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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3시집-춤바위에 해당되는 글 98건
글
춤바위
나는
영혼의 샘물처럼
맑은 시구 하나 찾아
헤매는 심마니
아무리 험한 골짜기라도
시의 실뿌리 한 올
묻혀 있다면 찾아갑니다.
칡넝쿨 아래 숨은 절터를 찾고
춤바위에 올라
흥겹게 춤추었던 자장율사처럼
반짝이는 한 파람
가슴을 울리는 노래에도
춤바위에 올라가 춤추는 학이 되겠습니다.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산삼밭을 만난다면
끝없이 춤추다가 돌이 되겠습니다.
글
스타킹
은밀한 바위 틈
뱀이 벗어놓은
긴 허물 하나,
올해는
오는 걸 잊었는가!
밤이면 별빛 새는
꾀꼬리 집에
발 벗어 못 오면
신고 오라는
별빛 뽑아 짜놓은
스타킹 하나.
2014. 6. 27
글
길
걷다 보면 길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네.
돌아보면 나의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어.
예쁜 꽃들이 언제나
건강하게 웃어주었고
상큼한 바람들이
내가 뿌려주는 물 더 촉촉하게 적셔 주었지.
씨 뿌리고 거름 주는 일
신나는 일이었네.
나무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어두운 세상
한 등 한 등 밝히는 일 신나는 일이었네.
내 길이 끝나는 곳에 솔뫼가 있고
솔 꽃들아!
너희들의 향기 속에서 닻을 내리니 행복하구나.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걷고 싶네.
때로는 바람 불고 눈보라도 날렸지만
이 길은 내게 천상의 길이었네.
2014. 5. 22
글
생명의 선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달리는 콧노래 속으로
잠자리 한 마리 날아든다.
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
내 비명에 부딪혀 추락하는
작은 몸뚱아리
도망가도 도망가도
유리창에 붙어 따라오는
잠자리의 단말마
유월의 초록빛 산하가
피에 젖는다.
내가 끊어놓은 생명의 선이
바람도 없는데 위잉 위잉 울고 있다.
2014. 5. 27
글
사랑싸움
사랑싸움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진다.
아내와의 싸움엔
내가 늘 진다.
싸움도 꽃이라면
우리 화원엔
지는 꽃 빛깔이 더 찬란하다.
2014. 5. 20
글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심청이 인당수에서
꽃으로 지듯
세월호에 갇힌 넋들 꽃비 오듯 지던 날은
심 봉사 온몸으로 울던
몸부림처럼
바다도 하루 종일 웅얼거렸다.
소금보다 짠 사람들의 눈물을 모아
자다가 소스라쳐 울부짖는
애비 에미의 아픔을 모아
용왕님께 빈다면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한 송이씩 해말간 얼굴들
“엄마” 부르며 피어나서
진도 옆 온 바다가
온통 연꽃으로 물들어 출렁였으면 좋겠네.
오늘 아침 대한 사람들 모두
심 봉사 눈 번쩍 뜨고
손뼉 치며 일어나듯
“와!!!!!!!”
하는 함성으로 강산이 무너졌으면 좋겠네.
2014. 4. 18
글
세월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세월 가는 걸
잊다가
내 신발 신발장 밖으로
밀려나는 줄도 몰랐네.
2014. 4. 17
글
민들레 편지
오늘 밤 띄워 보내는
홀씨 한 올엔
전화로 드릴 수 없는
내 사랑 진액만 담았습니다.
달빛 파도 타고
날고 날아서
두견새 각혈처럼
그대 창문 두드릴까요?
밤새 뒤척이는
그대의 꿈밭 머리에
어둠 깎아 빛을 세우는
까치 소리 한 소절 싹틔우고 싶어
지난겨울 눈보라에
씻고 씻어서
남모르는 담 밑에서
몰래 키운 마음 한 포기
뿌리 떼고 줄기 떼고
향기마저 걸러내고
꽃 중에도 가장 간절한
심장만 보냈습니다.
2014. 3. 26
글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글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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