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가을

산사의 가을

 

 

인가의 비린내가

산문에 막혀있다.

 

오늘도 돌부처는

따뜻하게 웃고 있네.

 

세상은 어지러워도

믿음으로 얻은 평화

 

 

사바와 불계가

산문으로 나눠질까

 

산 속의 저녁놀은

속세까지 이어졌네.

 

온세상 부처님 말씀으로

새빨갛게 익은 가을

 

 

2021. 3. 19

 

 

posted by 청라

산사의 여름

산사의 여름

 

 

베개 밑 골물소리에

초록 향기 묻어온다.

 

여승은 밤 깊도록

무슨 소원 저리 빌까.

 

목어木魚

비우고 비운

꿈 밭 머리 별이 뜬다.

 

 

2021. 3. 19

 

 

posted by 청라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릴레이/나의 시 쓰기 )

엄기창론 2021. 3. 4. 23:01
  • 비밀댓글입니다

    2021.03.05 23:20
    • 언제 왔다가갔어? 잘 있지? 직장에는 잘 다니고?

      청라 2021.03.06 07:40 신고 DEL
  • 비밀댓글입니다

    2021.04.25 21:12
    • 우리 경하 잘했다. 축하한다. 공무원 시험 어렵다는데 장하다. 안면도 솧은 곳이니 멀다고 불평하지 말고 회 많이 먹으며(술은 조금만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다 대전으로 오거라.

      청라 2021.07.17 22:44 신고 DEL

릴레이/나의 시 쓰기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

 

                                                             엄기창

 

 

1. 내가 시를 쓰는 이유

 

시는 왜 쓰는가?

  예로부터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의문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세영 시인은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어 시를 쓴다고 말했고, 정호승 시인은 스스로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서라 말했으며, 공자께서는 논어 위정편에서 시 삼백 편이면 思無邪라 했다. 그러나 나는 즐겁게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남들 다 꿈나라에서 노니는 깊은 새벽, 문득 잠결인가 발상 한 가닥 떠오르고 몽환적 상태로 서재에 가서 시상을 다듬고 살을 붙여 완성했을 때의 그 기쁨, 이런 순간은 전율과도 같아서 내 삶에 있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지다. 시를 쓰는 게 즐겁고 시를 쓰는 게 행복해서 시를 쓴다.

  내가 시의 길로 빠져들게 된 원인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숙제 때문인 것으로 기억된다.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밀짚 멍석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밤하늘엔 별이 빛나고 어머니 베 짜는 소리가 들려오는 밤이었다. 귀뚜라미 노래를 들으며 문득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엄마가 안방에서 베 짜는 소리

나는 멍석에 누워 별세계 꿈을 꾸고

동생들은 소록소록 잠자는 달밤

 

귀뚤 귀뚤 귀뚤 뀌뚤

귀뚜라미 풀숲에서 울어대는 밤

계수나무 밑에서 떡방아를 찧던

아기 토끼들은 떡 먹으러 가는 밤

달밤전문(초등학교 5학년 때)

 

  이 시가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어 상도 받고, 더구나 액자에 예쁜 그림과 함께 담겨져 복도 벽에 걸려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액자를 볼 때마다 우주의 중심이 된 것 같았고, 내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즐거워졌다. 이때부터 틈만 나면 노트에 시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2. 날개를 달다

 

  대학에 가서 수요문학회에 가입했다. 수요일마다 모여 합평회를 하는데 선배들이 참으로 극성스러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 쓰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또 고등학교 때도 교내 문학회에 들어 활동을 했었는데, 작품을 내면 초보자 나무라듯 온통 난도질해서 걸레를 만들어놓았다. 나도 성질이 나서 그 선배 작품 낼 때 온갖 시론 책 뒤적이며 빨갛게 써가지고 가서 아주 혼을 내 놓았다. 그런데 합평회 끝나고 나선 늘 막걸리 집에 갔는데 그 날도 그 선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 엄기창 제법이던데.” 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보니 평소 우러러보던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 문덕수, 서정주, 박목월 같은 시인의 작품도 합평회에 나오면 완전 박살이 나는 것이었다. 에그, 작품은 개똥같으면서 입들만 살아서.

그런데 그 투지를 깨워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선배가 제법이라 했던 것도 선빵 맞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갈기를 세울 줄도 안다는 칭찬이었을 것이다. 선배들의 독려? 속에 시작 능력이 일취월장 하여 71(2학년) ‘1회 학내 지상백일장대회에서 가작, 73(4학년) ‘한국시인협회주최 학생문예 우수상 등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중 백미는 7322세의 나이에 시전문지 시문학이 창간 2주년의 기념사업으로 실시한 전국대학생들의 전국대학시집에서 아침 서곡序曲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그 작품을 보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노래를 알았다.

비스듬히 을 베고 누운 들이

악보 속에서 걸어 나와

목젖을 두드렸다.

우는 새의 목 너머로 훔쳐 본

아직 어느 악보 속에도 살지 않는

의 침전,

아침의 곧은 줄기 성센 가지를 골라

새는 노래를 뿌린다.

