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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달의 문제작〈시〉
여성 편향적 삶의 풍경
한상훈〈문학평론가〉
『시문학』 5월호엔, 세월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았다. 황홀했거나 쓰라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 시점에서 호출해서 그 순간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옮겨 시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밀한 시적 세공도 필요하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사건들이기 때이다.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 몇 작품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우선 엄기창 시인의 작품부터 들어가 보자.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엄기창,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부분
첫 구절에서 사랑에 대한 단정을 단호하게 내린다.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사랑 또는 삶의 오묘함에 대해 시인은 이미 도사처럼 터득한 듯하다. 겹겹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인생은 나의 욕망대로 되지 않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욕망의 종창역은 대부분 더 꼬이게 되고, 결국 인생은 추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의 욕망을 비워내어 그냥 자연의 질서에 나를 맡겨보니,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생의 여유가 생겨, 행복이 슬쩍 찾아온다. 그러기에 시인은 사랑하던 님이 가고 야속하기만 하지만 허전한 상태로 내 마음을 하염없이 풀어놓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커피도 호사롭게 두 잔을 시켜 놓았다. 그만큼 상처의 시간은 지나갔다. 창밖을 보니, 저 멀리서, 넓고 푸른 바다에 점점 작아지고 있는 배 한 척이 보인다. 다시 외로워진다. 그러나 미소가 머문다. 완전한 사랑이 있겠는가. 사랑이 머무는 것도 잠시인 것을. 비록 외롭지만 달콤해지는 것이다. 애틋한 그리움은 서랍 속에 숨겨놓은 보석처럼 가끔씩 꺼내 보면서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날 수 있기에.
『시문학』2021년 6월호(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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