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연을 찾아 배회하는 상상력

 

양병호

(시인 전북대 교수)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 야윈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겨울 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退任

눈부신 정적靜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채우면.

수만 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꺼지듯 지워지는 허수아비

  -엄기창, 겨울 허수아비전문

 

이 시는 겨울 들녘의 허수아비를 통해 노년의 인생을 서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허수아비는 노년에 이른 시적 화자의 마스크/아바타로 기능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노년은 다양한 자연의 이미지와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소멸의 아름다움을 자연 사물과 풍경의 유려한 직조를 통해 감각적으로 구상화시키고 있다.

시인의 자연에 대한 인지는 바람의 살 내음이라는 감각은유를 통해 탁월한 표현효과를 성취한다. 여기서 바람은 화자의 살아온 생애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나아가 무색무취의 바람살 내음이라는 구체적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추상을 구상화하고 있다. 말하자면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는 화자의 열정적인 생애가 공허한 세계를 충만하게 변용하는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인은 텅 빈 공허의 세계 속에서 허수아비에 주목한다. 그는 허수아비로부터 아버지를 환기한다. 물론 이러한 직관은 화자 자신에게로 전이되어 나아간다. 예컨대 시인의 상상력은 들판의 허수아비로부터 아버지로 또 다시 자아에게로 투영된다. 결국 화자는 노년에 이른 자신의 삶이 아버지의 살아온 생애와 겹치는 것임을 자각한다. 다시 말해 인생의 공통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 공통성은 야윈 뒷모습으로 표상된다. 다시 자신과 아버지 둘 사이의 인생의 공통분모는 허수아비로 수렴된다. “허수아비는 삶/인생에 대한 허무적 페이소스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말하자면 인생이란 허수아비의 이미지와 같이 공허하고 운명론적인 것임을 감각적으로 표출한다.

노년에 이른 화자는 이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서를 드러낸다. 그의 시선은 죽음의 계절에 당도한 들풀의 신음풀벌레 소리의 침묵에까지 확산되어 나간다. 화자는 이렇게 소멸이 예정되어 있는 자연 사물들이 자아의 존재론적 상황과 유사함을 이해한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자연 사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위상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사랑하는 자연 사물의 소멸의 운명은 결국 자신의 삶으로 치환된다. 화자는 자신의 존재론적 소멸의 상황에 대한 연민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상징/죽음 앞에 당도한 자연 사물들은 삶의 과제들을 수행한 뒤 순연히 운명을 맞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당당한 퇴임으로 표상된다. 자연 사물들의 퇴임은 기실 화자의 존재론적 운명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소멸에 대한 화자의 태도는 의연하고도 강직하다. 그러한 당당한 태도는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이법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상징을 수긍하는 화자의 의연한 자세는 눈부신 정적의 순간에 삶의 번뇌를 해탈하는 범종소리와 조우한다.

이 시는 허수아비라는 사물을 통해 존재론적 고뇌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 존재론적 고민은 허무와 소멸의 관념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화자의 존재의소멸과 허무를 자연의 이법으로 당당하게수긍한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허무와 소멸에 대한 고뇌는 긍정적인 수용의 태도로 인하여 맑고 투명한 정서로 승화된다. 이 시의 이러한 관념과 정서는 다채롭고 선명한 자연 사물과 이미지를 통하여 구체성과 감각성을 훌륭하게 성취한다.

 

 

시문학20183월호 이달의 문제작 <>’

posted by 청라

한국 명시조 감상

 

                                          - 엄기창 편

 

 

                                       석야 신웅순

 

1.

 

시조와 시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3612소절 형식의 유무? 맞다. 그러나 그만으로 말할 수 없는 구석이 시조에게는 있다.

시조는 시조시가 아니라 그냥 시조이다. 그것이 다르다. 음악과 함께 있던 시조가 1920, 30년대부터 읽고 짓는 시조로 탈각, 지금은 원 의미와는 달리 자유시와 대가 되는 정형시의 한 형태로 굳어졌다.

시는 자유시라 사용 공간이 매우 넓다. 규격화된 시조와는 견줄 바가 못 된다. 애초에 음악이었던 시조창에서 시만 빼내 형식에 맞게 사용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조를 시조시라고 하자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맞다. 시조에 내재된 가락을 배제하고 나왔으니 시조는 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형시일 수만 없는 것이 또한 시조의 숙명이기도 하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합니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시는 시다워야하고 시조는 시조다워야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시조가 시가 되어가고 있는 작금에 적절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시조시를 시조로 회복시킬 때가 되었다. 사람들은 회복제가 언어의 음악성이라고 말들하고 있다. 자유 시인들이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모 원로 비평가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유 시인들이 이제 철이 드는구먼

흘려들을 수만 없는 가슴 치는 말이다. 일단 논의는 뒷담으로 미뤄둔다.

 

2.

 

어느 날 엄 시인께서 봄날에 기다리다라는 시조집을 부쳐왔다. 자유 시인이 웬 시조집을? 언젠가 같이 한 식사 자리에서 필자한테 저도 시조를 씁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그냥 흘려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시조집을 보내왔다. 엄 시인이야 대전에서 시 잘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시조도 잘 쓸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 시인 시조를 알아야하고 사랑해야한다는 당위성, 그 하나만으로도 필자의 졸필은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하이꾸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가. 얼마나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는가를 생각하면 시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참으로 낯 들기가 부끄럽다.

 

3.

 

차 마시다 창 너머로

봄빛 새론 산을 본다

표구하지 않아도

늘 거기 걸린 풍경

상큼한 녹차 맛처럼

가슴으로 다가온다

 

한사코 초록빛을

놓지 않는 산이기에

시드는 난을 위해

창 열고 산을 맞다

성긴 잎 사이에 꽃대

혼불 하나

켜든다

 

- 경칩일기전문

 

조지훈의 파초우를 읽는 듯하다. 봄빛이 새롭다. 멀리 있지 않은, 녹차 맛처럼 가슴으로 다가오는 산. 표구하지 않아도 늘 거기에 풍경이 걸려있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어느 선비의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이다.

선비는 난을 키우고 있다. 한번도 초록빛을 놓지 않는 산이기에 난을 위해 창을 열었다. 겨우내 동안거에 들었던 난 하나가 산을 맞으며 꽃대를 세워 혼불 하나 켜들었다. 난도 산에서 산빛을 빌려오고 물소리를 빌려와야 꽃대를 세우고 꽃을 피울 게 아닌가. 매화는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난은 사람을 그윽하게 한다. 산과 마주한 어느 젊잖은 충청도 선비의 수묵화 한폭이다.

이렇게 엄시인은 시조 한 수를 시조집 첫장에 앉혀놓았다. 몇 장을 더 넘겼다.

 

시집 제목으로 쓴봄날에 기다리다에 눈이 멎었다. 박용래 시인의 구절초를 생각나게하는 시조이다. 돌아가신 누님을 위한 헌정 시조이다.

 

작은 누님,

오셔요.

버들피리 불게요

 

회재 높아 못 온다 해서

낮게 깎아 놓았어요.

 

산굽이

돌아 돌아서

아지랑이만 날리네요.

 

산그늘이

내려와서

장막처럼 드리우고

 

남가섭암 불빛이

별빛으로 일어서요.

 

밀양땅

산자락에 누운

누님 기다리는 봄 하루

 

-봄날에 기다리다전문

 

그렇다. ‘누님어머니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겨운 말이다. 시인은 몇 년 전 누님의 부음을 듣고 대구까지 울면서 갔다. 밀양 땅에 묻고 돌아와서는 봄날 앵두꽃 필 때쯤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하염없이 누님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어머니, 누님만한 정 많은 이가 천지 어디에 있을까.

버들피리 불 테니 누님은 이 소리를 듣고 오라는 것이다. 회재가 높아 못 온다 해서 산도 낮게 깎아놓았다는 것이다. 누님의 첫제사에 누님이 좋아하던 고향의 솔바람소리, 뻐꾸기 울음소리를 선물로 가져와 누님의 무덤가에 심어 드렸다고 한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그 산굽이. 산자락에 누운, 정 많은 오지 않을 누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굽이굽이 정 많은 시인. 이도 잔잔하고 그윽한 산자락 같은 수묵화 파스텔톤 한 폭이다.

 

계룡산 산행 길에

단풍잎 하나 따서

아내의 화장대에

몰래 올려놓았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내 가을 편지이다.

 

얼핏 연 책갈피에

내게 보낸 연서 한 장

곱게 말린 단풍잎에

배어있는 따스한 정성

아내도 날 사랑한다는

홍조 어린 답신이다.

