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외로움과 빛나는 나를 만나는 시간-4시집 세한도에 사는 사내 해설

엄기창론 2017. 9. 29. 07:00

순백의 외로움과 빛나는 나를 만나는 시간

 

                                                             문학평론가 조해옥

 

 

 

1. 시 정신의 근간, 염결성과 연민과 자족

 

엄기창 시인의 새 시집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를 이끄는 시 의식은 염결의식(廉潔意識)과 연민의식(憐憫意識)이다. 자족(自足)의 정신 역시 새 시집에서 시인의 시적 지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시인의 첫 시집 󰡔서울의 천둥󰡕(1993), 두 번째 시집 󰡔가슴에 묻은 이름󰡕(2004), 세 번째 시집 󰡔춤바위󰡕(2014), 그리고 새 시집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염결성과 연민의 감정이 창작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무욕으로부터 형성되는 자족의 아우라가 시인의 시편들을 감싸고 있다.

엄기창 시인의 시에서 염결의식은 지금까지 발표한 시인의 시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정신적 지향이다. 시인은 그의 마음 세상에서 세속성을 다 지우고 순백의 고결함으로 변화시키려는 갈망을 드러낸다. 그 갈망은 세상을 향해 있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다. 그의 시 山水圖(󰡔서울의 천둥󰡕)향일암向日庵에서(󰡔춤바위󰡕)에서 보여준 지움과 텅 빔을 향한 시인의 시적 추구는 새 시집에 실린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에 이르러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시인의 시적 자아는 세상이라는 바깥이 아니라, 그로부터 초월한 자신에게서 지극한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엄기창 시인의 연민의식은 벗어날 수 없는 아픔을 체득한 존재론적인 인식임을 드러낸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시인이 반복하여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이 그의 연민의식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무덤(󰡔가슴에 묻은 이름󰡕)에서 드러나 있듯, 엄기창 시인은 어머니로부터 언제나 생생하게 환기되는 아픔이면서 그것의 강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아픔을 경험한다. 새 시집에 실린 대못에서 시인의 시적 자아는 가슴 깊숙이 묻는 아픔, 내색하지 못 하는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어머니를 통해 체득한다. 시인에게 가슴은 연민이 거처하는 장소이다. 동시에 가슴은 시인의 시적 자아가 내면으로 들어가 진짜 자기를 만나는 장소이며, 다른 생명들과 타자들을 자신과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장소이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약한 존재들에게 머물 때, 연민이 발생한다. 연민의 감정은 외부에 있는 미소한 위상을 갖는 생명들로부터 오고, 온기를 지닌 시인의 마음 밭”(대청호 가을)에서 오기도 한다. 엄기창 시인은 그의 마음 밭에서 외부의 화려함과 거짓됨을 다 걷어낸 후에 살아서 반짝이는 자신을 만난다. 시인이 참된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그의 무욕의 삶에서 기인한다. 마음의 터전에서 시인은 빛나는 외로움과 대면한다.(유등천에서) 그가 진정한 자기를 깨닫는 시간을 맞을 수 있는 것은 위기에 처한 생명들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 마음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 같은 연민의식은 시인의 시편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욕의 시 정신을 형성하며, 자족의 시 세계로 이끄는 힘이다.

 

 

 

2. 은거(隱居), 지극한 자유로움의 형태

 

엄기창 시인의 시작품에서는 여러 사물들과 풍경은 점점 지워지고 하나의 상징적인 사물로 응축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남겨진 사물은 다른 사물들이 사라진 시의 화폭에서 명징하게 드러나게 된다. 시의 화폭에서 주변에 머물던 여백은 점점 커지고, 여백의 한가운데서 하나의 사물이 선명하게 솟아나는 것이다. 여백이 사물들을 지운 순백의 화폭은 엄기창 시인의 염결의 시 정신을 표상한다.

엄기창 시인의 염결성은 그의 󰡔서울의 천둥󰡕󰡔춤바위󰡕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투명하게 벗어 오히려

속 깊은

하늘 한복판에

예닐곱 살 소녀의 투정처럼 피어난

맨드라미만한 구름 한 송이

                    -山水圖부분, 󰡔서울의 천둥󰡕

 

山水圖에는 갖가지 자연물들이 가득하지만, 그것들은 점점 지워지고 하늘 한복판에 구름 한 송이만 남는다. 구름 한 송이는 고결함을 지향하는 시적 자아의 상징적 거처이다.

