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기행

시/제3시집-춤바위 2009. 6. 13. 09:21

 

동해 기행


서른한 해 만에 나는

아내를 새로 사귀었다.


긴 머리만 보아도

가슴 떨리던

봄날 풀빛 같던 사랑은 흐려지고


손잡고 긴 세월의 강을 건너는 동안

아내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아

가슴 속 모닥불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우리의 여행은

목적지가 따로 없었다.

감포 대왕암에서 처음 바다에 반해

한사코 바다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마을길 산길로만 차를 몰았다.


이름 모를 고개 마루에서 울렁거리는

바다를 보며

나는 문득 아내 얼굴의 작은 실금에서

동해의 물이랑을 보았다.


발맞추어 어깨동무로 걸어오면서

무심한 내 눈빛에 상처 받고

가라앉은

처녀 적 열정을 일으켜 세워주는

동해의 바람소리를 들었다.


바다의 젊음은

세월의 창날에도 찢기지 않는 것이냐?

포효하며 달려드는 파도의 근육마다

알알이 일어서는 원시의 힘줄



방파제가 있는 조그만 횟집에서

소주 한 잔에 타서 풍랑을 마시면

바다를 못 다 물들인 금빛 햇살이

세월을 거슬러

처녀 적 회오리바람으로 일어서서


서른한 해 만에 나는

아내를 새로 사귀었다.


2009.6.13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