 

- 가을편지전문

 

시화가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어야 한다. 시인은 계룡산 갑사를 다녀오신 모양이다. 춘마곡, 추갑사라하지 않던가. 갑사만큼 아름다운 만추의 단풍은 없다.

계룡산 산행길에 단풍잎 하나 따서 아내 화장대에 올려 놓았다. 아내에게 쓴 가을편지이다. 시집이었나 싶다. 책갈피에 연서 한장 곱게 말린 아내의 따스한 정성, 단풍잎이 들어있다. 아내의 홍조 어린 답신이다. 단풍잎 하나가 사랑의 편지가 되고 사랑의 답신이 되는 평범한 것 같지만 비범한 신의 한 수이다.

책이 있으면 책을 읽어야 하고 술이 있으면 술을 마셔야한다. 재자가인이 있으면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해야한다. 아내가 있으니 지극히 사랑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잘 쓰는 사람은 이렇게 시를 쉽게 쓴다.

 

벽을 비워 놓았더니

산이 들어와 앉아 있다

 

꽃 향기

골물 소리

집안 가득 피어난다

 

채우고 채워진 세상

하나 비워 얻은 평화

 

- 여백전문

 

벽에 장롱을 비웠더니 산이 대신 들어와 앉았다. 산이 들어오니 꽃향기, 골물소리 집안 가득 피어나지 않는가. 세상이 채워진 기분이다. 하나를 비워 얻은 커다란 평화이다.

자연 합일, 안빈낙도의 경지랄까. 김장생의 시조가 생각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간 지어내니/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 두고/강산은 들일 데가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세상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가난하지만 가지지 못할 뿐이지 누릴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지금인들 못 누릴 게 무엇이 있는가. 이를 두고 누가 시조를 싸잡아 음풍농월이라고 말들을 하는가.

물에서 나는 소리가 네가지 있는데 폭포 떨어지는 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 여울물 지는 소리, 붓도랑 흐르는 소리가 그것이고,바람이 내는 소리도 세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솔바람 소리, 가을 잎 지는 소리, 물결치는 소리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와 이런 여유의 참맛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아깝고 서러운 것이랴. 한낱 시를 치유거리로만 생각할 것인가.

 

4.

 

시조창은 뻗는 음이 있고 떠는 음이 있고 흔드는 음이 있다. 속청소리도 있고 막는 소리도 있고 푸는 음도 있다. 가곡창에는 처내는 음이 있고 굴리는 음이 있고 짚고 넘어가는 음도 있다. 밀어올리는 음도 있고 잇고 끊는 음이 있고 강하게 내는 음도 있다.

시조는 이런 음악성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시조는 시와는 판연 다르다. 언어만 같을 뿐 태생 자체가 다른 것이다. 시에도 음악성이 있는데 시조에 있어서 더더욱 말해 무엇하겠는가. 필자의 우문일지 모르나 최소한 그런 생각을 갖고 시조를 써야 맛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겨울 시인의 훈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휴머니티한 시조 한편이다.

 

눈 녹는 시장 골목

비둘기는

맨발이다

신발 전 털신 한 짝

사 신기고 싶구나

종종종

서둘러 가는

머리 위엔 하얀 눈발

 

-비둘기- 시장풍경 5첫수

 

엄기창 시인은 충남 공주 출신이다. 공주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5년 월간 시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2014년 퇴임, 정훈문학 대상 등을 수상한 바가 있다.

엄시인의 시조를 소개한 것은 시재 있는 많은 자유 시인들이 시조를 많이 사랑하고 많이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이다. 시조 쓰는 일이 새채비이기는 하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쓸 수 있는 것이 또한 시조이기도 하다. 시조는 우리 선인들이 수백년을 배앓이 하며 낳은 옥동자가 아닌가. 그 옥동자가 지금까지 700여년을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여기라도 좋다. 많은 이들이 쓰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 시인들은 필히 시조를 쓸 지언저.

한국문협 이사장 문효치 시인도 필자에게 신작 시조집 나도 바람꽃을 보내왔다. 주옥같은 명편들이다. 뽑아 한 수 소개한다.

 

바람 속

파도 소리

 

못 말리는

몸살이다

 

누구를 사모하여

바다 끝에 기대섰나

 

뒷산이

우루루 몰려와

물속으로 뛰어 든다

 

-우루루 - 수송나물전문

 

 

 

 

-시조문학,2018.봄호,92-98.

 

 

 

posted by 청라

嚴基昌 作品解說

 

 

절제와 스밈의 시학

 

조 재 훈

<시인. 공주대학 국어과 교수>

 

󰊱 시인의 연장선상에 작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T.S.엘리어트는 그의 여러 논문 가운데에서 힘주어 말했고, 그 영향으로 이른바 영 미의 이십세기 초반 분석 비평가들은 무슨 의도의 오류라든가 영향(정서)의 오류 등을 내세우면서 작품으로부터 작자와 독자를 단절시킴으로써 작품의 유기체적 자율성을 강조한 바 있다. 윤리 도덕 또는 역사적 비평이 지배하던 당대 문학연구 풍조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비판이라고 이해된다. 가령 소쉬르의 언어이론도 십구 세기 유럽의 언어학을 지배하던 독일 라이프니츠대학 중심의 낭만주의적 역사비교언어학의 거부에서 태어난 것이며 그것은 둘 모두 자본주의 발흥과 기계문명의 첨단화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쉬르의 언어이론에 기초하여 생겨난 파리의 구조주의나 기호학은 가장 적정한 최신의 그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문화를 지탱하는 역사, 경제 등을 살펴,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따라서 작품 안에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필요 충분조건이 다 들어 있다는 견해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는 있어도, 역사의 왜곡이 심한 제삼세계 등의 겨레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앞에서 장황하게 이러한 말을 늘어놓는 까닭은 엄기창의 사람됨과 나와의 인연을 조금이나마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다.

공주교육대학에서 일년 쯤 근무하다가 내가 공주사범대학으로 옮긴 것은 천구백칠십 년 오월이었다. 그 이전에도 사 오년간 시간강사로 나왔던 터라 그리 낯선 느낌은 주진 않았다.

전임이 되어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수요문학동인들과의 자리였다. 최병두, 노동섭, 심규식, 조동길, 구중회 등 쟁쟁한 젊음들이 동나도록 공주의 막걸리를 퍼마시며 공주 좁은 골목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해박(?)한 이론의 싸움이 그칠 줄 몰랐고, 그 싸움의 불꽃으로 조금씩은 저린 가슴들을 태우곤 하였다. 후끈 달아오른 이런 열기 속에 그들의 후배로서 뛰어든 사람 가운데에 유병환, 엄기창 등이 있었다. 그들의 객기는 동인지, 시화전, 문학의 밤 등 쉬임없이 나타났으며 무슨 허당집인가 하는 이름의 괴짜 문집을 간행하기도 했다. 발바닥이 땅 위에서 몇 뼘은 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속에서 엄기창은 유난스럽게도 촌색시처럼 조용했고 수줍어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편이었으며 그리고 늘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 방(연구실)을 찾아와 마곡사 근처에 있는 가교리 고향마을의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 바람에 나도 촌 태생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의 이야기를 여러 시간 맞장구를 치면서 그야말로 열심히 들은 적이 있었다. 수태극으로 휘돌아 흐르는 냇물과 그 물 속에서 노는 가지가지 물고기 이야기, 무성산의 허물어진 성곽과 그 곁에 있는 샘물 그리고 거기에 얽힌 홍길동 전설, 화전신 이야기 등이었는데, 이번 시집의 원고를 통독하다 보니 그는 아직도 유년의 고향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변하지 않는 그의 느긋한 말씨와 부처님의 미소인 듯 따사로운 그의 소리 없는 웃음이 그의 사람됨과 문학의 성향을 모두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겸허한 순결성이라고나 할까? 노자가 일찍이 갈파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처럼 낮은 데서 표없이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엄기창이란 선생님이자 시인이다. 73년이던가 74년이던가, 엄기창은 시문학에서 주최한 전국대학생문예작품 공모에서 당당히 당선되었으나 그런 것에 자만하지 않고 묵묵히 시작에 전념함으로써 일년 후(75)문단 데뷔의 관문을 거쳤다. 요즈음 너도 나도 무슨 자격증을 얻듯이 추천입네 뭐네 하여 문단이라는 흙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나는 우리 문학의 건강을 위하여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이다. 이 말은 엄기창이 이른바 소정의 절차를 밟아 문단이라는 데에 나갔으나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더욱 더 진지하고 겸허해진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의 문학동인에서 핵심적인 위치로 활약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엄기창을 조용하고 맑은 의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펴내는 이 시집에는 그런 향내가 은은히 스며 있다.

