이

발효되어서

깊은 맛으로 익었네

posted by 청라

달빛 이불

시조/제3시조집 2025. 10. 20. 08:01

달빛 이불

 

 

새벽달 조명처럼 으스름 비춘 침대 위에

주름살 자글자글 꽃무늬 진 여자 하나

굳센 체 떨림을 감춘 들풀 같은 사내 하나

 

꿈결인 듯 손을 잡고 살아온 세월인데

자다가 문득 깨니 단풍으로 물든 인생

눈물로 달빛 끌어다 시린 숨결 덮어주네

posted by 청라

그믐달

시조/제3시조집 2025. 10. 3. 17:09

그믐달

 

 

무심히 스치는 듯

울안 샅샅 다 살피며

 

새벽까지 온 나라의

평안 위해 잠 못 드는

 

대통령

우리 대통령

참 그리운 대통령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