번득이는 들로 구상構想 짓는

몇 올 가락이 햇살처럼 선명하게

숲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다.

 

  유경환, 김남조 두 분의 심사위원께서 생경할 정도로 참신한 표현이라 칭찬해 주신 이 시를 통해 초회 추천을 받았고, 1975년 울진 해안에서 해안소대장을 하면서 쓴 아침바다라는 시로 추천완료를 하여 시의 길로 날아오르게 되었다.

 

3. 절제와 스밈의 시학

 

  내 첫 시집 서울의 천둥의 해설을 써주셨던 조재훈 선생님은 내 시의 특징을 절제와 스밈의 시학이라 하셨다. 극도의 응축을 통해 표현하고 견고하며 단단한 구조이면서도 드라이하지 않게 촉촉한 서정을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마음에 스며들게 해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의 경제 원리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감성이 풍부한 시를 쓴다는 것이다.

  내 시엔 긴 것이 드물다. 그러나 내용마저 짧은 것은 아니다. 시는 짧지만 길고 긴 이야기와 감추어진 여백의 의미를 가득 넘치게 거느리고 있다. 빠르게 스쳐 읽는 사람에게 나의 시는 문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힘쓴 몇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차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음미하듯 읽는다면 내 시가 가진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하늘 위엔

늘 천둥이 운다.

내려올 곳이 너무 많아서

내리지 않고

북악北岳에서 남산南山으로 흐르며

울기만 한다.

대밭에 참새처럼 숨어

지저귀는

사람들은 알리라

천둥이

누구의 머리 위에서

우르룽 우르룽 울고 있는지.

번갯불보다 고운 어둠 밑에서

사람들은 번갯불에 타면 재가 될

청홍靑紅의 꿈들을 만들고 있다.

서울의 천둥전문

 

  나의 시 가운데에는 특이할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조금도 격하지 않다. 차분한 가락과 상징을 통하여 할 말을 시로 드러내고 있다.

  서울 하늘에 천둥울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 하늘에만 어떻게 일 년 내내 비가 오고 천둥이 치겠는가. 그렇다고 과장도 허구도 아니다. 다른 의미를 뒤에 거느린 암시와 상징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온갖 악의 온상일 수 있다. 특히 고향의 시골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울은 반 자연이며 반 고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천리(天理)에 따른 한울님의 응징인 천둥이 항상 울기 마련이다. 내려와 인간들에게 응징할 곳이 너무 많으나 그냥 스스로 울 뿐, 가시적인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으로서의 참새 떼같은 인간들은 조금도 뉘우침이 없다. 하늘의 말 ―― 번갯불에 타면 그냥 없어지게 될 갖가지 욕망의 꿈을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다. 어둠이 번갯불보다 곱다는 시적 진술은 역설이다.

 

4. 행복을 노래하는 긍정의 시

 

조남익 선생님은 내 3시집 춤바위해설에서 본래부터 시는 진선미(眞善美)였다. 인간이 이상으로 삼는 참다움 · 착함 · 아름다움인 것이다. 라고 말했다. 또한 셸리는 그의 시의 옹호에서 시는 지복지고(至福至高)의 마음의 지고지복(至高至福)의 순간의 기록이다라고 했다. ‘지극히 높고 지극히 행복한 기쁨의 경지에서 시는 탄생할 것이라는 말이다. 시는 정신적인 극치의 환희인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극도의 슬픔을 노래하고 더러는 그로 인해 독자들의 큰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불행을 소재로 시를 써서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시는 대부분 따뜻하다.

 

아파트 안 도로를 차로 달리다가

다리 다친 비둘기 가족을 만나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선다.

 

경적을 울리면

아기 비둘기 놀랄까봐…….

 

산을 오르다가

허리 구부러져 누운 들국화를 보면

발을 멈추고 튼튼한 이웃에 기대어 준다.

가벼운 바람에도

몇 번이나 뒤돌아본다.

 

잠시만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내 따스한 마음 머물 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조그마한 나의 온기가

다리가 되고, 날개가 되고

숨결이 되어줄 사람 얼마나 많은가.

 

단풍잎 붉은 기운이

핏줄을 타고 들어온다.

바람은 차도 가을은 따뜻하다.

따뜻한 가을전문

 

비둘기들이 놀랄까봐 차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든가, 등산길에서 구부러진 들국화를 세워준다든가 등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노래하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시의 자세이다.

 

5.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

 

그러고 보면 내 주위엔 시를 통해 불행을 치유한 시인들이 많이 있다. 80세의 한 사람은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절망하다가 시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극도의 슬픔과 죽음에의 유혹마저 여보 어디 있어요라는 시집을 통해 털어낸 후 웃음을 되찾았다. 또 한 78세의 시인은 아내를 암으로 잃고 본인마저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시를 알게 된 후 치유 받았다 한다. 두 사람 모두 시가 없으면 자기들은 죽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 시에는 강한 힐링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외로운 사람, 불행한 사람, 노년에 할 일 없는 사람들 모두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

 

 

시문학596(20213월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