 

󰊲 시는 아무래도 응축이 그 바탕이다. 산문이 진술을 통하여 확산을 하는 장거리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시는 압축을 통하여 사물의 핵심을 전광석화로 드러내려는 최단거리의 장르라 이를 만하다. 산문에서는 할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비교적 마음 턱 놓고 차근차근 이야기할 수 있으나 시는 그럴 수가 없다. 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는 상황에의 설명이 아니라 존재에의 부가이다. 모울튼이 시를 일러 산문의 토의문학과 대비하여 창조문학이라고 한 것은 소박한 대로 정곡을 찌른 견해이다. 지금은 덜 하지만 오래 전에 나는 시를 무슨 보석처럼 생각하였고 또 무슨 향수의 가장 진한 원료라고 여겼다. 흙의 정()으로서의 보석은 견고하고 빛나며 아름답다. 물의 정으로서의 향료는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온 방안이 향내로 가득해진다. 둘 다 최대의 밀도로 농축되어 있다. 역시 시도 그래야 한다고 믿어 왔으며 그것은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언어의 경제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다시 말하여 최소한의 언어를 선택하여 최대한의 감동과 충격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접은 시각이 정해져 있으면 그것에 따라 어휘 하나, 토씨나 어미 하나, 쉼표 마침표 하나에 숨을 불어 넣으며 그것들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허가 그의 널리 알려진 문장강화의 앞머리에서 글을 잘 쓰는 것은 쓸데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능력에 있다고 설파한 적이 있는데 존재의 환기 또는 그 번역으로서 에 있어서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여러 날, 여러 달 또는 여러 해 고심 끝에 문자화 한 시를 거개의 독자는 신문기사를 읽듯이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고 나서 무슨 수작을 하는지 모른다고 투덜댄다. 물론 작품에도 그 근본 원인이 있겠으나, 어느 면에서는 속도와 피부적 향락을 요구하는 이 시대의 독자에게 책임이 더 크다.

엄기창의 시는 언어의 경제 원리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어느 시, 어느 구절 하나 그냥 허술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길고 긴 이야기와 감추어진 여백의 의미를 가득 넘치게 거느리고 있다. 빠르게 스쳐 읽는 사람에게 그의 시는 문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작자가 힘쓴 몇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차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음미하듯 읽는다면 그의 시가 가진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그의 어느 작품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서울의 하늘 위엔

늘 천둥이 운다.

내려올 곳이 너무 많아서

내리지 않고

北岳에서 南山으로 흐르며

울기만 한다.

대밭에 참새처럼 숨어

지저귀는

사람들은 알리라

천둥이

누구의 머리 위에서

우르룽 우르룽 울고 있는지....

번갯불보다 고운 어둠 밑에서

사람들은 번갯불에 타면 재가 될

靑紅의 꿈들을 만들고 있다.

 

그의 서울의 천둥의 전문이다. 그의 시 가운데에는 특이할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조금도 격하지 않다. 차분한 가락과 상징을 통하여 할 말을 시로 드러내고 있다.

서울 하늘에 천둥울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 하늘에만 어떻게 일년내내 비가 오고 천둥이 치겠는가. 그렇다고 과장도 허구도 아니다. 다른 의미를 뒤에 거느린 암시와 상징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온갖 악의 온상일 수 있다. ‘항구라는 언어의 의미군에 숨어 있다는 다른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고향의 시골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울은 반 자연이며 반 고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천리(天理)에 따른 한울님의 응징인 천둥이 항상 울기 마련이다. 내려와 인간들에게 응징할 곳이 너무 많으나 그냥 스스로 울 뿐, 가시적인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으로서의 참새 떼같은 인간들은 조금도 뉘우침이 없다. 하늘의 말 ―― 번갯불에 타면 그냥 없어지게 될 갖가지 욕망의 꿈을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다. 어둠이 번갯불보다 곱다는 시적 진술은 역설이다.

시인 스스로의 내면을 향할 때에는 더욱더 응축의 정도가 심해진다. 그의 연작시短歌는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눈 위에 떨어진

피 한 방울처럼

너와 나는 남남이다.

새벽부터 木鐸 소리가

귓가에 요란하다.

宇宙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고

後光에 싸여 온 너의

하얀 손

그 하얀 손의 고갯짓

四十九日 밤낮을 눈 안 붙이고

나를 위해 木鐸만 두드리더니

너는 하얗게 昇天하고

아직 붉은

나와, 너는 남남이다.

―― 「短歌 3

 

나와 너 또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형이상적 시상의 작품이다. 삶은 사실상 너와 나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너의 존재와 나의 욕망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고독의 숙명, 그것이 삶의 거짓 없는 모습일지 모른다. 이 시는 그러한 절망과 벽의 문제를 담담히 그러나 깊이 있게 드러내 주고 있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곧 하얀 눈과 붉은 핏방울의 선명한 대비는 백설공주의 그것처럼 찬연히 아름답다. 그러나 하는 거부(흰색은 배제이니까), 차가움이며 다른 하나는 타오름(붉은 색은 불의 이미지를 지니므로)과 뜨거움으로서, 서로 단절되어 있는 상태다. 이것이 이 시인이 본 존재의 진면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해(讀解)의 결론은 하나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새벽 목탁 소리를 배음(背音)으로 하되 그것은 우주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른하얀 손, 너의 나를 향()한 간절한 염원이다. 그러나 지상에 내린 눈이 곧 소멸하듯이 하얀 눈의 그 하얀 손은 사라지게 된다. 나는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리하여 는 영원히 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이러한 시적 요소들에 의하여 이 시는 진부함을 벗어나 그 나름의 빛을 얻는다.

엄기창의 시를 눈여겨보면, 잠언풍이다. 짧은 서정시 같아도 그 속에서 그 나름으로 삶의 의미가 종교적으로 천착되고 있음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엄기창이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의 하나이다.

 

󰊳 견고한 시 쳐놓고 건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미지스트의 시들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명석하고 선명하지만 그런 만큼 깊이가 빤히 드러나 울림이 적다.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시 읽는 시법독해의 재미는 줄지언정 감동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랜슴 같은 이가 그런 유의 시를, 뿌리 없이 모래 위에 꽂아 놓은 시라고 빗대면서 물질시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럴듯하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있어서 상징주의적인 시보다는 투명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울림은 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지 위주의 시는 울림을 통하여 스민다기 보다는 금속성으로 빛난다 할 것이다.

엄기창의 시는 단단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결코 드라이하지 않다. 봄비처럼 촉촉이 스미는 그 무엇이 있다. 그 자력(磁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바탕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시적 형상화의 성공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문학은 말하기(telling)보다 보여주기(showing)를 통해 구체성으로 나타내야 하며 그것은 시에서 극치를 이룬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형상화 또는 육화(incarnation)라 부른다. 관념의 노출이 시가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관념이 용해된 시적 육체를 얻을 때 공감대가 넓고도 깊어진다. 육화와 더불어 또 하나 지적할 일은 시의 서정성이다. 우무래도 시는 감성의 문학이며 직과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부분이다. 엄기창의 시는 잔잔한 서정을 예외 없이 배음처럼 깔도 있다. 거기에다가 시의 호흡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하나는 위와 같은 기본적인 바탕위에 그가 가진 시정신의 취향이 보여주는 친화력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자연 친화의 경향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보내는 태도는 고금 시인의 일반적인 경향이며, 특히 동양시의 전통이서 엄기창의 자연 친화는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예찬이 아니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계문명의 세계에 대한 거부와 농촌(고향) 붕괴에 대한 연민의 정을 포괄한다. 둘째로는, 미세한 것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벌레 한 마리, 새 한 마리, 들꽃 한 송이에 대해서도 그는 애정을 보낸다. 주로 그의 애정은 자연에 향해 있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것이라 대체로 작고 힘없는 것들이다. 셋째로는, 삶의 현상을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쪽의 보이지 않는 데를 투시하여 의미를 드러내려는 예지가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시냐 아니냐의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때, 엄기창의 시는 시로서의 품격을 지닌다.

이러한 여로 통로를 통하여 오는 엄기창의 시가 지닌 스밈의 친화력은 소중하다.

 

[] 溪谷으로 돌 돌

연두빛 生命 굴리는 십자매 울음

그 울음소리로도

일어서지 않는

……

――「K화백 화실 풍경

 

[] 굳게 입다문 산그늘 허물어진

반달만한 양지에

初産으로 낯 붉힌 진홍빛

저 간절한

말 한 마디

――「三月의 한 연

 

[] 한 여자가 끊고 지나간

,

눈발이 날린다.

