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카테고리 없음 2023. 3. 4. 17:29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귀뚜라미 소리가 깨워서

문득 눈을 떴습니다

세월의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당신의 잠든 얼굴에 눈물을 떨구게 합니다

영혼은 아이 때로 돌아갔지만

자글자글 주름에

멍투성이 수선화 같은 당신

꽃피던 날에는

당신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몰랐습니다

겨릅대처럼 바싹 마른 다리에

이불을 덮어주면서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내가 태어났나 봅니다

 

 

 

posted by 청라

대보름달 떴다 

 

우리들의 아픈 시간은

해가 지고 나서 다시 달이 뜨는 시간만큼의

잠깐이었으면 좋겠다

불 깡통에서 눈썹 센 별들이

은하처럼 쏟아지는 만큼의 찰나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마음에 둥그렇게 달이 떠오를 때

달집을 사른다

코로나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겨울을 태우고

먹을 것이 없는 마을의 막막한

그믐밤의 절망을 태우고

액운이 깃든 영혼의 저고리 동정을 태우듯

세상의 모든 아픔을 불속에 던져 넣는다

보아라!

망월굿 춤사위 속

그림처럼 살아나는 우리의 산하

먼 산이 검은 그림자 딛고 일어서고

나무들 찬바람 속에서도 분분이 손 흔들어

봄을 부르노니

시대의 밤아 가거라

우리들 마음 가장 높은 곳 어느새 하늘만한

새 정월의 대보름달이 떴다

 

 

 

 

posted by 청라

<엄기창 시집 해설>

 

싱싱한 바다로의 항해를 꿈꾸는 연가

 

                         양병호(시인, 전북대 국문과 교수)

 

 

 

 지구는 하나다. 이 명제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단 하나인 지구가 파괴되거나 훼손당해 멸망한다면 다른 대책이 있는가? 소극적 대책으로는 지구 환경을 보존하며 오래도록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적극적 대책으로는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다른 혹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니면 지구와 동일한 조건의 혹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인 지구를 둘 이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책은 현재의 지구를 인류의 생존에 적절한 환경으로 유지 보존하는 것이다.

 인류 생존의 가장 궁극적인 토대는 지구이다. 지구의 위기는 사실 다양한 상상력의 소산으로 제기된 바 있다. 가령 지구촌의 다양한 재난을 소재로 다룬 재난영화를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기상이변을 다룬 설국열차, 지진해일을 소재로 한 해운대, 땅 꺼짐을 다룬 터널, 독가스의 폐해를 조명한 엑시트에서 지구의 위기를 제시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 지구 온난화를 다룬 투모로우, 대지진과 화산폭발로 인한 해일의 충격을 소재로 한 2012, 기후 변화의 재해를 다룬 페펙트 스톰, 지오스톰등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현실에서 일어난 혹은 미래에 일어날 지구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지구의 멸망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이유는 금세기에 대두된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현실에서 다양한 기후 변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기후 변화의 주된 원인으로는 탄소 배출이 적시된다. 과학 문명의 발달과 산업화로 인한 석유와 석탄의 과다 사용이 탄소 배출을 주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기상 이변이 야기되고 있다. 기후 변화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그 대책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소하기로 기후협약을 공표하였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사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 명제에 따르면 지구라는 혹성도 언젠가는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종말에 대한 대책은 우선 당장은 기후 변화로 인한 재해를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태주의와 자연주의가 현실에 맞게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자연 환경 보호를 위하여 인류 모두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실생활에서의 실천력을 고양해야 할 것이다. 그 일상에서의 구체적 방안은 상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시된 바 있다.

 지구의 환경 중에서 바다의 오염과 훼손 문제 또한 심각하다. 태평양에 쓰레기로 만들어진 섬이 생겨났다는 뉴스는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해변에서 목도되는 바다 오염 현상이 일상적인 현실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바다에 버려지는 쓰레기 혹은 유류 누출로 인한 환경 훼손의 뉴스도 반복되고 있다. 코에 스티로폼 빨대가 꽂힌 채 유영하는 바다거북이의 영상은 참말로 충격적이다. 또한 바닷물고기가 미세플라스틱을 플랑크톤으로 착각해 먹이 활동을 하여 생선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바다의 시간󰡕에서 바다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이다고 말한다. 그는 바다를 전 인류의 공공재산으로 오랫동안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동식물의 어종 감소, 기온 상승으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부족한 식수를 대체하기 위한 바닷물을 활용한 담수 개발,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한 해양 광물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 제한 등 인류의 대량절멸을 막기 위한 국제 사회의 협력이 긴급히 필요함을 강조한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 분포를 차지하고 있다. 인류는 이 바다를 통해 어업, 수산업, 해운업, 무역, 교통 등의 혜택을 입어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래로부터 동서남해를 통해 풍윤한 삶을 구가해 왔다. 그런데 산업과 교통의 발달로 인하여 바다가 지닌 순수 원형성이 손상 파괴되는 형국에 이르렀다. 요즘 바다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각종 폐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바다의 오염과 훼손의 문제는 지구의 위기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테마가 되었다.

