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의 태풍

시/제7시집 2025. 7. 30. 09:18

찻잔 속의 태풍

 

 

연꽃은 부처님 미소

궁남지에 가득한 햇살

 

마음의 귀를 열면

먼 절 목탁소린들 듣지 못하랴

 

당신은 그냥 당신인데

찻잔 속에 담긴 태풍인양

손톱만 한 일탈에도 나는 늘

전전긍긍이다

 

고란사 쪽으로 손을 모은다

 

불은佛恩은 닿지 않는 곳이 없지만

마음을 닫아놓으면 이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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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꽃 피는 저녁

시/제7시집 2025. 7. 25. 11:43

배롱꽃 피는 저녁

 

 

당신의 더듬이가 내 마음을 쓰다듬다 가도

사랑보다 연민이

배롱꽃으로 피어나는 저녁

 

냉미역국처럼 새콤달콤한 탈출구를 찾으려고

바다 곁에 사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다가

부음만 확인했다

 

올여름 더위는 물엿처럼 끈적끈적하다

떼창으로 악쓰는 매미소리 한 줄금

헛바퀴만 굴리다 가고

 

날마다 창의적으로 개발하는

당신의 말썽에 파김치가 되어

일찍 뜨는 별 하나도 귀찮은 저녁

 

날 위로한다고 조롱조롱 피어나는

배롱꽃 빨간 꽃잎에

낮 더위만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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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린 아내에게

시조/제3시조집 2025. 7. 21. 10:59

치매 걸린 아내에게

 

 

자다가 문득 보니 주름살엔 새벽 달빛

아내여, 함께 온 길 망각으로 지웠구나

덧없다 덧없다 해도 무심히 가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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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시/제7시집 2025. 7. 12. 09:40

인생

 

 

자다가 문득 일어나서

당신의 얼굴 바라보니

새벽 달빛 더 환하게

주름살마다 새겨진 우리 세월을

쓰다듬어 주네

다 늦게 사랑을 알 만하니

번뇌 한 아름 따라오고

아픔과 동무로 살다 보니

인생을 알게 되네

인생은

꽃길만 가는 게 없더라

비틀비틀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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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당신을 위해 피었나보다

시/제7시집 2025. 7. 2. 08:52

꽃도 당신을 위해 피었나보다

 

 

사람은 몰라봐도

꽃은 알아보나 보다

 

꽃의 마음이 향기롭다는 것은

아직 잊지 않았나 보다

 

활짝 웃는 그 모습을 보면

아내는 아이처럼 박수 치며

반겨주기에

 

우리 아파트 산수유 꽃은

겨울을 뿌리치고

서둘러 당신을 향해 달려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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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가교리

시조/제3시조집 2025. 7. 2. 08:51

내 고향 가교리

 

 

눈뜨면

내려오던

남가섭암 목탁소리

 

풀꽃 향 피워내던

마곡천 여울소리

 

타향을

떠돌더라도

돌아갈 곳 하나 있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정답게 웃어주고

 

어려운 일 있을 때면

내 일처럼 도와주던

 

서러움

깊어질수록

힘이 되는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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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시월

시/제7시집 2025. 6. 11. 16:33

불타는 시월

 

 

친구는 혼자 화를 내다

절교를 선언하고 돌아가고

나는 접시에 고기처럼 쌓인 폭언을

안주삼아

눈물로 소주를 마신다

창밖엔 우리 나이만큼의 가을이 익고 있다

불판의 열기처럼 분노로 달궈졌던 친구

다 늙은 나이에 무슨 미련이 남아서

시국 얘기 한 마디에 산산조각 낸

오십년 우정

한 쪽으로만 배가 기운다는 건

침몰하고 있다는 일이다

몇 잔 마신 취기에 어지럽게 뒤섞여

노을인양 출렁거리는

불타는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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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산행

시/제7시집 2025. 6. 11. 16:31

5월 산행

 

 

산은 한사코

나를 반겨 손을 흔들고

안개는 품을 벌려

감싸 안으려 한다

찔레꽃 향기가 불러서 왔는데

세상의 근심 말끔히 살라주는

초록빛 불길

느닷없는 뻐꾸기 소리에

딸꾹질하는 산

풀썩이는 송홧가루

posted by 청라

밝은 빛이 되고 싶다

카테고리 없음 2025. 3. 19. 09:00

밝은 빛이 되고 싶다

 

 

도화지 보면 행복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도화지는 하얗게 비어있어서

마음대로 꿈을

설계할 수 있다

 

때로는 나도

여백이 많은 도화지가 되고 싶다

 

누군가 괴로울 때

그 아픔을 감싸주는 포근한 공간이

되고 싶다

 

비탈진 세상 걸어갈 때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처럼

 

아주 막막할 것 같은

당신의 삶에

밝은 빛이 되고 싶다

 

posted by 청라

보길도에서 손을 흔들다

시/제7시집 2025. 3. 9. 08:25

보길도에서 손을 흔들다

 

 

마지막 배는 떠나가고

포구는 적막에 젖는다

이별이 숙명이라면

기쁘게 손을 흔들자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는

담배연기처럼

외로움을 즐기자

안개는 눈물인 듯 섬을 채우려 하고

가로등 하나 한사코

절망을 벗겨놓는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