滿月처럼 둥근 배가 쫓아와서

앞길을 막아서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단절의

끈 한 편에

풀꽈리처럼 조그맣게 매달린

내 금간 하루

――「의 앞부분

 

[] 막차는 차갑게 식어

어둠에 풀린다.

――「막차 안에서첫 부분

 

[] 하나의 離別

별처럼 반짝이지만

두 개의 離別, 세 개의 離別,

수많은 이별들은 반짝이지 못한다.

――「短歌 5첫 부분

 

그의 시에는 신선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시 구절은 꽤 많다. 그 이미지들이 단순히 장식적인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가 의도하는 시상과 튼튼히 그러면서 기발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적 효과를 배가하고 있다.

위의 인용은 극히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윗 시 중 []~[]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자연은 섬세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으며 그것은 단아한 호흡에 얹혀 독특한 시적 이미지로 전이된다. 특히 [][]가 그러하다. 귀엽고 앙징스러운 십자매의 울음소리와, 봄이 되어 얼음 풀린 계곡의 물이 연두빛으로 오버랩 되면서 그것을 아직은 철이 이른지 그냥 묵중한 채 웅크리고 있는 산에 연결시키고 있다. 제명에 의거하건대 아마 어느 화가의 화실에 걸린 그림의 인상이 아닌가 싶다. []도 진달래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굳게 입 다문 산그 그늘 허물어진’ ‘반달크기의 작은 양달에 피어 있되, 겨울 지나 피어 있는 그 어려움과 경이스러움이 여인의 초산과 같다고 말한다. 초산의 비유는 신선하면서도 적절하다. 어려움, 경탄, 생명에의 외경, , 핏덩이 탄생 등의 연상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간절한/말 한마디>는 초산의 긴장과 염원으로 충전된다.

[] []는 퍼스나의 고독이 자연 속에 용해되어 있는 예이다. ‘한 여자가 단절시키고 떠나가 버린 길은 적막과 좌절의 그것이다. 그리하여 차가운 눈발이 사정없이 볼을 때린다. 하얗게 눈 덮인 벌판처럼 세상은 없음으로 꽉 차 공허할 따름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배는 아직 보름달처럼 둥글지만 그래도 역시 앞을 가로막는다. <은빛 반짝이는 단절>일 밖에 없다. 퍼스나의 고독은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조그맣게 풀 꽈리로 매달린 그 이미지가 단절의 처절성을 상당부분 완화시킴으로써 <금간 하루>정도로 머물게 해주고 있다.

 

󰊴 무던하다는 말이 있다 엄기창에게 꼭 들어맞는 말로 여겨진다. 고등학교 시절의 팔각정동인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거의 24~26년간 시에 열정을 쏟은 셈이며, 많은 재능들을 물리치고 문단이라는 데에 첫 선을 보인 지도 거의 20년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안달복달하면서 시집 간행과 발표에 눈독을 드릴 테인데, 그냥 묵묵히 누구를 부러워 할 것도 없이,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이 시만 다듬다가 이제 멱이 찼다고 느꼈는지 그동안 발표한 것들을 정리하여 한 권으로 묶게 되었다. 오늘날 문학 공해의 시대에 나는 그런 엄기창의 겸허와 진지성에 대하여 신뢰감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고전적인 시작 태도에 관해서도 긍정적이다. 모던이니, 포스트모던이니 해도 역시 시의 올바른 길은 엄격한 언어의 절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어의 적절한 절제에서 압축성을 갖게 되며 그 압축에서 리듬이 태어나고 그 리듬은 힘이 되어 우리를 울린다. 어떤 평자가 정지용의 시를 언급하면서 정곡을 찌른 말처럼, 언어의 절제는 욕구의 억제에 맞물려 있는 것이다. 턱없는 미지에의 동경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 절제 잃은 언어의 분류로 나타난다면, 고전적인 엄격한 자아의 통제는 자연히 언어의 절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기창이 보여 주는 언어의 절제도 실은 그가 가진 세계관의 자연스러운 드러남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여기에 엄기창 문학의 한계가 있으며 극복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엄기창의 시는 예외 없이 짧다. 서정적이며 아름답고 또 거부감 없이 잘 스며들지만 작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서정의 소품이 그의 시가 지닌 대체적인 인상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작다>는 사실은 다양성의 결여와도 연루되어 있다. 소재의 선택이나 표현 방법에 있어서 두루 마찬가지다.

시인은 늘 틀을 깨부수는 자이며, 새것을 찾아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혁명적 열정이 늘 따라야 된다. 삶의 문제에 관하여 세계에 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진이 무엇인가, 선이 무엇인가, 미가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추구해야 한다. 시인이 불안해 보이고, 불온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동안 써온 시편들을 일단 정리하면서 이 시인에게 나는 답답할 정도로 꼼꼼한 시학으로서의 모범적인 시 쓰기의 구속에서 좀 벗어나는 그런 용기를 갖도록 주문한다. 튼튼한 엄기창의 시학을 토양으로 하여 변모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청라

해설

 

 

 

눈부신 서정과 맑은 향기

엄기창 시인의 시세계

 

 

                                                                         리 헌 석

                               (시인, 문학평론가, 대전문인협회 회장)

 

 

1.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어릴 때 떠내려간/ 태화산 그림자를 건지려고/ 서해 바다에 갔었네>(세월일부)라고 노래한 엄기창 시인은 1951년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 근처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그곳에는 태화산이 있고, 그 자락에서 곱고 맑은 향토적 서정을 익힌다.

그는 세월을 거슬러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풀꽃을 그리워한다. 맨발에 신겨 주던 꽃신과 날려보낸 연()의 추억이 아직도 그림자로 가슴에 남아 있다. 아련하게 그리운 추억에서 벗어나 현실에 머물려고 몸을 추슬러 보지만, 어린 시절에 보았던 초승달이 오히려 그리움의 정서를 일깨운다.

 

번지 없이 띄워 보낸

내 풀꽃은

흔적이 없고

 

맨발 위에 신겨준

꽃신만 한 짝

파란 하늘 보고 돌아누워 있었네.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연()처럼

영원히 잃어버린 내 그림자여,

 

물빛 흔들어 몸을 감추고

닫아 거는 가슴엔

날선 초승달 하나.

―「세월일부

 

산촌에서 소년기를 지난 그는 중소도시 공주로 유학을 한다. 그 곳에서 그는 학업에 정진함과 동시에 문학의 꿈을 가꾸게 된다.

공주영명고등학교 재학 시절 팔각정문학회의 일원으로 문학 청소년기를 보낸다. 당시 대학에 재학 중인 윤석산 시인이 자주 찾아와 문학혼을 일깨우고, 유병학 시인은 국어 지도교사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선배인 문희봉, 김영훈, 전영관 등으로부터 문학 창작의 열기를 이어받는다. 필자는 그와 동기동창이면서 같은 서클 동인으로, 문학의 꽃을 함께 가꾼 지기지우(知己之友)였는데, 80년대에 다시 만나 문인의 길을 같이 가고 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한다. 당시 공주사대에는 수요문학회가 치열하게 활동할 때여서, 그의 문학혼은 일찍 개화하게 된다. 임헌도 조재훈 한상각 시인을 교수로 만나고, 선배인 임강빈 임성숙 최원규 김명배 등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명수 구중회 윤강원 등의 선배 동인을 만난다. 당시 수요문학회는 작품 합평회를 통해 작품 수준을 높이고자 절차탁마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은 수련을 거쳐 그는 재학 중인 1974년에 시문학주최 제1회 전국 대학생 시 공모에서 당선하여 1회 추천의 대우를 받는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 복무 중인 1975년에 완료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는 중등학교 청년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작의 삽질을 쉬지 않는다. 1980년대에는 오늘의문학회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1993년에 첫 시집 서울의 천둥을 발간한다.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 성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제목의 시집이지만, 이 시집에는 엄기창 시인의 결 고운 서정이 가득하다.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노래를 알았다.

비스듬히 현()을 베고 누운 음()들이

악보 속에서 걸어 나와

목젖을 두드렸다.

우는 새의 목 너머로 훔쳐 본

아직 어느 악보 속에도 살지 않는

()의 침전,

아침의 곧은 줄기 성센 가지를 골라

새는 노래를 뿌린다.

번득이는 음()들로 구상(構想) 짓는

몇 올 가락이 햇살처럼 선명하게

숲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다.

