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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적막에 갇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유등천 여울목
짝 잃은 두루미 한 마리 석상처럼 서 있다
등 뒤로 길게 자리 잡은
하늘만한 공허
개울 가로 자잘하게 개불알꽃들이 피어나고
까치가 울고 때로는 스포츠카가 굉음을 울리고 지나가지만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적막
외로움에는 약이 없다
내가 자다가 문득문득 일어나
옆자리를 보며 안도하는 것은
채매 걸린 아내라도
옆 자리를 굳게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인양 정지해 있는 두루미를 본다
불어오는 바람도 피어있는 꽃들에도
의미를 잃었다
함께 걸어가다 옆 자리가 비워진다는 것은
깨지지 않는 적막에 갇히는 일이다
글
소멸의 법칙
구절초 꽃이 진다고
귀뚜라미 밤새도록 울어댑니다
아름답게 지는 것이 어디 있나요
이 세상 누구보다 화사했던 꽃들도
된서리 한 줌에
저리 사그라드는 것을
아픔 없이 가는 사람 어디 있나요
글
아내의 달력
아내의 달력은 아직도 1월이다
계절은 어느새 국화꽃을 피웠는데
넘기는 걸 잊은 아내의 시간은
태엽이 풀린 채로 멈춰 서 있다
추녀 끝에서 오래
비에 햇살에 절은 못처럼
아내의 기억은 빨갛게 녹이 슬어서
친정엄마도 잊어버리고 아들 손주도
잊어버리고
붙어사는 남편조차 까막까막하는
궤도의 이탈
지나간 세월을 혼자 넘기면
동그라미 친 날짜마다 단풍처럼 피가 솟는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추억의 둥치에서는
버섯처럼 하얗게 아우성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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