 

 엄기창 시인의 이번 시집 󰡔바다와 함께 춤을󰡕은 오로지 바다라는 시적 대상만을 집중적으로 끈질기게 형상화 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대상만을 집요하게 성찰하고 내면화 하는 작업은 매우 보기 드문 기획이다. 특히 시집을 4부로 편집한 의도 역시 매우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부는 바다의 현실 즉 오염과 훼손된 상황을 사실적 톤으로 제시하고 있다. 2부는 파괴된 바다 현실에 대한 대응 즉 보전과 개선 방안을 주창하고 있다. 3부는 개선된 바다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희망찬 바다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4부는 기행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바다나 항구 등에 대한 기행의 기억 혹은 추억을 서정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1-3부는 바다의 환경오염과 훼손 현황, 바다의 생태 보전에 대한 현실적 대책, 그리고 환경 생태의 회복에 대한 미래의 긍정적 비전을 마치 르포 형식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바다 생태 보전에 대한 인과관계와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바다의 환경 문제에 대한 체험적 보고를 서정 양식을 빌어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4부는 바다에 대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 서정을 극대화시켜 노래하고 있다. 서정시의 관점에서 4부에 편재된 작품들의 완결성이 상대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그리하여 4부에는 서정적 감동을 담보하는 가편들이 집중되어 있다.

 엄기창 시인은 시집의 1부에 바다의 아픔으로 소제목을 붙일 만큼 바다가 당면한 오염과 훼손의 문제를 다양하게 조망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적조, 해양쓰레기, 기름유출로 인한 해양오염, 온실가스, 방사능 유출, 공장의 폐수 등을 시적 소재로 차용한다. 그는 서정 양식을 통해 바다의 현실을 안타까운 어조로 고발하는 자세를 보인다. 그가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한 바다의 훼손 상황을 보고하는 어법은 구체성, 직접성, 현장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나아가 바다 환경 생태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하는 목적성도 아울러 성취한다.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세상의 눈물 나는 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반란군에 살해당한

어미의 슬픔과

플라스틱 병을 삼키고 허연 배를 드러낸

고래의 눈물이

소용돌이로 울고 있다.

더 이상 버리지 마라.

아침 해를 띄워 올리는

저 바다의 싱싱한 웃음 뒤에

한 그루씩 죽어가는

산호의 비명이 포말泡沫로 부서지고 있느니.

바다는 스스로 늘 제 몸을 닦고 있지만

이미 흠뻑 젖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다.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

슬픈 바다전문

 

 이 시는 제목 슬픈 바다에서부터 바다의 부정적 현실에 대해 느끼는 슬픔의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예컨대 화자는 바다가 처한 환경 생태의 위기 상황에 대해 슬픔의 정서로 반응하고 있다. 특히 객체 바다와 주체인 화자의 현실 인식이 슬픔의 정서로 합일되고 있는 점이 그 강도를 더욱 고양시키고 있다. 먼저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은 바다의 극한 상황을 드러내는 역설이다. 여기서 젖음은 이미 충분히 젖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젖을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뒤에 나오는 시적 맥락을 고려하면 젖음은 정화의 의미를 함축한다.

 이어서 바다의 무한 포용력에 대한 사례들이 중첩되어 제시된다. 바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슬픈 일들을 포괄하는 웅숭깊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가령 아프리카 각 나라의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내란에서 가족을 잃은 어미의 슬픔을 바다는 포용한다. 또한 바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플라스틱 병을 흡입하여 죽은 고래의 눈물역시 바다는 끌어 안는다. 이처럼 바다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극적 상황을 보며 소용돌이치는 슬픔을 감내하고 있다.

 에 화자는 더 이상 버리지 마라고 경고한다. 물론 생략된 목적어는 각종 폐기물, 오물, 환경폐수 등으로 추론 가능하다. 인간이 버린 각종 생활 오염물질로 인하여 훼손된 산호의 비명이 들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바다의 싱싱한 웃음을 소멸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바다는 근원적으로 지구를 정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포용한계를 벗어나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해 있다. 바다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려 있다. 이 시는 바다 환경의 오염과 훼손으로 인하여 자정능력이 발휘될 수 없는 비극적 현실을 경고하고 있다.