―「아침 서곡(序曲)전문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노래를 알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그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인지, 혹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인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 스스로 노래에 일가견을 가진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 현을 통해 생성된 소리들이 그의 목젖을 통해 노래로 거듭난다는 표현에 이르면, 그는 노래를 듣는 수준에서 주체가 되어 부르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노래는 의 노래와 동일시되고 있다. 즉 새의 울음소리로 상징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음들로 새로운 세계를 구상한다. 여기에서 노래라고 하는 것은 음악이라는 정형화된 예술 행위로 수용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를 읊거나 짓는 행위 또한 노래한다고 하는 점에 이르면, 그의 노래는 시 창작 행위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어떻든 그는 고운 서정과 맑은 향기가 넘치는 작품을 빚고 있다. 그러한 작품이 최근에는 우리 고유의 정가(正歌)시조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에서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연륜을 가늠하게 한다. 다작(多作)과 과작(寡作)을 뛰어넘어, 쉬지 않고 창작에 전념하여, 둘째 시집 가슴에 묻은 이름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2. 금강의 여울소리를 찾아

 

<그대 속삭임 들리는 곳이면/ 어디서나 발돋움하는/ 키 큰 나무가 되고 싶다.>(금강일부)고 노래한 엄기창 시인은 금강을 주제로 노래한 대표적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고향에 있는 무성산태화산철성산에서 흘러내린 태화천 계곡의 물은 구불구불 흘러서 유구천에 이른다. 다시 이 냇물은 산 그림자와 들녘의 바람을 데리고 금강에 이르는데, 바로 이 지점이 금강의 디디울나루 아랫녘이다. 디디울나루는 금강의 여울과 유구천의 여울이 만나서 이룬 덧여울이었는데, ‘더뎌울’ ‘데디울’ ‘디디울로 변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굳어진 듯하다.

그는 금강의 상류에서부터 곰나루’(디디울나루의 약간 상류)에 이르기까지를 맑은 서정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어서 그의 시혼(詩魂)은 금강의 하류인 황산나루나 백제의 역사가 잠겨 있는 부여의 백마강을 거쳐 서해 바다에 이르러 결곡한 서정을 형성하기도 한다.

 

강 윗마을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초록빛 섬에

물새는 늘 구구구

꿈꾸며 산다.

숨쉬는 물살 그 가슴에

한 송이씩

봉숭아 꽃물빛 불이 켜지면

미루나무 그늘을 덮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새,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말갛게 씻겨

모래알로 가라앉고

혹은

강둑 이름 모를 풀꽃으로 피는데

강심에 뿌리 내린 바위야

나도 이 비단결에

곱게 새겨지는 이름으로 남고 싶다.

―「금강일부

 

그는 또 다른 작품 금강에서 <하늘의 맑은 마음 한 자락/ 내려와 손을 씻는 비단가람>이라고 노래한다. 그의 의식 속에는 세세한 추억과 삶의 양상이 금강과 맞닿아 있다. <어릴 때 잃어버린 내 따오기 소리>도 금강에서 찾아내고, 상류에 있는 무주구천동의 물소리처럼 반짝이는 여울도 찾아낸다. 또한 그는 <오래 보지 않아도/ 그 노래 그 물빛 마음에 젖어/ 눈감으면 나직이 우는 가람>과 함께 살아간다.

금강은 나직하게 울면서 아름다운 산 그림자를 싣고 내려간다. 산수도(山水圖)에서 그는 개나리꽃에 불을 붙이는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기도 하고, 시인 스스로 버들강아지 줄기로 서서 온갖 골물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는 낚시를 하는 노옹(老翁)에 시선을 멈춘다. 그 노옹의 낚시 끝에 걸린 청청한 산그림자를 발견하는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낚시터에서라는 작품을 통해 <빈 바구니에/ 달빛만 가득 채워도/ 세상을 늘 사랑할 수 있다.>고 노래하여 동양적 세계관, 즉 허정(虛靜)의 시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허정의 시심은 자연을 관조하는 데에서 연유한다. 직접 노래하지 않고, 3자적 관찰자 입장을 취하기도 하는데, 비유적 감각이 눈부시다.

 

하얀 돛단배가

아침의 건반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파도에 몸을 던지고

잊었던 리듬을 생각하는 갈매기,

쾌적한 바람이 햇살 층층을 탄주한다.

미역 숲에서 멸치 떼들이

오선의 층계를 올라간다.

갈매기 노란 부리가

번득이는 가락을 줍고 있다.

 

밤내 뒤척이던

허전한 어둠의 꿈밭

소라껍질이 휘파람 불며

모래알 손뼉을 쳐 뿌리고 있다.

얼비친 하늘의 푸른 물살을 타는

갈매기 눈알에

잊었던 리듬이 내려앉는다.

하늘 속의 빛이랑이 내려앉는다.

―「아침 바다전문

 

어찌 보면 단순한 것도 같고, 또 어찌 보면 난해한 것 같기도 한 이 작품은 바다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침 바다에 하얀 돛단배가 지나가고, 갈매기가 먹이 사냥을 한다. 이미 생명을 잃은 소라껍질은 모래알이 묻은 상태로 해변에 버려져 있는데, 이런 상황과는 무관하게 갈매기는 바다와 하늘을 유영한다. 이런 서경을 독자적인 시어와 문학적 감수성으로 빚어낸 절창이라 하겠다.

그는 강에 대한 사랑도 특별하지만,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바다에 대한 노래도 곡진하다. 어촌에서 그는 <물비늘 번득이는 바다의 자유>, 까치집처럼 열려 있는 아낙들의 빈 가슴, <돛대 끝이 휘저어 놓는 하늘>, 투시의 눈을 반짝이는 하얀 갈매기, 바다의 노래를 실러 떠나는 바다의 노래, 등의 특별한 형상화를 보인다.

또한 후리를 통해 <달빛 아래 퍼덕이는 절망의 바다>를 찾아내기도 하고, 에서 <투명하게 벗겨내는 달빛의 바다>를 찾아내기도 한다. 제주해협에서 <푸른 물살에 담긴 하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기도로 반짝이는 불빛>을 통해 <청청히 일어설 바다의 음악>을 찾아 <무릉도원>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듯이 물의 이미지에 특별한 자질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태화천의 맑은 물소리에 연유하는 것 같다.

 

 

3. 눈물 빛 사친가(思親歌)에 같이 울며

 

<상여 뒤 따르며 울 때는/ 솔방울마다 요령 소리로 울어/ 하늘이 무너지더니/ 남같이 낯설어진 들국화 한 송이만/ 반색하는/ 아버님 무덤>(성묘(省墓)일부)에 머리 숙여 눈물 흘리는 엄기창 시인은 절절한 슬픔을 예술적 서정으로 승화시킨다.

<저승은 늘 춥고 바람 불 텐데/ 제 염려 거두시>라고 말씀드리며 절을 해 보지만, 생전의 아버지 음성이 들려 오는 것만 같다. 머리 위 상현달은 바로 아버지의 눈빛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별세하신 육친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의 의식을 사물의 테두리에 머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온갖 사물들이 육친과 연결되고, 그 범주에서 연상의 구체화가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엄기창 시인은 격정적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격조를 지킨다. 그 서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예술성을 획득하게 되고, 독자들의 가슴에 감동의 메아리를 형성한다.

 

아버님 목소리 땅에 묻던 날

대밭에서는

하루종일 대순이 돋았습니다.

한 줄금 내린 소나기로

목타던 대지가 젖어

취나물 향기 이내처럼 번지고

꾀꼬리 소리도 윤기 있게 반짝이며

개나리꽃 빈 가지에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초승달 질 무렵

초승달 신고

뒤돌아보며 강 건너가서

착하게 사신 생애 기름으로 태워

이승의 봄 밝히는 등이 되셨나,

철성산 풀빛 짙어오는

풀빛 속에나

버들강아지 물오르는 태화천

물소리 속에

아버님 모습을 늘 뵙니다.

―「아버님 전 상서전문

 

<꾀꼬리 소리도 윤기 있게 반짝>이는 봄날에 그는 선친께 편지를 쓴다. <초승달 질 무렵/ 초승달 신고/ 뒤돌아보며 강 건너가서> <이승의 봄 밝히는 등>이 되신 아버지를 그린다. 이 작품은 후에 시조로 거듭나기도 한다. <들국화 한 송이만/ 반색하는 무덤가에// 눈시울 적시며/ 절하고 돌아서면// 내딛는 발자국마다/ 밝혀주는 초승달>(성묘전문)이라고 사친(思親)의 절절함을 노래한다. 이 시조는 앞에서 예를 든 서정시의 다양한 표현 요소 중에서 핵심 요소만 추출하여 형상화한 작품이어서 시의 흐름을 이해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애절한 사친가(思親歌)는 사모10(思母十題)를 비롯한 사모의 정이 들어 있는 작품들이다. 어머니가 별세한 때부터 열 가지 과정을 통해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 바로 사모 10인 것이다. 이 작품 외에도 어머니에 대한 작품들을 통해 눈물 어린 사모곡(思母曲)을 확인할 수 있다. 정안수에서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어머님의 합장한 손> <살포시 지은 미소에 성스러운 그 눈빛> <정안수 대접에 담긴 어머님의 큰사랑> 등은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담아낸다.

