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안 보는 이유

신문 안 보는 이유

 

 

신문 칸칸마다 오 할은 소설이다.

참신한 허구다 흥미 만점이다

제 엄마 찌찌 본 것도 동네방네 소문낸다.

 

공정성 정확성은 개에게나 줘버려라

박수 치는 사람이 많으면 장땡이지

촛불에 기대다 보면 특종 하나 건질 걸

 

나라야 망하던 말 던 무엇이 대수던가

양심의 곁가지에 벌집 하나 지어놓고

솔방울 떨어만 져도 온 벌통 다 달려든다.

posted by 청라

슬픔을 태우며

엄기창론 2017. 2. 24. 07:30

슬픔을 태우며

                                      엄 기 창


 

미루나무 그림자가 노을 한 자락 걸치고 있는

금강 변에 서면

품고 온 슬픔이 없는데도 가슴에서 피가 난다.

 

착한 것도 죄가 되는가!

 

백제의 산들은 왜 모두 모난 데 없이 둥글기만 해서

적군의 발길 하나 막지 못한 것이냐.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짠한 눈물 몇 종지 스스로 씻어내며

세월의 골짜기를 흐르는 금강

 

강변에 불을 피우고

남은 슬픔 몇 단 불 속에 던져 넣는다.


약력 

1975시문학으로 등단.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시집 서울의 천둥』 『가슴에 묻은 이름』 『춤바위

시조집 봄날에 기다리다

<대전문학상> <호승시문학상> <하이트진로문학상> 대상 <정훈문학상> 대상

<대전광역시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시작 노트

 

나는 백제라는 이름만 읊조려도 눈물이 난다. 역사 속에서 사라질 때 슬프지 않은 나라가 있겠느냐만 공주나 부여에 가면 유독 슬픈 전설이 많고, 어린 시절부터 그런 전설에 묻혀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면 백제의 얼굴 표본이라 한다. 둥글둥글 모난 데 없이 원만한 게 서산 마애불이나 석불들의 모습과 닮았단다. 문화재 속에 드러난 백제인의 얼굴들은 모두 더없이 친근감 있고 평화로운 모습인데 왜 백제의 역사는 비극으로 인식되는 걸까. 아마도 3국 중에 제일 먼저 망한 나라가 백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백제에 관한 시를 몇 편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맨 첫 번째 쓴 시가 이 슬픔을 태우며이다. 열 편 쯤 만들어 다음 시집에 펴내고 싶다. 슬픔을 태우고 백제의 전설들을 그들의 얼굴처럼 평안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posted by 청라

감각적 이미지로 그린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

 

 

유등천에서

 

 

열병식 하듯 줄지어선

갈대들의 춤사위도 시들해지고 있었다.

해오라기 눈동자가

물비늘로 일렁이는 여름날 오후

 

스쳐가는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었다.

내 그림자 혼자 따라와

반짝이는 외로움

 

저기 가장교 물아래 거꾸로 달리는

트럭의 바큇살마다

비누거품으로 만든 구름이 피어나고

 

발을 다친 소음騷音들은

모두 유등천으로 내려와

뿌연 물이끼로 자라고 있었다.

 

일광의 화살을 막고 서있는

버드나무 아래엔 손수건만한 구름이 하나

 

어딘가로 보내는 간절한 소식처럼

계룡산 쪽으로

새 한 마리 띄워 보낸다.


  한창 시를 공부할 무렵 나는 김광균 시인의 시에 심취해 있었다. 와사등, 기항지, 설야, 추풍귀우, 황혼가등의 시집을 꼼꼼히 챙겨 읽으며 어떻게 하면 이처럼 참신하고 탁월한 감각적 표현으로 한 편의 시를 완성도 있게 형상화할 수 있겠는가를 연구하였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 “멀리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설야)”, “길은 한 줄기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추일 서정)” 등의 시구를 읽으며 시를 읽는 쾌감에 전율하였다.

  내 첫 시집 서울의 천둥에 담긴 시들이 비유나 상징으로 그려진 이미지 중심의 시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 시의 태동이 김광균, 정지용 등의 모더니즘 시로부터였고, 그 분들을 닮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선명하던 내 시의 빛깔이 희미해지고 관념적 추상적 목소리로 노래하는 경우도 있게 되었다. 할 말이 많아져 이미지 중심의 묘사적 기법이 아니고, 설명을 통한 서술 중심의 시를 완성하고 만족하기도 하였다. 어느 여름날 유등천을 걸으면서 이러다는 안 되겠다 큰일 나겠다 하는 경각심이 들었다. 버드나무 아래 벤취에 앉아 한 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 머릿속에 담긴 김광균 시인의 시의 기법으로 시 한 편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유등천에서를 완성하였다.

