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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3 여름날의 귀향 3
- 2024.09.27 산을 마시다
- 2024.09.20 주홍글씨
- 2024.09.13 소쩍새 우는 사연
- 2024.08.21 제비 나라
- 2024.08.17 전언傳言
- 2024.08.14 혼자 사는 친구에게
- 2024.08.02 하일夏日 점묘點描
- 2024.07.11 늙은 투사의 저녁 술자리
- 2024.07.07 가을하늘
글
여름날의 귀향
골목은 사막처럼 비어있었다
분꽃 같던 아이들 웃음소리 다 떠나가고
집집마다 노인들
삭정이 마른 기침소리만 남아있었다
회재를 넘으면 언제나
된장찌개 냄새 마중 보내던 어머니
옛집 마당가에 돌절구로 서있고
저녁때면 부르던 정다운 목소리에 별 촘촘 달던
감나무 묵은 둥치엔 허기진 꿈들만 무성했다
그리운 얼굴들 하나씩 소환하며
마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그리움은 늦여름 파장처럼 비틀거리는데
사람 하나 산으로 가면 한 집 대문 닫히고
한 집 대문 닫히면 한 역사에 거미줄이 그어지고
풀들만 웃자란 건너 마을 초등학교에선
언제 또 정다운 종소리가 부르려는지
낯선 나라 언어들로 삭막해져서
어린 날 손때 희미해진 내 골목길에 가슴을 치며
홍시처럼 노을만
소멸되어가는 고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
산을 마시다
아침 인사를 하려고
창밖을 보니
산은 가을 안개에 안겨있다
붙어산다고 꼭 정다운 것은 아니다
멀리서 손에 잡힐 듯 타오르는 초록을
한 모금 마신다
래미안아파트 17층
사람 사이에 묻혀 있어도 산과 한몸이 되면
마음속에서 샘물이 솟는다
외로운 사람에겐 꾀꼬리소리를 보내주고
고달픈 사람에겐
고촉사 목탁소리를 보내 달래주고
세상의 바람소리 잠재운 내 가슴의
둥지에
이름 모를 새는 알을 낳는다
글
주홍글씨
내 삶의 지류에서 침몰하는 꽃잎인가
소쩍새 울음 끝에 향기처럼 묻어와서
가슴을 뒤집어놓고 불꽃 접는 그 소녀
이 빠진 징검다리 일렁이던 인연의 줄
한 번 업은 후에 평생을 못 내려놓아
이름을 가슴에 새겨 질긴 형벌 되었다
물소리 풀 향기에도 울렁대는 돌개바람
흰 구름 가는 곳에 노을인 듯 익어있을까
청자에 상감으로 박혀 지울 수 없는 낙인
글
소쩍새 우는 사연
달빛이 비운 산을 노래로 채우는 새
소쩍쿵 소쩍소쩍 온밤 내내 들끓다가
정념이 흘러넘쳐서 초록이 더욱 깊다
슬픔도 길들이면 기쁨으로 피는 것을
오뉴월 소쩍새처럼 흥타령 살다 가세
온 세상 아픈 일들도 큰 박수로 닦아내세
글
제비 나라
말 한 마디 뿌려지면 살판났다 지지배배
옳고 그름 제쳐두고 꼴리는 대로 지지배배
인구는 줄어가는데 소음들로 꽉 찬 세상
글
전언傳言
된서리 고된 날도
아비는 늘 푸르다
세상의 모진 바람
웃음으로 싸안으며
닥쳐 올
겨울 눈보라
큰 산처럼 막아선다
힘들 때 아비 등은
기대라고 열려있다
머리가 좀 컸다고
혼자 아파 하지 마라
언제나
손 보태주라고
아비가 있는 게다
글
혼자 사는 친구에게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다 똑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평생을 등 기대고 부대끼며 살다가
나들이 끝내고 돌아가는 것
손 흔드는 뒷모습 허전하지 않게
씨앗 몇 알갱이 떨어뜨리고
큰 나무로 자라게 거름이나 주면서
싸우며 사는 것이 참 인생이라는 것
아이들 많은 집안은 가난해도 부자이다
자식들 꿈들은 모두 다 내 재산이다
허공 높이 소망을 연처럼 띄워놓고
하늘까지 오르도록 줄 함께 잡고 버티다 보니
이제 나는 알겠다
기르는 게 두려워 외롭게 사는 것보다
날마다 전쟁이라도
웃을 일 풍성한 게 행복이라는 걸
글
하일夏日 점묘點描
매미소리 한 줄금
골목을 쓸고 간 후
배롱나무 가지에 타오르는
늦더위 송이송이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진
마을회관 공터에는
고추잠자리만 하루 종일 맴돌다 간다
소 울음 닭소리도 잦아든 지 오래
노인 하나 산으로 가면 한 집씩
사립문 닫히는 마을
봉숭아꽃 몇 번을 피었다 져도
금줄 걸린 집 하나 찾을 수 없고
접동새 흐느낌만
어둠처럼 내리고 있다
글
늙은 투사의 저녁 술자리
친구들 더러는 여의도에 가고
모두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신문마다 이름들 반짝반짝 빛나는 저녁
혼자 앉아 김치 안주로
소주 몇 잔 꺾고 돌아앉는 어둠에
푸념처럼 슬그머니 떠오르는
벼린 초승달
무엇을 이루려고 젊은 날을 불살랐는지
권력놀음에 취해
서로에게 총질하는 서글픈 창문 너머로
삭막해진 산하를
그래도 촉촉하게 붙잡아주는 개구리 소리
글
가을하늘
코스모스 피었는데
세상은 어둡구나
잠자리 도망치듯
끝없이 올라간다
인세人世에 도道가 없으니
하늘이라도 맑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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