둘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가슴에 묻은 이름에서 그는 <한낮의 햇살 속에서도 꺼지지 않으려고/ 날개 파닥이는 등불을 보며/ 어머니의 생애를 접어/ 가슴에 묻는>다고 노래한다. 현실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되면 산에 묻지만, 사실은 그 슬픔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이, 엄기창 시인 역시 선자(先慈)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어머님 이름이 지워지자

고향 빛깔은

막막한 어둠으로 변했습니다.

―「임종(臨終)(思母十題 1) 일부

 

오르막길 오를 때마다 상여는 멈춰 서고

상주들은 너도나도 돈을 거는데

어머님은 빈 손 맨발로 떠나

저승의 어느 주막에서 울고 있을까.

―「운상(運喪)(思母十題 2) 일부

 

사잣밥상 아래

백목련 꽃 두어 이파리

어머님이 벗어 던진 이승의 신발

―「고무신(思母十題 3) 일부

 

자식 둘 앞서 보낸 눈물의 생애를 묻고

맨발로 헤쳐 온 아픈 역사를 묻고

어머니의 향기를 묻는다.

―「하관(下官)(思母十題 4) 일부

 

생전에 못 사드린 과일로

제사상을 채우며

이제는 장식에 지나지 않음에 가슴 아파합니다.

―「사십구재(四十九齋)(思母十題 5) 일부

 

부모를 여읜 자녀라면 누구나 체험했을 가슴 아픈 노래이면서, 엄기창 시인의 진실 어린 고백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러한 애절함을 느꼈을 터이지만, 그 애통함을 그냥 가슴에 묻어둔 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노래한 이 작품들은 애상적 정서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픈 노래를 계속한다. <어머님 아린 가슴에/ 뽑혀지지 않는 대못>(돌무덤), <산천에 봄이 왔지만/ 내 가슴은 겨울입니다>(기다림), <어둠을 환히 태우고도 남을/ 시퍼렇게 날 선 눈물을 보았습니다.>(눈물), <살아생전 마음 한 번/ 편하게 못해 드린/ 내 마음의 빛깔은/ 잿빛 후회입니다>(어머니), <어머님 눈동자에 맑게 고인 하늘로/ 하얀 구름 되어 떠나셨지만/ 내 가슴에 새겨진 흑백사진 속에서/ 어머님의 나이는/ 언제나 서른입니다>(흑백사진) 등 그의 사모곡은 그칠 줄을 모른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아내가 채운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사랑이 가득 담긴 축시(祝詩)를 빚는다. <생활의 아픈 멍울 가슴으로 싸 안으며/ 얼굴엔 항시 햇살 같은 웃음으로 어둠을 밝혀/ 바라보면 고향같이 편안한/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일곱 살 철부지>가 된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아내로부터 모성을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음속에 묻어 둔 사랑의 촛불>을 밝혀 아내에게 씌워진 <생활의 짐>을 벗기고자 한다.

이렇듯이 그는 사랑 안에서 행복한 꿈을 꾸는 어린 소년과 같다. 지천명(知天命)의 연치(年齒)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년과 같은 순수를 간직하고 있다.

 

 

4. 생명의 원천을 지키기 위해서

 

<강물은 그저/ 헐떡이고만 있었다.// 키 큰 미루나무 가지 사이/ 거미줄 속엔/ 강물의 핏빛 울음만 걸려 있었다//// 검게 썩은 물빛 문둥이처럼/ 강의 신음소리>(강변 야영일부)가 밤새 시인의 꿈 밭으로 흘러든다고 노래하는 엄기창 시인은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작품으로 환기시킨다.

오염된 강에서 시인은 환경 파괴의 무서움을 토로한다. 갑천 붕어는 아파트 그림자를 산 그림자로 알고 올라온다. 그러나 상류로 오를수록 <검은 폐수만 흘러내려/ 앞길은 깜깜하게 막혀> 있다. 그래서 <붕어의 눈물 속에서/ 납물>이 흐를 정도로 오염된 상황을 만난다. <등뼈 굽은 새끼를 안 낳으려고/ 붕어는 자갈밭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고 노래한 부분에서 그의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엿보게 된다.

강물만 오염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소나무에서도 <찢어진 살갗에서/ 중금속 피가 흘렀다>고 고발한다. 그런 소나무를 보면서 <아무리 손을 뻗어도/ 멀어지는 산의 마음>을 찾아내며 시인은 절망한다. 특히 일급 자연으로 유명한 지역, 수려한 산촌의 대명사로 알려진 청양마저 오염되었다는 데에 이르면 삶의 위태로움을 예견하게 한다.

 

열려진 차창 틈으로

섬광처럼

개구리 울음 하나 지나갔다.

 

별똥별처럼

타버리고 다시는 반짝이지 않았다.

 

칠갑산 큰 어둠은

돌 틈마다 풀꽃으로

개구리 울음을 품고 있지만

 

기침 소리 하나에도 화들짝 놀라

가슴을 닫았다.

 

차창을 더 크게 열어봤지만

청양을 다 지나도록 청양 개구리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청양 개구리전문

 

환경 오염에 의한 개구리의 감소를 밝히는 것인지, 혹은 무차별 개구리를 포획하여 보신하는 세태를 고발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기다리는 사람의 부재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 작품의 중심 제재는 <머리카락 하나 내비치지 않><청양 개구리>라 할 때, 자연 파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고발하는 노래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실망은 인간 삶의 양식으로 전이된다. 우리 나라 도시의 표상인 서울에 대해 시인은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서울의 천둥에서 그는 <서울의 하늘 위엔/ 늘 천둥이 운다>고 진술한다. <천둥이/ 누구의 머리 위에서/ 우르릉우르릉 울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리라 확신하며, 현대 도시인들에게 부정적 시각을 표출한다. 서울 사람들은 <번갯불에 타면 재가 될 靑紅의 꿈>들을 만들고 있지만, 그의 시심은 절망적 색채에 싸인다. 이러한 절망은 꼭 서울이라는 특수 지명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넘치는 도시의 일반화로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절망을 스스로 극복하여 거듭나고자 한다. 극복의 매체로 삶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주문한다.

 

꽃도

꽃의 마음으로 보아야 아름답다.

 

황홀한 몸짓의 장막 뒤엔

말라 시들은 노래도 있겠지

 

꽃잎을 먹고사는 어둠의 벌레들이

고랑처럼 파 놓은

상처들도 있겠지.

 

날 선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으랴

 

아름다운 눈으로 보아야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 보기전문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이 모든 사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성싶다. 아름다운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더럽고 부정적인 사물까지 아름답게 노래한다면, 그것은 진실의 은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이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둔 현실에서도 아름다운 시심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 같다. 빈 접시에서 그는 <내가 꽂아 주는 억새꽃으로/ 오늘밤 네 고향 산에/ 칠색 영롱한 무지개를 걸>라고 청하기도 한다. 달맞이꽃에서는 자녀들에게 <올해는 헐벗은 가슴에/ 전설 같은/ 이 애비의 어릴 적 보름달을 안>으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세상을 지탱하는 벼릿줄이고, 순수를 지킬 수 있는 대안(代案)임을 노래하여 맑은 시심을 견지하고 있다.

 

 

5. 연화교에서 부는 바람처럼

 

<잠 못 드는 노승의/ 천수경에 달은 지고// 불심은 태화천에 녹아/ 사바세계로 흐른다>(마곡사일부)고 노래한 엄기창 시인은 어릴 때부터 불교적 환경에서 자란다. 그런 연유로 그의 작품에는 불교적 시심이 짙게 깔려 있다. ‘마곡사는 그의 고향 마을에 있는 천년 고찰(古刹)로 조계종의 본사 중의 하나인데, 고승(高僧) 대덕(大德)이 여러 분 배출되어 유명한 절이다.

큰 절이 대부분 그렇듯이 마곡사에도 연화교와 오층석탑이 있다. 그래서 시인은 <연화교 건너서면/ 솔바람 풍경소리// 향내 서린 잎새마다/ 불경 소리 담겨 있고// 법계를 지키고 서서/ 침묵하는 오층석탑>을 노래한다. 불심이 태화천에 녹아 흐른다거나, 나무 잎새마다 불경 소리가 담겨 있다는 관점은 바로 온갖 사물에 불심(佛心)이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해당한다. 또한 사물과 불성(佛性)을 하나로 보는 것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다름 아니다.