 

방조제들이 쇠사슬처럼

바다의 자유를 결박結縛하고 있다.

폐경기의 달거리 빛으로

바다는 노을을 베고 잠들어 있다.

방조제 밖의 물들은 까치발 서서

안쪽의 물들을 보며

격려의 박수를 치고 있지만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소망들이

조금씩 수척해지며

미라가 된 바다.

숨죽은 물결 소리 깨어진 칼날이 되어

새만금의 일몰日沒을 찢고 있었다.

미라가 된 바다전문

 

 이 시는 새만금방조제 구축으로 인해 자연스런 해류의 유통이 차단됨으로써 야기된 바다 생태의 파괴 문제를 형상화 하고 있다. 제목 미라가 된 바다가 함축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방조제로 인해 바다는 생명성이 고갈된 상황으로 인지된다. 방조제는 쇠사슬로 은유되어 바다의 자유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기능을 작동한다. 이러한 사유의 이면에는 자연주의와 생태주의의 관념이 바탕하고 있다.

 나아가 바다는 생식능력을 상실한 폐경기의 여성으로 은유된다. 바다의 현실적 시간 역시 노을이 진 이후 밤이다. 바다는 잠든 상태로써 활력과 생기를 상실한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방조제 밖의 자유로운 해수들은 방조제 안에 갇힌 해수를 향해 자유로운 유통을 유도하지만 실패에 그치고 만다. 자유로운 해수 유통을 꿈꾸는 환경 생태의 소망”/본질은 결국 미라에 직면한다. 이 시는 방조제 건설로 야기된 바다의 자유로운 생태 환경의 훼손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바다의 비명이 무좀균처럼 발바닥 피부 사이로 스며든다. 멸치도 아파하고, 정어리도 아파하고, 상어도 고래도 아파한다. 바다는 작은 것도 큰 것도 온통 아파하는 것들뿐이다.

 

 아시아의 강들은 오줌발도 걸레다. 쏟아내는 목청마다 모두 욕설뿐이다. 그들은 왜 공장마다 문을 강 쪽으로 열어놓았을까. 문마다 왜 그렇게 쌩욕들을 쏟아 부을까. 강들은 죽고, 죽은 강을 마시는 바다는 배가 아프다. 펄펄 뛰다 죽을 만큼 배가 아프다.

 

 태평양 아열대 환류는 쓰레기로 섬을 만든다. 일조 팔천억 개의 플라스틱이 먹이처럼 떠돌고 있다. 배고픈 물고기들 덥석 먹어버리면 소화도 되지 않고, 뱉어낼 수도 없고. 바다엔 병원이 없다. 절대로 통증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팔라우의 산호는 지금도 죽고 있다. 온난화溫暖化로 육지는 물로 덮여가고, 빙산은 녹아서 북극곰은 갈 곳이 없다. 폐수로, 쓰레기로, 온난화로 펄펄 열이 끓는 바다

 

 바다가 아프면 이제 사람도 아프다.

연민憐愍전문

 

 이 시는 환경의 오염과 훼손으로 인해 질병에 걸린 바다의 환부를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제시한다. 이 시의 상상력은 바다를 질병에 걸린 유기체로 은유하고 있다. 화자는 질환에 시달리는 바다를 연민의 정서로 조망한다. 먼저 바다는 무좀의 질병에 감염된다. 그리하여 바다의 가족인 멸치, 정어리, 상어, 고래도 통증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3연에서는 바다가 질환에 걸린 원인이 제시된다. 바다의 질병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바다로 유입되는 강의 오염 때문이다. 산업화의 발달로 인해 각종 공장에서 배출하는 폐수가 강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강으로 유입되는 폐수와 환경오염 물질은 걸레, 욕설, 쌩욕등으로 환치되고 있다. 그리하여 바다는 펄펄 뛰다 죽을 만큼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4연은 태평양에 떠도는 쓰레기 섬을 주목한다. 인류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해류를 따라 떠다니다가 북태평양 환류 해역에 타원형 꼴의 거대한 섬을 만든다. 이 쓰레기 섬은 플라스틱 제품을 일상에서 쓰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완전 분해되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린다. 플라스틱은 바다에 떠다니면서 많은 바다 생물의 몸에 들어가고 결국은 생선을 통해 우리가 섭취하게 된다. 바다 위를 떠도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를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식생활을 통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5연은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을 적시하고 있다. 과도한 탄소 배출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올라서 북극과 남극의 빙산이 녹는다. 이로 인해 바다의 수면이 상승할 뿐 아니라 각종 해일과 태풍이 발생하여 재난 상황을 초래한다. 구체적으로 남태평양의 산호와 북극의 북극곰은 생존의 위기를 맞는다. 결국 지구는 폐수, 쓰레기, 온난화로 인해 질병에 걸린 상태에 직면한다. 이는 곧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 이 시는 바다의 질환을 연민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보고서에 다름 아니다.

