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생암귀(疑心生暗鬼)

수필/교단일기 2007. 4. 6. 09:00

<교단일기>

의심 생암귀(疑心生暗鬼)

淸羅 嚴基昌
 “엄 선생님,  가람이가 그 병 또 도진 것 같은데요.”

 토요일 오후였다.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나른한 오후의 주말을 즐기고 있는데 조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람이는 성품도 쾌활하고, 급우들을 위해 봉사할 줄도 알며, 공부도 곧잘 하는 아이다. 부모님들도 교양 있고, 집안도 부유한 편인데 어쩌다가 그 아이에게 그런 몹쓸 병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는 깨어진 주말의 평화 때문에 불쾌한 마음으로 학교로 달려갔다. 교무실에 가 보니 가람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조 선생은 화 난 얼굴로 무엇인가 묻고 있다.

 “조 선생, 가람이가 또 무슨 사고를 낸 모양이죠?”

 “예. 우리 반 형태가 지갑을 잃어버렸답니다. 그런데 가람이가 점심시간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왔었대요. 아이들 모두 가람이를 의심하고 있어요.”

 “선생님, 저 정말로 성태 보러….”

 “시끄러워 임마”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내가 사정을 했는데. 제 편에 서서 그렇게 힘썼는데. 그만하면 돌부처도 감동했겠다. 나는 가람이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이 학교에 부임하여 우리 반 교실에 들어갔을 때 맨 처음 말을 건 학생이 가람이었다. 모두 싫어하는 급식당번을 모집했을 때도 제일 먼저 지원을 했고, 회계를 모집했을 때도 주저 없이 손을 든 아이였다. 늘 얼굴이 환해서 교실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서 사랑스런 마음이 절로 생겨나는 아이였다 . 그 날 그 사건만 없었더라도 나는 반장보다 더 가람이를 의지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학교에 가니 2학년 담임 한 분이 좀 만나자는 쪽지를 책상 위에 놓고 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즉시 달려가서 절망적인 그 얘기를 듣고야 말았다. 어제 4교시 가람이가 2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현금과 핸드폰을 훔쳐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가람이를 믿고 있었기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가람이라고 확신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미련한 놈이 옆에 있는 헌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새 핸드폰과 현금들만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그 헌 핸드폰 임자가 자기가 운동장에 있는 시간에 자기 핸드폰을 쓴 사람이 있음을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기록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가람이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들으신 교장, 교감선생님은 당연히 크게 노하셨고, 퇴학을 시키라 하시는 것을 간신히 사회봉사로 끝내었던 것이다.

 “선생님, 이번은 정말 제가 하지 않았어요. 정말 억울해요.”

 가람이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 눈물이 믿어지지 않았다. 조 선생님 학급의 도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 마음속으로 가람이가 했을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러기에 그의 모든 행동들이 의심스러웠다. 눈동자를 굴리는 것도 의심스럽고, 가끔씩 저항적인 눈빛을 하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그래. 틀림 없어. 이번의 범인도 이놈일거야. 가람이에게 가지고 있던 한 가닥의 기대도 나는 몽땅 버려버렸다.

 다음날 아침 조 선생 앞에서 형태가 꾸중을 듣고 있는 걸 보았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조선생이 미안한 얼굴로

 “엄 선생님, 이거 어쩌죠. 어제 이 놈이 글쎄 집에다 지갑을 놓고 왔대요.”

 나는 가람이 얼굴 볼 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 번 의심하기시작하면 그 의심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심 생 암귀’의 고사가 문득 생각났다. 하나의 사건만으로 아이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일은 교사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