 

시냇물은 서 있는데

다리에 선 나는 흘러간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목탁소리 눈을 뜨면

 

안개 낀 다리를 건너

손짓하는 사바의 마을

―「연화교에서전문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1(시조의 초장)이라 하겠다. <시냇물은 서 있는데/ 다리에 선 나는 흘러간다>는 시각은 대상과 본질의 역설적 진술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시냇물이 흘러가고, 나는 다리에 서 있는데, 다리에 서서 바라보면 그와 달리 착시(錯視) 현상에 빠지게 된다. 시인은 이런 현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밝힌다.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선어(禪語)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한다.

이런 시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매일 아침 되씹는 절망을 접으며/ 오늘도 나는 웃는 연습>(비온 날 아침)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또한 <더운 피 온 몸을 태워/ 어둔 세상 밝>(해돋이)히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 이른다.

 

향일암 석등(石燈)

찰람찰람 고인 고요를

새벽달이 갸웃이 훔쳐보고 있다.

 

파도 소리에 씻겨진

동백꽃 봉오리마다

세상 밝히는 꽃불을 켜면

 

먼 수평선 일어서는 눈부신 평화(平和)

관음상 입가에 살포시

미소로 번진다.

―「향일암 일출전문

 

이 작품을 읽으며, 엄기창 시인은 눈부신 평화를 위하여, 늘 관음상 입가에 번지는 미소처럼 맑은 마음을 지향할 것 같다. 그리하여 어둔 세상에서 밝은 빛으로 자리할 것 같다. 이제까지 고운 서정과 맑은 향기가 넘치는 작품을 창작하였듯이,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본다. 이런 기대와 믿음으로 그의 작품 기행(紀行)을 마친다.

posted by 청라

엄기창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를 읽고


                                                            시 인  차 승 열




    


우편함에서 누군가 보내준 책을 꺼내보는 일은 썩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요즈음 같은 디지털 시대에 새하얀 종잇장에 찍힌 갓 세상에 나온 활자 냄새를 맡는 일은

아련한 향수마저 불러온다.

"세한도에 사는 사내"라~ 



먼저 시집을 상재하신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시집 <세한도에 사는 사내>,

도서출판 이든북, 2017.9.27 

 
  "퇴임을 하고 무료한 날이 많아지면서 내게
  시마저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을 한다.
  고희를 넘어 시를 소개받고, 시를 쓰는 즐거움에

  암마저 나았다는 한 시인님의 말을 들으며,

  시가 어떤 사람의 삶에는 밝은 등불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
  네 번째 피우는 이 시집에서 한 송이 시라도 살아남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시에 꽂히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삶에 환한 꽃을 피워줬으면 좋겠다.
  
  - "시인의 말" 전문 


엄 시인님과 인연을 맺은 것이 80년대 중반 <오늘의문학회>에서 일이니 

선배님과 교분을 이어온 지도 줄잡아 30년은 넘었지 싶다.

엄 시인은 '엄부처'라는 별명처럼 천성적으로 온화한 인품을 타고 나신 그야말로 충청도 양반 중에

양반이시다. 시풍도 그가 태어난 공주 마곡사의 수려한 땅 기운을 받았음인가

결 고운 서정으로 채색된 그의 시편들에는

세상의 바라보는 깊고 따뜻한 시선이 담긴 느릿한 충청도 말씨가 담겨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은퇴의 졸업장을 받아들고 그야말로 은빛으로 빛나는 날들을 보내고 계신

엄 시인님의 네 번째 시그릇에는 어떤 시들이 담겨있을까?

엄 시인이 살고 계신 세한도의 달집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


그 집에는

울타리가 없다

사방으로 열려서 신바람 난 바람이

울 밖 같은 울안을

한바탕 휘젓다 가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그 집 사내는

청청한 외로움을 가꾸기 위해

덩굴장미 한 그루 심지 않았다 .

덩그렇게 세워 놓은 네그루의 소나무도

새 한 마리 불러오지 않았다.

제대로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평생을 마음 밭에 겨울만 들여놓고

뜰 밖을 둘러 친 울타리 대신

서릿발 같은 기상 온몸으로 반짝이며

아예 방문을 지워버리고

세상의 시끄러운 일에

고개를 내미는 법이 없다.  



『세한도歲寒圖』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스승 

김정희를 위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구해온 귀한 책들을 보내준 데 대한 답례편지에

그려진 작은 그림으로, 제자의 변함없는 의리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한 문인화이다.

추사는 전과 다름없이 스승으로써 자신을 섬기는 고마운 제자에게 이렇게 썼다.

"더구나 온 세상의 풍조는 오직 권세ㆍ이익만을 붙쫓는데 이와 같이 심력을 허비하고도 권세ㆍ이익에

돌리지 아니하고 마침내 해외의 한 초췌 고고枯槁한 사람에게 돌리기를 마치 세상이 권세ㆍ이익에

붙쫓는 것과 같이 하니 어인 일인지요."


그렇다면 엄 시인님에게 세한도는 무엇이었을까?.

작품해설을 쓰신 문학평론가 조혜옥 님의 말처럼, 엄 시인님에게 세한도란?

"한 사내의 기개와 청청한 외로움'을 간직한 시적 공간이라는데 동의한다.

엄 시인님은 권세와 이익을 좇는 화려함과 거짓됨으로 치장된 세상을 초월한 세한도의 달집에 은둔해

살면서 시집 <세한도에 사는 사내>에 실린 여러편의 시에서 보듯이

부모에게는 착한 자식으로써, 아내에게는 믿음직한 남편으로써, 자식에게는 인자한 아비로써,

나아가 사회적으로는 후학양성에 평생을 몸바쳐온 교사로써 선비로써,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서예가, 금석학자, 화가로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세상의 버림을 받아 긴 세월 동안 유배지를 떠돌아야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당대 최고의 학자로 추앙받는 추사처럼 자신만의 기상과 지조를 키워왔던 것이다.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열려진 달집의 작은 문을 통해 시로써 세상과 소통해왔던 것이다.

엄 시인님을 쏙 빼어닮은 시 몇 편을 더 읽어보자.



네가 오리풀꽃으로 홍사초롱 밝혀든다면

나는 고추잠자리로

네 기다림 위에 날개를 쉬겠네.

우리들의 늦여름은 소리 없이 달려서

초록 사랑 빛바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네.

흔들어 봐요, 하늬바람아

때로는 오이풀꽃 도리도리해도

한 몸인 듯 돌이 되겠네


- 「오이풀꽃과 고추잠자리」 전문



엄 시인님이 태어난 해가 '51년이니 올해 예순일곱. 예전 같으면 노인네라고 불리울 나이인데도

아직도 문학소년처럼 해맑은 감성이 담긴 서정시를 쓰고 계시는가 하면,



      할아버지 끌고 가는 리어카 위엔

할머니 혼자 오도카니 앉아있다.

자가용은 못 태워줘도, 임자

리어카는 실컷 태워줄끼다.

심들어서 워쩐대유 워떠칸대유

올라가는 고갯길 바람이 살짝 밀어준다.

마른 수숫대 같아서 눈물 나는 사람

늦가을 햇살처럼 스르르 사라질까봐

뒤돌아보며 자꾸 말 걸며 숨차게 올라간다.


- 「늦가을 소묘」 전문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으시고 그늘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밝은 등불' 같은 시를 들려준다.



소리치는 사람들은 깃발이 있다.

깃발 들고 모인 사람들은

제 그림자는 볼 줄 모른다.


조룡대에 와서

주먹질 하는 나그네들아

조롱대는 날마다 죽지를 자르고 싶다.


부소산에 단풍 한 잎 물들 때마다

어제보다 더 자란

소정방의 무릎 자국

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화인


지느러미라도 있었다면

천 년 전 그 날

물 속 깊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을


깃발 들고 목청만 높이는 사람들아.

비듬처럼 일어나는 부끄러움을 삭히려고

백마장 물살을 빌려 조룡대는

오늘도 머리를 감는다


- 「조룡대, 머리를 감다」 전문


 

어디 그뿐인가. 

'듣는 대로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순을 지나 고희를 바라보고 계심인가

이 시대의 어른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쓴소리도 간간히 실려있다.