 

 시집 1부는 바다가 처한 환경 생태 위기의 상황을 구체적인 현장의 사례를 들어 자세하게 진단하고 있다. 이어서 2부는 질환에 걸린 바다를 치료할 방안과 대책을 형상화 하고 있다. 예컨대 1부가 진찰이라면 2부는 처방과 치료 행위로 비유할 수 있다. 즉 환경 생태 위기에 빠진 바다를 치료하여 긍정적 미래를 지향하려는 의지적 면모를 드러낸다. 시인은 그 구체적 실천 행위로 바다의 환경 생태 위기를 시 쓰기 작업을 통해 경고하거나, 바다를 치유하는 구체적 사례를 시화하거나, 바다의 본질적 기능과 인류사적 가치를 제고한다.

 

고희古稀 넘어 바다의 방언方言도 술술 들리니

사는 일에 걱정이 더 많아졌다.

바다의 큰 병 앓는 신음에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나 혼자 쩔쩔매며 약 한 첩 못쓰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래 바다를 사랑하는 게 약방문藥方文이다.

로 외쳐서 세상을 바꿔보자 하고

처방處方을 내렸다.

 

바다는 어린애다.

다정하게 손잡아 주면 와락 안겨오다가도

조금만 섭섭해지면 토라져서 몇 날 며칠이고

태풍을 몰고 온다.

약이 쓰면 토해버리고 정을 떼면 아파한다.

가슴을 한없이 따뜻하게 데워놓자.

통통 튀지 못하도록 꼬옥 안아주자.

망팔望八의 길목에서 시처방전處方篆을 쓴다.

처방전處方篆을 쓰다전문

 

이 시는 이 시집의 기획 의도를 총론적 차원에서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바다가 처한 생태 환경의 위기를 시 쓰기 작업을 통해 공론화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바다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우선 처방전을 쓰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 쓰기는 처방전을 쓰는 것과 동일시된다. 처방전이 제시하는 구체적 치료 방안은 바다 사랑이라는 원론적, 본질적 지향을 보인다.

1연은 바다의 환경 생태 위기를 사랑을 통해 벗어나 보려는 발상의 과정을 소개한다. 바다 사랑의 구체적 실천의 방안은 시 쓰기 작업이다. 화자는 작시 활동을 통해 바다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화자는 노년에 이르러 사는 일”/삶에 대해 고민과 걱정이 많아졌음을 고백한다. 그 고민 중 하나가 바다의 생태 환경의 훼손 문제이다. 그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직면한 바다의 위기를 보며 안절부절” “쩔쩔매며방황하던 화자는 바다를 사랑하자는 목적의 시 쓰기 작업을 착안한다.

2연은 바다 사랑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상한다. 예컨대 바다는 어린애다는 은유를 통해 바다의 순수성을 표출하고, 나아가 무한한 애정을 주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한다. 바다의 속성을 어린애의 성품으로 구체화 하는 것이다. 바다는 인류의 무한 애정을 받으면 순수하고 착한 성정으로 보답하지만, 애정을 주지 않으면 토라져서 태풍을 몰고 오거나”, “토해버리고”, “아파한다.” 하므로 바다가 통통 튀지 못하도록”, 즉 바다가 재난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아낌없이 애정을 부여하자고 권유한다. 이러한 화자의 주장은 곧 바다의 환경 생태 위기를 벗어나는 시 쓰기 처방전이다.

 

갯바위들이 기름을 뒤집어쓴 채

박제剝製처럼 정지해 있다.

끓여낸 해물 탕 속의 식재료들처럼

게도 조개도 갈매기마저

검은 타르의 국물 속에 건더기로 떠있다.

방제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에

장화를 신은 채

사람들은 졸도해있는 바다 곁으로 다가섰다.

끊어진 빨랫줄처럼 해안선이

바람에 출렁거릴 때

사람들은 바다의 절망을 퍼내 자루에 담고

한숨의 찌꺼기를 긁어내었다.

수평선이 푸르게 일어설 때까지

기도祈禱의 걸레로

바다를 닦고 또 닦아내었다.

먼 바다의 바람도 잊지 않고 달려와

새 숨을 나눠줬다.

