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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어깨동무
당신의 맑은 미소가 된서리를 맞던 그 날까지
우리 인생은 아직
한여름인 줄 알았습니다
찍혀 나온 사진에 숭숭 구멍 뚫린
소중하게 쌓아온 것들 잘려나간 멍 자국을 보면서
이제 나도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행복한 날들은 왜 이리 짧은 걸까요
긴 머리에 보랏빛 원피스
당신의 봄날은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함께 걷는 삶의 길에 시름없이
국화꽃이 피었다 시들어갑니다
나의 힘든 날들을
당신이 나누어 이고 왔듯이
당신의 힘든 날은 내가 나누어 지고 가려 합니다
아픈 고갯길 어깨동무로 함께 갑시다
글
글
적막에 갇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유등천 여울목
짝 잃은 두루미 한 마리 석상처럼 서 있다
등 뒤로 길게 자리 잡은
하늘만한 공허
개울 가로 자잘하게 개불알꽃들이 피어나고
까치가 울고 때로는 스포츠카가 굉음을 울리고 지나가지만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적막
외로움에는 약이 없다
내가 자다가 문득문득 일어나
옆자리를 보며 안도하는 것은
채매 걸린 아내라도
옆 자리를 굳게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인양 정지해 있는 두루미를 본다
불어오는 바람도 피어있는 꽃들에도
의미를 잃었다
함께 걸어가다 옆 자리가 비워진다는 것은
깨지지 않는 적막에 갇히는 일이다
글
소멸의 법칙
구절초 꽃이 진다고
귀뚜라미 밤새도록 울어댑니다
아름답게 지는 것이 어디 있나요
이 세상 누구보다 화사했던 꽃들도
된서리 한 줌에
저리 사그라드는 것을
아픔 없이 가는 사람 어디 있나요
글
아내의 달력
아내의 달력은 아직도 1월이다
계절은 어느새 국화꽃을 피웠는데
넘기는 걸 잊은 아내의 시간은
태엽이 풀린 채로 멈춰 서 있다
추녀 끝에서 오래
비에 햇살에 절은 못처럼
아내의 기억은 빨갛게 녹이 슬어서
친정엄마도 잊어버리고 아들 손주도
잊어버리고
붙어사는 남편조차 까막까막하는
궤도의 이탈
지나간 세월을 혼자 넘기면
동그라미 친 날짜마다 단풍처럼 피가 솟는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추억의 둥치에서는
버섯처럼 하얗게 아우성이 인다
글
시인이라 미안해요
노래하는 사람들 아픔은
다 노래가 되어
세상사람 가슴마다 꽃으로 피는데
당신을 위한 나의 눈물은
시가 되어도 마음마다 스며들지 못합니다
시인이라 미안해요
그 사람 사부곡思婦曲엔 온 나라가 울지만
총명하던 당신 눈망울에도
옥경이처럼 빛이 점점 꺼져 가는데
시인이라 미안해요
외쳐도 외쳐도 귀를 여는 사람 없구료
혼자 쓸쓸히 사그라드는 당신을 보며
시인의 아픔은 나눠도 반이 아니라
쪼갤수록 더욱 커지는 멍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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