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름

시/제7시집 2026. 10. 23. 03:53

이상한 여름

 

 

와! 아직도 한여름인데

초록 가면 벗어 던지고 울긋불긋 피어나는

저 단풍들을 보아라

 

이상도 하지

박헌영이가 상 받으려고 가을 기러기 따라갔다가

가슴에 피 구멍이 난 걸 모르는 걸까

 

고조선 이래

태극기 가장 힘차게 펄럭이는 우리 조국인데

벌레들이 우글거려 토가 나오는

 

병든 잎새들은 어서 낙엽 되어 떨어지거라

긁어모아 모두 태울 불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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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플러스원

시/제7시집 2026. 10. 9. 15:22

원플러스원

 

 

아내의 값이 떨어지자

나도 같이 값이 깎여 싸구려가 되었다

 

아내가 있는 곳엔 어디나 붙어 다니고

세상에 혼날 때는 언제나 같이 혼난다

 

우리 둘이는 원플러스원이다

하나만 사가면 묶인 듯 끌려가는

 

몇 뼘 남은 노을 녘에 멍에에 묶인

참으로 슬픈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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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책

시/제7시집 2026. 9. 18. 21:53

가을 산책

 

 

가을날 산책을 하다

벤치가 유혹을 하면

정확히 반은 비워놓는다

 

앉아도 될까요

묻는 사람 있으면

거긴 임자 없습니다

햇살처럼 웃어주며

 

내가 한 포기

쑥부쟁이 꽃처럼 피어있을 수 있다면

자는 듯 깬 듯 향기를 걸치고

맑은 가을로 고여 있을 수 있다면

 

자러 가다가 잠깐 노래하는

까치 소리도

단풍 든 마음처럼 편안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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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여백

시/제7시집 2026. 9. 17. 05:18

까만 여백

 

 

잊는다는 것은

미워하는 것보다 더 아픈 일이다

 

아내의 도화지엔

친정엄마가 지워지고

자식들도 지워지고

남편마저도 실루엣처럼 뿌옇게 흔들린다

 

사랑하는 사람들 다 지우고

까매진 여백에 갇혀

무슨 재미로 살까

 

자신을 가꾸는 것도 잊어

아흔세 살 친정엄마가 봐도

언니 하고 부를 몰골을 하고

 

복복해 복복해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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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꽃을 보며

시/제7시집 2026. 7. 22. 07:53

개망초 꽃을 보며

 

 

개망초 꽃들은

어둠에도 침몰하지 않는다

 

작은 송이들이 어깨동무하고

함성으로 일어서는 것을 보아라

 

침묵하다 베어져

불태워지기보다는

 

금계국과도 손잡고

기생초꽃들과도 손잡고

바라귀 강아지풀과도 등을 맞대야하지 않겠느냐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 중에서

보잘것없는 것이란 없다

 

붉은 불길이 들판을 불사르기 전

백의민족 그 빛깔로 세상을 덮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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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니 다행이다

시/제7시집 2026. 5. 18. 22:37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아내의 문은 열린 듯 닫혀있다

곁에 있어도 늘 천 리 밖이다

텅 빈 듯해도 단단한 내면

그 안으로

나는 들어갈 수가 없다

나의 노을 녘은

당신의 비틀걸음에 묻혀간다

해맑게 웃어도

왜 내 안식의 방울소리는 붉은색이냐

가끔은 발을 묶은 청홍 실을

끊고 싶지만

달빛에 비친 당신의 골진 얼굴을 보면

다행이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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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리랑

시/제7시집 2026. 4. 14. 06:33

우리 아리랑

 

 

강의 가슴에서 핏물이 배어나오듯

심금心琴을 울려주는 애잔한 가락

오천 년 흰옷의 애환哀歡 깃발처럼 펄럭이며

광화문 목련 봉오리에 봄이 켜지고

아지랑인 듯 아롱대는 세상은 온통 보랏빛이다

산이 많아서 삶의 고개도 많았던가

눈물의 골짜기 굽이굽이 헤어보면

밟히다 밟히다 질경이처럼 꺾인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

아리랑이여

잡는 손 뿌리치고 강을 건너다 빠져 죽은

백수광부白首狂夫를 그리는 공후箜篌의 흐느낌과

행상行商을 나가 진 곳을 디딜까 남편을 기다리며

밤새 두드렸을

다듬이소리에 담겨있는 아낙네의 기도祈禱

함께 버무려져 무궁화 빛깔로 피어난

우리 노래여

눈물도 망초 꽃처럼 어깨동무로 함께 하면

별이 되어 반짝이는 것을

노래 하나로 세계를 불러 모아

어깨춤으로 풀어내는 정갈한 슬픔

신화神話의 봄은 서울에서 일어서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한 몸 되어 출렁이는 오대양 육대주는

모두 아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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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옹이 박혀

시조/제3시조집 2026. 3. 6. 09:20

그리움 옹이 박혀

 

이 빠진 징검다리

뻐꾸기 울던 날에

한 번 건너 준 후

그리움 옹이 박혀

평생을

못 내려놓고

업고 가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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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으로 오는 봄

시조/제3시조집 2026. 3. 1. 19:43

설렘으로 오는 봄

 

 

골짜기 눈 녹는다고

산비둘기 구구구구

 

복수초 꽃 핀다고

설레어서 구구구구

 

봄 아직 반도 못 왔는데

목이 벌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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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평전의 오월

시조/제3시조집 2026. 2. 18. 19:53

세석평전의 오월

 

 

뻐꾸기 한 푸념이

한 송이씩 망울 틔워

메아리 번지듯이

산비탈을 오르다가

철쭉은 박장대소로

꽃 바다를 이뤘다

 

산은 나를 불러놓고

온종일 웃기만 하고

나는 산이 되지 못해

염화시중 못 이뤄도

꽃빛에 물이 들어서

근심 바랑 가볍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