말기 암 노인처럼 누워있던 바다가

저녁놀에 기대어

봄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바다를 닦아내다전문

 

이 시는 기름 유출로 인해 오염된 바다 환경을 원상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요즘 유조선의 사고로 인한 기름 유출 환경오염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따금 지구의 여러 바다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유조선의 기름 유출 사고가 떠오른다. 이 기름 유출 사고는 서남해안의 어장, 양식장, 해수욕장을 오염시켜 큰 피해를 야기했다. 당시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와 기름 제거 작업을 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시는 태안 앞바다의 기름 제거 작업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유조선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뒤덮인 서해안 바다의 광경이 사실적으로 제시된다. “갯바위는 생명성이 소멸된 박제처럼 활력을 잃고 누워 있다. 검은 기름으로 범벅된 바다에는 , 조개, 갈매기가 죽어 부유하고 있다. 비극적인 환경오염의 현장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기름 제거 작업을 위해 완전 무장을 한 사람들은 졸도해 있는 바다를 회생시키기 위해 분투노력한다. 바다는 끊어진 빨랫줄처럼 불구의 상황에 놓여 있다.

작업자들은 바다의 절망한숨의 찌꺼기를 제거해내고 있다. 바다를 되살리기 위해 사람들은 기도의 걸레로 끊임없이 기름을 닦아낸다. 이와 같은 인간의 노력에 공감한 먼 바다의 바람도 자연의 바다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동참한다. 처절한 사투 끝에 말기 암 노인처럼 누워있던 바다는 마침내 봄꽃으로 소생하게 된다. 이 시는 훼손된 바다를 싱싱한 원래의 바다로 복구하려는 희망의 작업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이다.

 

바다 환경 생태의 오염과 훼손 현장을 안타까운 태도로 제시하고, 바다의 긍정적 미래를 위해 환경을 보전하는 노력을 주장한 다음, 3부에서는 바다와 더불어 사는 희망찬 삶의 풍경을 긍정적 시선으로 조망한다. 3부는 바다로 떠나는 항해의 설렘과 건강한 삶의 희망이 편재되어 있다. 그리하여 바다는 미래로 나아갈 긍정적 삶의 공간임과 동시에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상적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일출日出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해당화 꽃밭처럼

눈부신 아침을 피워놓으면

부산항은

새벽 닭울음소리로 피곤을 털고 일어나

오륙도 너머 수평선으로 출항出港의 깃발을 단다.

닻을 올리고 뱃고동소리 항구를 울리면

이제 나는 바다의 사나이

동백섬에 봄이 왔다고

동백꽃 향기 나를 부르러 와도

손을 흔들어야 한다.

에메랄드빛 꿈을 잡으러 떠나야 한다.

바다를 품는 사람이 세계를 이끄는

신 해양시대

해양 르네상스를 이 손으로 꽃피우겠다.

항구야 잡지 마라.

파고波高 험한 길이라고 멈출 수 있나.

불끈 일어선 젊음이 시들기 전에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한 바퀴 돌아

바다의 주인이 되어 돌아오겠다.

출항出港의 아침전문

 

이 시는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수부의 시선으로 삶의 강인한 의지와 희망을 역동적인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바다에 대한 진취적인 기상을 발휘하여 해양 르네상스를 꿈꾸는 태도를 보인다. 자연의 이법인 일출조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예인하여 아침을 일으킨다. 자연의 시간인 아침해당화 꽃밭이라는 긍정의 밝은 공간으로 은유된다. 또한 밝아오는 아침의 부산항은 바다로 출항하는 배들이 부산하게 삶의 깃발을 올리고 있다. 배에 승선한 화자는 지상의 동백꽃의 유혹도 물리치고 출항을 감행한다.

바다로 나아가는 이유는 에메랄드빛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 꿈은 신 해양시대를 구가하는 것이다. 화자는 해양 르네상스를 성취하기 위한 굳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 비록 해양 강국을 실현하는 도정에 파고 험한 길이 장애가 될지라도 극복하겠다는 다짐도 피력한다. “젊음이 사라지기 전에 유럽, 아프리카의 원정을 충실히 수행하고 바다의 주인이 되겠다는 진취적인 의지를 표명한다. 이 시는 바다를 긍정적인 삶의 장소이자 미래의 희망을 실현할 공간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바다가 그리울 땐

조개 집을 짓고 살리라.

 

내 방 안엔

파돗소리를 살게 하고

 

지붕은

갈매기 노래로 덮어

 

하루 종일 마음의 돌담 안에서

바다가 뛰어놀게 하리라.

 

텃밭에는

갯메꽃 몇 포기 웃음 짓게 하고

 

황혼이 피어날 때쯤

당신이 오면

 

가장 아끼던 술병을 열어

바다의 노래를 안주로

씹어가면서

 

바다에 취해 살리라.