 

바다를 지우며 달려온 눈보라가

기와지붕을 지우고

탑을 지우고

 

목탁木鐸 소리마저 지운다

 

(중략)

 

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

                -향일암向日庵에서부분, 󰡔춤바위󰡕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까지 지우고 비워내는 시인은 순백의 세계를 꿈꾼다. 눈보라의 흰빛이 사물들을 덮으며 사물들의 형상을 지우고, 목탁 소리마저 지운다. 그는 오감(五感)으로 감각하는 세상을 넘어 텅 빔의 세계를 추구한다. 시인의 완벽한 순수의 지향은 그의 새 시집에서 그의 시세계를 상징적으로 담아 낸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에서 형상화의 절정에 도달한다.

 

그 집에는

울타리가 없다.

사방으로 열려서 신바람 난 바람이

울 밖 같은 울안을

한바탕 휘젓다 가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그 집 사내는

청청한 외로움을 가꾸기 위해

덩굴장미 한 그루 심지 않았다.

덩그렇게 세워 놓은 네그루의 소나무에도

새 한 마리 불러오지 않았다.

제대로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평생을 마음 밭에 겨울만 들여놓고

뜰 밖을 둘러 친 울타리 대신

서릿발 같은 기상 온 몸으로 반짝이며

아예 방문을 지워버리고

세상의 시끄러운 일에

고개를 내미는 법이 없다.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전문

 

추사의 <세한도>에는 한겨울을 배경으로 소나무 네 그루와 작은 집 한 채만이 화폭에 담겨 있다. 엄기창 시인의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세한도>에 담긴 추사의 서사를 반영하면서도 집에 은거하고 있을 사내의 의식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내는 엄기창 시인의 시적 자아이면서 중심이 되는 자아이다. 위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용사들인 없다않았다사내의 거부의 기개와 청청한 외로움을 부각시킨다. 외부 세계를 지우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은거(隱居)하는 사내의 결연한 모습은 그가 스스로 찾아낸 지극한 자유로움의 형상이다.

 

꽃이 되지 못했다고 서러워 말아라.

이른 봄부터 대지의 기운을

빨아들여

싹을 틔우고 잎을 키워낸

네가 없었다면

어찌 한 송이의 꽃인들

피울 수 있었으랴.

 

꽃이 박수 받을 때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묻혔다고 울지 말아라.

세상에 박수 받던 것들은

쉬이 떠나가고

장막 뒤에 숨어있던 너만 살아 반짝일 때

그림자이기에 오히려 빛나는

뿌리의 의미를 알 것이다.

                           -뿌리에게전문

 

위 시에서 시인의 시적 자아는 바깥의 화려하고 요란한 형상들을 모두 지우고 자신의 내부로 들어간다. 그는 거짓된 자신 혹은 위장된 자기를 벗어나 생생하게 살아 빛나는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 가장 진실한 자기를 만날 때, 어떤 것으로도 꾸미지 않은 자신을 만날 때, 그는 비로소 어둠 속에서 빛나는 뿌리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뿌리는 엄기창 시인이 갈망하는 가장 안쪽에 자리한 진실한 시적 자아이며, 생기로 반짝이는 자아를 상징한다.

대문 굳게 닫힌 울안/빈 집 속의 적막으로 봉오리 부풀려/한 등 눈물로 켜든 저 짙붉은 외로움.”(장미)에서처럼 시인은 빈 집에 홀로 피어난 장미에게도 응축된 외로움의 감정을 투사시킨다. 그러나 그가 시에서 노래하는 외로움은 단순히 처연하거나 쓸쓸하지만은 않다. 그는 외로움의 감정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계기로써 인식하기 때문이다. “스쳐가는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었다./내 그림자 혼자 따라와/반짝이는 외로움”(유등천에서)에서도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자기 안으로 홀로 걸어들어 간 시적 화자는 반짝이는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엄기창 시인의 시에서 외로움은 그의 시적 자아가 진정한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3. 나를 초월하는 감정, 연민

 

엄기창 시인의 시에서 근간이 되는 연민의식은 어머니에 대한 그의 연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가슴에 묻은 이름󰡕 2부 어머님께 드리는 노래편에는 시인의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시(獻詩) 20편이 실려 있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성스러운 그 눈빛”(정안수, 󰡔가슴에 묻은 이름󰡕)처럼 성스러운 존재이며, “어머님 이름이 지워지자/고향 빛깔은/막막한 어둠으로 변했습니다.”(임종, 󰡔가슴에 묻은 이름󰡕)에서처럼, 의미를 생성하기도 하고 그 의미를 무화시키기도 하는 절대적 존재이다.

눈 가만 감으시고/형님 얘기 하실 적에/입가엔 웃음 짓고/눈 가엔 이슬 맺혀/피멍울 끌어안고서/평생 사신 어머님.”(돌무덤, 󰡔가슴에 묻은 이름󰡕)에서처럼 시인은 어머니를 통해 결코 소진되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체득하게 된다.

 

도라지꽃 핀 돌무덤은

긴 대못이었다.