  위 시는 언어로 그린 한 폭의 풍경화이다. “열병식 하듯 줄지어선/ 갈대들의 춤사위도 시들해지고 있었다.” 내가 유등천에 가서 첫 번째 만난 것은 갈대들이었다. 직유법과 의인법을 사용하여 더위에 늘어진 유등천변의 여름날 오후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러다 보니 물에 발을 담그고 물속을 노려보는 해오라기 한 마리의 눈동자에서는 물비늘이 일렁이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모두가 낯선 타인들이었다. 그 타인들 속에 느끼는 도시인의 고독을 내 그림자 혼자 따라와/ 반짝이는 외로움이라고 역설법을 통해 표현하였다.

   문득 바라보니 가장교 아래로 흐르는 물속으로 트럭 그림자가 달리고, 바큇살에는 비누그림자가 뻐끔거리며 걸려있었다. 깨끗한 것같이 보이는 물도 오염되어 있었는데 발을 다친 소음騷音들은/ 모두 유등천으로 내려와/ 뿌연 물이끼로 자라고 있었다.”라고 청각을 시각화한 공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해 보았다. 따갑게 쏟아지는 여름 햇살을 일광의 화살이라 은유법으로 표현해 보았고, 손수건만한 그 그늘에서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를 알리려고 대자연인 계룡산 쪽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새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지 모르지만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응답은 아마 가지고 오지 못할 것이다. 현대인의 고독과 우수는 해결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청라

                                                                                                          사진  정연휘


오이풀꽃과 고추잠자리

 

 

네가 오이풀꽃으로 홍사초롱 밝혀든다면

나는 고추잠자리로

네 기다림 위에 날개를 쉬겠네.

우리들의 늦여름은 소리 없이 달려서

초록 사랑 빛바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네.

흔들어 봐요. 하늬바람아

때로는 오이풀꽃 도리도리해도

한 몸인 듯 돌이 되겠네.

 

 

2017. 2. 13

심상 20176월호

posted by 청라

머리에서 가슴 사이

수필/서정 수필 2017. 2. 7. 09:28

머리에서 가슴 사이

 

 

 음력 8월 열 사흘 달빛이 밝았다. 달은 롯데 백화점의 동편 하늘에 둥그렇게 떠올라 도시의 모든 불빛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온 도시를 제 세상인 양 밝히고 있었다. 모처럼 만나 저녁 식사와 곁들여 수다를 떨다가 일어선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남사장의 얼굴이 전에 없이 환하다.

  “아니 남 사장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얼굴이 완전 꽃처럼 폈는데

  “엄 선생님 저 이번 추석엔 서울 동생 집으로 차례 지내러 가요. 동생이 퇴직하고 제사 가져갔  어요.”

  남 사장의 남동생은 경찰서장까지 지낸 경찰 고위직에 있는 인물이었다. 너무 바빠서인지 아니면 기독교를 믿어서인지 평생 외아들인 동생 에게만 정성을 쏟은 부모님의 제사도 몰라라 한다고 남 사장은 늘 푸념을 하였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굶길 수 없어 장녀인 남 사장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자주 동생 욕을 하였다.

  “아니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제사 가져갈 생각을 다 했을까?”

  나의 물음에 남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그동안 출가외인인 큰누나가 부모님 제사를 지내서 늘 목에 무엇이 걸린 것처럼 답답했단다. 그래도 직장이 서울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데 제사 지내러 서울 집에 가기도 그렇고 해서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이다. 늘 머리 속에서는 제사를 가져오라 하는데 가슴 속에서 거부해서 실행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공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제일 먼저 이성이 시키는 대로 누님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자식이 제 마누라랑 와서 찔찔 울면서 죄송하다고 하는데 배길 수가 있어야지. 얄 미워서 평  생 안 보고 살려고 했는데

  말하는 남 사장의 표정이 보름달보다도 더 밝다. 평소엔 자주 우울한 얼굴을 했었는데 마음속의 근심이 모두 해소된 모양이었다. 남의 며느리로서 시집에서 친정 부모 제사 지낸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남 사장 동생도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차가운 이성은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하는데 뜨거운 감성은 내키지 않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늘 살밑에 가시가 박힌 채로 살아가는 듯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머리에서 말하는 바른 소리를 가슴이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거리인 60cm, 어떤 사람은 평생 이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몸이지만 유리된 채 괴로워하면서 살아간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머리에서 가슴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정신적으로 좁혀서 늘 머리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2017. 2. 7

posted by 청라

제비꽃 편지

제비꽃 편지

 

 

별을 따다가 뿌려놓은 듯

제비꽃 모여 피었습니다.

햇살은 꽃밭에만 흥건히 고여

등잔불 연기처럼

아지랑이를 피워 올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처마 밑에 제비 날아와 울 듯

그렇게 오셔요.

들불처럼 번져가는 자줏빛 함성.

 

 

2017. 2. 3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