조개 집전문

 

이 시 역시 바다와 더불어 사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이상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 제시된 바다의 풍경은 몽환적인 동시적 분위기를 환기한다. 바닷가에 조개 집을 짓고 안빈낙도하는 삶은 바다의 순수한 자연 속성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삶은 먼저 조개 집을 건축하는 시도로 드러난다. 조개의 삶의 공간은 바다이다. 따라서 조개 집은 바다의 환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화자는 바다 자체를 매우 긍정적인 특성으로 인지한다.

화자는 조개 집을 짓고 사는 몽환적인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컨대 그는 항상 파돗소리가 들리는 거주환경을 상상한다. 나아가 집의 외부 공간에 갈매기 노래가 들리는 친자연적 상황을 꿈꾼다. 화자는 온종일 순수한 바다와 더불어 평화롭고 안락하게 사는 자연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또한 울안 텃밭에 갯메꽃을 심어 자연과 동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한다. 외롭고 맑은 자연의 삶을 이루다 이따금 친구가 찾아오면 더불어 바다의 순수성에 동화되리라는 희망도 지닌다. 이 시는 순수한 바다와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소박한 삶을 맑고 투명한 시심으로 읊조리고 있다.

 

4부에 편집된 작품들은 항해 중에 만나는 싱그러운 바다의 풍광, 아름다운 해변의 평화로운 정취, 해안도시에서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기쁨, 바닷가 여행에서 느끼는 신선한 감흥, 기행지에서 만나는 그리움과 같은 인간의 근원적 순수서정 등을 유려하게 형상화 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긍정적 세계관과 낙관적 가치관에 힘입어 소소하고 순박한 삶에 대한 희열과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어찌 보면 1부에서 보여준 오염되고 훼손된 바다의 부정적 현실이 거세되고, 희망찬 미래의 바다와 더불어 사는 꿈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 세상 한 바퀴 돌아

사나이 할 일 다 마치고 돌아와선

그래도 바다가 못 잊어 하면

조선소造船所가 환히 보이는 거제도 바닷가에

작은 집 짓고

바다랑 도란도란 얘기나 하며 살겠네.

 

심심하면 가끔 조선소造船所에 가서

큰 배 만드는 거나 보면서

그 배 커다란 몸을 이끌고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이나 보면서

낮은 돌담에 장미 대신 해당화를 올리고

바다랑 지난 세월 사랑 얘기나 하며 살겠네.

 

저녁에 인생처럼 황혼이 깔리는

바다에 취해

막걸리 몇 잔 마시고 바다를 살며시 안아주면

, 어린 곤충처럼

파르르 몸을 떠는 바다

내 몸 깊은 곳에 알을 낳는 바다.

 

먼 수평선에 운명처럼 달이 떠오르면

은빛 물결이 되리라

바다와 한몸이 되어 춤을 추리라.

아픔도 서러움도 달빛으로 씻어

온 바다 흥타령으로 푸르게 일어서게

플라멩코 춤보다 더 격정激情적인 춤을 추리라.

바다와 함께 춤을전문

 

이 시집의 표제시인 이 작품은 시집의 마지막 쪽에 실려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견고하고 치밀한 기획은 이 시집의 독창성이자 미덕이다. 바다 생태의 훼손 현실에서 시작한 다음, 개선과 보전의 의지를 다루고, 복구와 개선을 통해 원상회복된 바다의 기쁨을 노래한 뒤, 마지막 작품은 바다와 혼연일체가 된 기쁨과 희열을 구가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시인이 꿈꾸고 소망하는 이상적인 바다와의 삶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기획은 주도면밀한 기승전결의 구조로 시집의 편집을 의도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 시의 제목 바다와 함께 춤을이 암시하는 바는 바다와 함께 춤추듯이 행복하고 초월적인 삶을 이루자는 바람이다. 춤은 현실의 슬픔이나 분노를 망각하는 기쁨의 육체행위이다. 달리 말하면 춤은 현실적 삶의 조건을 초월하여 새로운 삶을 성취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낸다. 화자는 바다와 더불어 춤추듯이 사는 인생을 통해 자유와 열락과 행복을 추구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1연은 수부로 설정된 화자가 세계를 떠돌며 배 타는 일을 마친 뒤의 홀가분한 삶의 자세를 보인다. 그는 여전히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거제도 바닷가에 거주하며 바다와 더불어 사는 꿈을 드러낸다. 2연에서 화자는 항해를 하는 대신 조선소에서 배 건조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출항하는 배를 응시하며 한가로운 은퇴의 삶을 꿈꾼다. 모두 배 타는 일에서 은퇴한 이후 안분지족하는 평화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자세를 드러낸다.