웃음꽃 벙글 때마다

어머니 가슴을 찔러

피멍울 맺히게 하는

뽑지 못할 대못이었다.

육이오 사변 통에

돌무덤에 묻혀

밤이면 부엉이 울음으로 울던 형

부엉이 울음 달빛으로 깔리던 밤

부엉이 울음 따라 나도 갈까봐

가슴에 꼭 안고서 지새우던 어머니

기억의 갈피 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길고긴 한평생을 대못에 꽂혀

환하게 웃던 모습 본 적이 없다.

                               -대못전문

 

위 시의 화자는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과 남은 아들마저 잃을까 불안해하던 어머니의 초조를 그의 어린 시절부터 생생하게 감지해야 했다. 참척(慘慽)의 아픔을 평생 지니고 산 어머니의 아픔은 그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의 아픔에 절절하게 공감하는 화자는 어머니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해오라기는 서두르지 않는다.

가뭄에 밀리다

반달만큼 남은 마지막 물웅덩이

목숨끼리 부딪쳐 깨어지는

여기에서는

생명은 생명이 아닌 것이냐!

나는 갑자기

입술이 갈라터진 아프리카 소녀가 생각났다.

한 대접의 물로는

한 생명도 살릴 수 없지만

네가 부어주고 또 내가 붓다 보면

연못이 다시 넘치지 않겠는가.

                            -한 대접의 물전문

 

가뭄에 말라붙은 연못에서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마시려는 동물들을 보면서 시의 화자는 한 대접의 물을 붓고자 한다. 목마른 동물들을 보고 화자는 목마른 아프리카 소녀의 갈라터진 입술을 떠올린다. 연못의 물을 채울 수 없을지라도 한 대접의 물을 붓고자 하는 화자의 행동은 무의미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의 물 붓는 행동은 해오라기를 비롯한 동물들에게서 자신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임이 드러난다. 동물들의 갈증과 화자 자신의 목마름이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화자의 인식은 다른 생명체들과 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 마음의 실행이 그 자신으로 하여금 연못이 다시 넘치지 않겠는가하는 믿음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파트 안 도로를 차로 달리다가/다리 다친 비둘기 가족을 만나면/숨을 죽이고 가만히 선다.//경적을 울리면/아기 비둘기 놀랄까봐······.”(따뜻한 가을, 󰡔춤바위󰡕)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생명을 대하는 시인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은 도로 위의 비둘기에게도 머물고, 메뚜기(대청호 가을)에게도 머문다.

 

눈앞에서 한 생명을 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손자 놈 어려울 땐 메뚜기 제가 도와주겠지.

손등으로 사마귀 머리를 탁 치니

메뚜기 신나게 풀숲을 뛰어갔다.

메뚜기의 등 뒤로 저녁 햇살이 모여들었다.

어둠이 가장 두꺼운 대청호 깊은 곳, 내 마음 밭에는

하늘의 밝은 별이 내려와 반짝이고 있었다.

                                                 -대청호 가을부분

 

사마귀에게 먹힐 위기에 처한 메뚜기를 살려주는 화자인 의 행동은 타자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화자는 미소한 생명체일지라도 위급한 상황에 빠진 메뚜기를 측은하게 여기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다. 엄기창 시인은 연민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작은 생명체들에게서 인간과 다르지 않은 존귀함을 발견한다.

시인은 새 시집에서 백제가 패망한 나라였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인 낙화암 전설이나 조룡대 전설, 삼충사, 그리고 금강을 소재로 한 시편들을 싣고 있다. “어제보다 더 자란/소정방의 무릎 자국/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조룡대, 머리를 감다), “허공에 흘러가는 바람이더라./아프고 아픈 것들 철쭉꽃으로/피었다가 지는데/깨져버린 마음처럼/삼충사 문은 열릴 줄 모른다.”(삼충사三忠祠의 문), “신라도 당나라도 없는 세상에/삼천궁녀의 한숨이 가슴에 닿아/꽃으로 피는 사람 있을까.”(낙화암) 등의 시구들은 패망한 나라의 백성들을 향한 시인의 연민을 애절하게 드러낸다. 지금은 백제를 망하게 한 당나라와 신라도 사라졌다. 다만 그들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여인들을 애처롭게 여기는 시적 화자의 마음만이 썩다 만 모과”(낙화암) 같은 패망한 과거 위에 머물 뿐이다.

엄기창 시인의 시적 지향은 무엇보다도 자족의 삶을 향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행복, 아내의 자리등에서 시인의 시적 자아는 아내와 가족,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집에서 가지는 만족감을 노래한다. 그의 마음의 평화가 아내와 가족에게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의 평화는 외부적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가 욕심을 버림으로써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엄기창 시인이 노래하는 자족의 삶은 참된 자기를 발견한 자가 어떠한 시간과 공간에서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