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에서 손을 흔들다

시/제7시집 2025. 3. 9. 08:25

보길도에서 손을 흔들다

 

 

마지막 배는 떠나가고

포구는 적막에 젖는다

이별이 숙명이라면

기쁘게 손을 흔들자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는

담배연기처럼

외로움을 즐기자

안개는 눈물인 듯 섬을 채우려 하고

가로등 하나 한사코

절망을 벗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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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외출

시/제7시집 2025. 2. 16. 19:44

아내의 외출

 

 

노을 걸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없고

애들 엄마도 없고

색동옷 입은 아이만 하나

 

반겨주던 웃음도

외출을 했나

 

거실엔

주인처럼 들어와 자리잡은

쓸쓸한 겨울

 

 

posted by 청라

눈 오는 밤에

시/제7시집 2025. 2. 3. 07:10

눈 오는 밤에

 

 

한 사흘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평생 쌓아올린 이름도 벗어놓고

예닐곱 살 어린 날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눈 속에 고구마를 몰래 묻어놓으면

길어도 헛헛하지 않던 겨울밤

화롯가에 모여앉아

할머니 옛 얘기에 눈을 반짝이며 가슴 졸이던

추억의 도화지에

평생을 그리운 그림으로 남아있는 것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밤새도록 꿈 밭에서 서성이고

형이 뒤척이면 이불 밖에서 내 다리가 얼던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들 모두 막아놓고

예닐곱 살 그 날에 갇혀봤으면 좋겠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