3연은 은퇴 이후 늘그막에 바닷가에서 사는 소박하고 조촐한 삶의 정취를 표출한다. 그는 더 이상 물질적, 사회적 욕망 없이 바다의 자연 순리에 순응하며 단순하고 담백한 생활을 살리라 다짐한다. 4연 역시 바다와 혼연일체가 되어 사는 행복하고 완전무결한 삶을 꿈꾼다. 화자와 바다는 불가분리의 동일화 상태로 한몸이 된다. 화자는 현실의 아픔도 서러움도망각하게 하는 열락의 격정적인 춤을 추며 완벽하게 이상적인 바닷가의 삶을 희구한다. 이 시는 바다와 일체화된 삶을 추구하는 소망과 바람이 서정적으로 순수하게 표상된 작품이다.

 

바다의 탁본拓本을 뜨러

삼척엘 갔네.

그믐밤의 어둠을 짙게 칠했다가

초하루 아침의 맑은 햇살로 벗겨내면

파도의 싱싱한 근육들과 갈매기 소리,

삼척 사람들 다정한 미소가

해국海菊으로 피어있네.

태백을 넘어올 때 서둘러

손 흔들던 가을이

죽서루와 어깨동무로

빨갛게 타고 있는 곳

찍혀 나온 바다엔

좋아하면 모두 다 주는

삼척 사나이의 호탕한 웃음이

산호초 사이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네.

삼척에 가면전문

 

이 시는 바닷가 도시인 삼척에서 느낀 정회를 서정적으로 표상한 기행시이다. 여기에서도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삶의 풍경을 매우 긍정적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즉 바닷가 마을인 삼척은 행복하고 안락한 마을공간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아마도 도시에 사는 화자는 바다의 탁본을 뜨러 자유와 생기가 넘치는 항구도시를 방문한다. 그가 삼척에 가는 이유는 그믐밤의 어둠”/현실의 시련과 고통을 제거해주는 파도의 싱싱한 근육들과 갈매기 소리를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삼척 사람들의 따스한 인정미를 맛보기 위한 것도 이유가 된다.

화자가 방문한 바닷가 마을 삼척은 해국이 피어 있으며,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는 공간이다. 화자는 삼척이라는 공간을 매우 화평하고 이상적인 장소로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는 삼척이 순수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삶을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척 사나이와 바다의 산호초는 서로 화응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자는 순수 이상의 공간인 삼척에 가서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삶에 동화되어 현실의 장애와 고통을 말끔하게 제거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이별을 말하던 날 빛나던 해당화는

다홍빛이 아직 다 바래지 않았는데

나는 왜 노을 지는 저녁이면 여기에 와서

쓸쓸히 바다에 취해 있는가.

주인 없는 찻잔을 바라보며

긴 한숨 내뱉으면

그리움은 사랑보다도 달콤하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전문

 

이 시는 인간의 근원적 정서인 그리움, 쓸쓸함, 외로움을 간명한 서정적 어조로 표상하고 있다. 화자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역시 바다가 보이는 찻집이다. 그는 미지의 바다를 조망하며 인간의 본질적 감성을 통해 존재론적 사색을 하고 있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일견 바다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바다는 다시 매우 포괄적인 내포적 의미를 지닌다. 바다는 화자 혹은 독자가 그리워하는 모든 대상을 환치하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마침내 인간의 본질적 정서인 쓸쓸함과 외로움을 포용하는 그리움의 대표적 공간으로 자리매김 된다.

 

엄기창 시인의 이번 시집 󰡔바다와 함께 춤을󰡕바다라는 하나의 시적 대상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탐구하여 형상화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또한 시집의 구조를 기승전결(1-4)의 포괄적 구성으로 기획한 점 역시 탁월한 편집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시사적 차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와 의의를 담보하고 있다. 이 시집은 바다의 환경 생태에 대한 고민과 우려를 교훈적이고 목적적 측면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이어서 오염되고 훼손된 바다를 원상회복하려는 의지와 실천의 광경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다음으로 바다와 더불어 사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서정적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실생활 체험에서 우러난 바다와의 교감과 공감을 긍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집의 미덕은 공소한 정서와 허황한 관념을 철저히 배격하고, 바다에 대한 현실 체험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이 시집은 바다와 더불어 이루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진정성 있는 현장감을 획득한다. 또한 바다에 대한 구체적 현장 체험은 시인의 서정적 상상력을 통과한 아름답고 미려한 표현에 힘입어 수준 높은 시적 완성도를 성취한다. 시인은 결국 바다에 대한 다각도의 집중적인 시적 성찰을 통해 자연주의와 생태주의의 세계관을 표상하고 있다. 시인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삶의 모델로 순수한 바다와 더불어 사는 안빈낙도의 소박하고 조촐한 생활을 제시한다. 시인은 바다의 순수성을 그리워하는 낭만주의자로서 유랑의 자유와 초월의 욕망과 도취의 행복을 꿈꾸고 있다.