엄 시인님은 '시인의 말'에서 교직에서 은퇴한 뒤로 할 일이 없어졌다고 엄살하시지만

이제는 40년 넘게 시를 써 온 원로 시인 중에 한 분으로 더욱 더 정진하셔서

눈부신 서정이 담긴 아름다운 시편들로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에 '밝은 등불'이 되는,

한번 꽂히면 기어이 피어나고야 마는 '환한 꽃'처럼 맑은 시향을 전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그래서 우리 같은 얼치기 시인들은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 그늘에 눌러 앉아 

청정하게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할수만 있다면,

달집 뒤편에 서있는 잣나무로 서서 시를 이야기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서천 앞바다.

     옛 문우들과 모임에서

     엄 시인님과...             

 






posted by 청라

타자시학

엄기창론 2017.10.03 10:07

이달의 문제작<>

 

타자시학

 

                                                                         정 신 재

                                                                                                         <문학평론가>

 

 

  라캉에 의하면 타자는 주체가 아닌 모든 사람만이 아니라 주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든 사물에 해당되는 궁극적인 기표(SIGNIFIER)이다. 이 타자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의 궁극적인 기표이기 때문에 사실상 나를 정의한다.(조셉 칠더스 게리 헨치 외, 현대 문학 문화 비평 용어 사전문학동네, 2001) 시문학9월호에는 주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타자가 대행하고 실패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 많았다.

  대부분의 시에는 타자가 들어있다. 주체가 타자와 함께 대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화자의 몫이다.

 

중략

 

5. 융합의 미학

 

  몸이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 기관과 피와 살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몸의 각 부분은 융합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융합이 몸을 살린다.

  엄기창에게 타자는 융합을 추구하는 존재요, 사물이다.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엄기창, 슬픔을 태우며부분

 

  전쟁에서 패배한 군사 나라 없는 백성을 통해서 시인은 역사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현재에 남아있는 타자의 생명력에 주목한다. 타자의 생명력이 지속되는 한 역사는 바람처럼 굴러가는 것이다.

 

 

시문학201710월호

posted by 청라

순백의 외로움과 빛나는 나를 만나는 시간

 

                                                             문학평론가 조해옥

 

 

 

1. 시 정신의 근간, 염결성과 연민과 자족

 

엄기창 시인의 새 시집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를 이끄는 시 의식은 염결의식(廉潔意識)과 연민의식(憐憫意識)이다. 자족(自足)의 정신 역시 새 시집에서 시인의 시적 지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시인의 첫 시집 󰡔서울의 천둥󰡕(1993), 두 번째 시집 󰡔가슴에 묻은 이름󰡕(2004), 세 번째 시집 󰡔춤바위󰡕(2014), 그리고 새 시집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염결성과 연민의 감정이 창작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무욕으로부터 형성되는 자족의 아우라가 시인의 시편들을 감싸고 있다.

엄기창 시인의 시에서 염결의식은 지금까지 발표한 시인의 시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정신적 지향이다. 시인은 그의 마음 세상에서 세속성을 다 지우고 순백의 고결함으로 변화시키려는 갈망을 드러낸다. 그 갈망은 세상을 향해 있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다. 그의 시 山水圖(󰡔서울의 천둥󰡕)향일암向日庵에서(󰡔춤바위󰡕)에서 보여준 지움과 텅 빔을 향한 시인의 시적 추구는 새 시집에 실린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에 이르러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시인의 시적 자아는 세상이라는 바깥이 아니라, 그로부터 초월한 자신에게서 지극한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엄기창 시인의 연민의식은 벗어날 수 없는 아픔을 체득한 존재론적인 인식임을 드러낸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시인이 반복하여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이 그의 연민의식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무덤(󰡔가슴에 묻은 이름󰡕)에서 드러나 있듯, 엄기창 시인은 어머니로부터 언제나 생생하게 환기되는 아픔이면서 그것의 강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아픔을 경험한다. 새 시집에 실린 대못에서 시인의 시적 자아는 가슴 깊숙이 묻는 아픔, 내색하지 못 하는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어머니를 통해 체득한다. 시인에게 가슴은 연민이 거처하는 장소이다. 동시에 가슴은 시인의 시적 자아가 내면으로 들어가 진짜 자기를 만나는 장소이며, 다른 생명들과 타자들을 자신과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장소이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약한 존재들에게 머물 때, 연민이 발생한다. 연민의 감정은 외부에 있는 미소한 위상을 갖는 생명들로부터 오고, 온기를 지닌 시인의 마음 밭”(대청호 가을)에서 오기도 한다. 엄기창 시인은 그의 마음 밭에서 외부의 화려함과 거짓됨을 다 걷어낸 후에 살아서 반짝이는 자신을 만난다. 시인이 참된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그의 무욕의 삶에서 기인한다. 마음의 터전에서 시인은 빛나는 외로움과 대면한다.(유등천에서) 그가 진정한 자기를 깨닫는 시간을 맞을 수 있는 것은 위기에 처한 생명들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 마음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 같은 연민의식은 시인의 시편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욕의 시 정신을 형성하며, 자족의 시 세계로 이끄는 힘이다.

 

 

 

2. 은거(隱居), 지극한 자유로움의 형태

 

엄기창 시인의 시작품에서는 여러 사물들과 풍경은 점점 지워지고 하나의 상징적인 사물로 응축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남겨진 사물은 다른 사물들이 사라진 시의 화폭에서 명징하게 드러나게 된다. 시의 화폭에서 주변에 머물던 여백은 점점 커지고, 여백의 한가운데서 하나의 사물이 선명하게 솟아나는 것이다. 여백이 사물들을 지운 순백의 화폭은 엄기창 시인의 염결의 시 정신을 표상한다.

엄기창 시인의 염결성은 그의 󰡔서울의 천둥󰡕󰡔춤바위󰡕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투명하게 벗어 오히려

속 깊은

하늘 한복판에

예닐곱 살 소녀의 투정처럼 피어난

맨드라미만한 구름 한 송이

                    -山水圖부분, 󰡔서울의 천둥󰡕

 

山水圖에는 갖가지 자연물들이 가득하지만, 그것들은 점점 지워지고 하늘 한복판에 구름 한 송이만 남는다. 구름 한 송이는 고결함을 지향하는 시적 자아의 상징적 거처이다.

 

바다를 지우며 달려온 눈보라가

기와지붕을 지우고

탑을 지우고

 

목탁木鐸 소리마저 지운다

 

(중략)

 

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

                -향일암向日庵에서부분, 󰡔춤바위󰡕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까지 지우고 비워내는 시인은 순백의 세계를 꿈꾼다. 눈보라의 흰빛이 사물들을 덮으며 사물들의 형상을 지우고, 목탁 소리마저 지운다. 그는 오감(五感)으로 감각하는 세상을 넘어 텅 빔의 세계를 추구한다. 시인의 완벽한 순수의 지향은 그의 새 시집에서 그의 시세계를 상징적으로 담아 낸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에서 형상화의 절정에 도달한다.

 

그 집에는

울타리가 없다.

사방으로 열려서 신바람 난 바람이

울 밖 같은 울안을

한바탕 휘젓다 가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그 집 사내는

청청한 외로움을 가꾸기 위해

덩굴장미 한 그루 심지 않았다.

덩그렇게 세워 놓은 네그루의 소나무에도

새 한 마리 불러오지 않았다.

제대로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평생을 마음 밭에 겨울만 들여놓고

뜰 밖을 둘러 친 울타리 대신

서릿발 같은 기상 온 몸으로 반짝이며

아예 방문을 지워버리고

세상의 시끄러운 일에

고개를 내미는 법이 없다.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전문

 

추사의 <세한도>에는 한겨울을 배경으로 소나무 네 그루와 작은 집 한 채만이 화폭에 담겨 있다. 엄기창 시인의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세한도>에 담긴 추사의 서사를 반영하면서도 집에 은거하고 있을 사내의 의식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내는 엄기창 시인의 시적 자아이면서 중심이 되는 자아이다. 위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용사들인 없다않았다사내의 거부의 기개와 청청한 외로움을 부각시킨다. 외부 세계를 지우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은거(隱居)하는 사내의 결연한 모습은 그가 스스로 찾아낸 지극한 자유로움의 형상이다.

 

꽃이 되지 못했다고 서러워 말아라.

이른 봄부터 대지의 기운을

빨아들여

싹을 틔우고 잎을 키워낸

네가 없었다면

어찌 한 송이의 꽃인들

피울 수 있었으랴.

 

꽃이 박수 받을 때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묻혔다고 울지 말아라.

세상에 박수 받던 것들은

쉬이 떠나가고

장막 뒤에 숨어있던 너만 살아 반짝일 때

그림자이기에 오히려 빛나는

뿌리의 의미를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