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관음암 돌아 내려오는 토담집 울타리에서

가지 찢긴 채 시들어가는

무궁화나무 한 가지를 보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어디에도 무궁화 보이지 않고

보문산 길 따라 안개처럼

넘실거리는 벚꽃.


눈을 돌리면

산자락마다 불타는 진달래꽃

젊은이들 가슴 속으로 번져 가는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

무궁화나무 한 가지 마음 놓고 발 뻗을

손수건만한 땅 하나 없는 것일까


연분홍 꽃잎 하나 깃발처럼 가슴에 꽂고

눈물짓던 사람들 떠난 빈 자리엔 이제

네 그림자 담고 사는 사람은 없다.

알고 있을까

봄은 익어 저만큼 달려가는데

진달래, 벚꽃, 매화가지 사이에 끼어

꽃눈 하나 틔워보지 못한 무궁화의 눈물을.


보문산 끝자락

관음암 올라가는 토담집 응달에서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덜덜 떨고 있는

무궁화 한 그루를 보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

달랑 혼자 서서 시들어가는

무궁화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