 

 

 

posted by 청라

도자기 무덤에서

 

 

흠 있는 것들끼리 거기 모여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준다

 

깨어진 것들끼리 거기 모여서

서로의 절망을 다독여준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은 모르리라

이렇게 어둡고

추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삶의 받침대에

손때 한 번 못 묻히고

 

지옥 불 나오자마자

산산이 깨어진 목숨이 있다는 것을

 

 

 

posted by 청라

징검다리

징검다리

 

 

하나쯤은

이가 빠져 있어도 좋다

 

네가 내게 들어와

삶을 춤추게 하던 그 다리 같이

 

등이 간지러운 시간만큼

설렘이 부풀어 올라

 

그 날 산바람에 묻어오던

뻐꾸기 소리처럼

올 것만 같다

 

한 번 업은 후에

평생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아 

posted by 청라

팔월의 눈

팔월의 눈

 

 

그 날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눈보라치는 연미산 고개를 넘으시면서

하얗게 덮인 금강의 백사장이며 빨랫줄처럼 흔들거리는

공산성의 성벽들을 샅샅이 눈에 담으셨다.

내가 이제 여기 또 올 수 있을지 몰라

아버지의 쉰 목소리에서 눈바람소리가 울렸다.

쉰아홉에 휘몰아친 팔월의 눈보라

간이 돌처럼 딱딱해져서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몇 마지기 땅뙈기로 아들 셋을 대학 보내며

꿈꾸었을

아버지의 무지개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는 벌판처럼 쓸쓸해진 그의 시선을 피해

너무도 일찍 와버린 아버지의 겨울을 생각했다

첫 월급을 타서 보낸 한약 한 재가

아버지의 삶에 이른 눈보라를 불러왔을까

아들의 첫 선물에 너무도 좋아하던 환한 얼굴 너머로

죄책감처럼 몰래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꺼질 듯 꺼질 듯 숨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삶의 된서리에도 푸르게 견뎌가던

명아주 한 포기 시들어가는 소리였다.

그 해에는 눈도 참 일찍 왔다

posted by 청라

득음得音

득음得音

 

 

상수리나무 잎새에 매미 소리가 박혀있다

한 달의 득음得音을 위해

칠 년을 침묵의 폭포 아래서 피를 토한

고단한 생애가 판화처럼 찍혀있다

매미는 알았을 것이다 때로는 덧없는 길도

묵묵히 걸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노래 한 곡 반짝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무명가수의 뒷모습이나

하루의 삶도 보장받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우화羽化

결코 부질없는 생애는 아니라는 것을

매미가 한 달을 소리쳐 울기 위해

칠 년을 고행 하듯이

시 한 편 남기기 위해 메아리 없는 외침

수도 없이 외쳐대는 시인들이여

모아이 석상처럼 매미는 시력을 반납한 채

껍질로 남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의 득음得音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온 세상을 쩌렁쩌렁 울려줄 것인지

사람들의 가슴에서 꽃으로 피어날 것인지

세상에 무의미한 생애란 없다

 

posted by 청라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가을은

오래 묵혀두었던 그리움을

꺼내보게 하는 계절

 

은행잎마다 내려앉은

노란 그리움에 같이 물들다 보면

서랍 속에 넣어둔 편지를 읽게 된다

 

그리움은 나비이다

 

보고싶다보고싶다보고싶다

갈바람 한 줌에도

무수히 날아오르는 그리움의 군무

 

진정한 그리움은

너에게 닿지 못 한다

간절함의 무게로 떨어져 흙이 된다

 

줍지 마라

흘러간 사랑은

흙이 묻은 채 그냥 놓아두어라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posted by 청라

가을의 파편

 

 

조그만 은행잎엔

오롯이 가을이 담겨있다

 

속삭이는 햇살과 나른한 눈빛

포근히 안아주는

고향의 마음

 

나는

가을이 가장 눈부시게 내려앉은

은행잎 한 장 가슴에 깔고

세상에 반짝이는 모든 슬픔들

널어 말린다

 

꽃처럼 떨어진 젊음들과

레일에 깔린 비명

노릇노릇 향기롭게 말라갈 때쯤

 

!

세상의 눈물들아 이젠 모두 가자고

나비처럼 모여 팔랑대는 가을의 파편

 

posted by 청라

경고

시조/제3시조집 2022. 11. 3. 07:37

경고

 

 

있을 때 이 말 하고

없을 땐 저 말 하고

 

수시로 말 바꾸어

세상을 희롱하면

 

언젠가 큰 코 다치리

큰 일 하는 사람들아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