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시/제7시집 2025. 12. 9. 13:20

조약돌

 

 

저 돌들은

저 혼자 그냥 빛나는 것이 아니다

 

집채만 한 바위였다가

 

뿔처럼 모났던 성질

다 깎아내고

 

사랑의 기쁨과

멍울처럼 금간 아픔도 다 털어내고

 

마침내 오랜 세월의 숫돌에

모든 미련까지 다 갈아내어

 

오래 면벽한 고승의 머리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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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서정

시조/제3시조집 2025. 12. 7. 08:52

산촌 서정

 

 

산촌 살림에는

온 마을 다 한 식구라

 

해질녘 다랑논을

반달만큼 못 채우면

 

집마다 서둘러 나와

한 포기씩 꽂아준다

 

 

젊은이는 돈 번다고

도시로 다 떠나고

 

홀아비 외딴 집에

지난밤 불이 꺼져

 

정 많은

큰소쩍새는

밤새 안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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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시/제7시집 2025. 12. 6. 10:03

우리들의 천국

 

 

서귀포 앞 바다는 지금도 만원이다

 

고추냉이 맛 세상의 바람도

여기 와서는

숨죽은 채 야자수 잎에 머물고

 

흰 말떼처럼 갈기 휘날리는 파도는

초원을 휘저으며 뛰놀고 있다

 

전생의 반쪽을 만나듯

서귀포 동백꽃은

봄이 설레어서 몰래 붉는가

 

밭머리에 선 돌담처럼

가슴마다 구멍 뚫린 채 한숨에 젖던 사람들도

모두 꽃빛으로 향기롭게 익는구나

 

단비에 머리 감은 한라산아

정갈한 네 정수리까지 다 드러나는

아침이 오면

 

외돌개 눈망울 걸어놓은 먼 수평선에

흰 돛배 하나 떠서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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