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수필/서정 수필 2010. 6. 27. 17:47

 

운동화


  작은 아이 생일이라고 아내가 십사만 원짜리 운동화를 선물한다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아이들은 메이커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지금까지 삼사만 원짜리 운동화에도 아무 불평 없이 잘만 지내왔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운동화가 그렇게 비싸?”

  나의 말에 아내는 입을 삐쭉하며

  “서방님, 당신은 몰라도 너무 몰라요. 운동화 삼십만 원 넘는 것도 많다네요.”

  “왜, 작은 놈 메이커 신고 싶대?”

  “말은 안 하지만 은근히 저도 그거 한 번 신어보고 싶은가봐요. 엊그제 경기가 나이키 운동화 신고 있는데 눈이 빠져라고 쳐다보더라고요.”

  나는 그동안 아이들이 비싼 신 신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비싼 신을 신으면 체육시간에 공 한 번 차는 것도 망설여질 터이고, 신발장에 신을 놓고 또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안돼”라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일 아버님이 이런 일을 당하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열한 살 때의 그 여름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나의 어린 시절은 왜 그렇게 모두들 가난했는지. 일 년에 옷은 추석이나 설 때 겨우 한두 벌 얻어 입고, 신은 검은 고무신이나 좀 형편이 나은 집엔 우리가 지렁이 고무신이라 부르는 지렁이 색 고무신을 얻어 신었다. 나는 명절날 아침이면 언제나 서둘러 일어나는 대로 머리맡을 바라보았다. 머리맡에 새 옷 한 벌이 곱게 놓여있는 그날이면 하루 종일 신이 났고, 아무것도 없이 썰렁한 날이면 집안 사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심통을 부렸다. 그때의 고무신이라는 게 왜 또 그렇게 잘 찢어졌는지! 고무신에 조금만 상처가 나면 발이 미끄러질 때마다 쭉쭉 찢어져서 우리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했다. 만일 학교에서 신을 잃어버리거나 새로 사준 지 얼마 안 된 새신을 찢어먹으면 집에 돌아와서 무진장 혼이 났다. 그래서 잘 안 찢어지는 운동화를 신은 부잣집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날도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소를 풀 뜯기러 산으로 올라갔다. 소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서 풀이 많은 곳에 매어놓고 놀다가 소가 풀을 거의 다 뜯었을 때엔 다른 풀 많은 곳으로 옮겨 매면 되었다. 그늘에 누워 책을 보거나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나에게 끔찍한 사건은 갑자기 일어났다. 소를 옮겨 매는데 소가 무엇에 놀랐는지 느닷없이 뛰었다. 나는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줄을 잡고 뛰어가는데 갑자기 발밑에서 푸욱 소리가 났다. 줄을 놓는 지도 모르게 던져버리고 발밑을 보니 웬 등걸 하나가 신을 찢고 올라왔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나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소고 뭐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엊그제 사곡 장에서 힘들게 사다 주시면서 “오래 신어라.” 하셨는데……. 하셨는데……. 해 있을 때 집에 가면 어머님께 들킬까봐 나는 땅거미가 이만큼 내릴 때까지 소에게 풀을 뜯겼다. 얄미운 소만 터지게 배가 불렀다.

  풀이 죽어서 산을 내려오는데 저만큼서 아버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났다. 날이 어둔데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 되셨나보다. 나는 얼른 신을 벗어 등 뒤에 숨겼다. 어둠 속에서도 아들의 맨발은 잘 보이시는지,

  “신은?”

  궁금한 얼굴로 물으셨다.

  “아, 예. 저, 저, 저”

  나는 사색이 되어 그냥 얼버무렸다. 얼굴이 빨개졌을 텐데 날이 어두워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님께선 내 등 뒤를 힐끗 바라보시곤 더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사곡 장 다음날 아침에 학교에 가려는데 마루 밑에 새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있었다. 어제 아침 살 것도 없는데 뭐 하러 장에 가려느냐고 어머니께 핀잔을 들으시더니 내 운동화를 사시러 시오리 가까운 장엘 다녀오신 모양이다. 나는 운동화를 신으려다 그냥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서러운 일도 없는데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따라 나오시던 아버님도 어머님도 서서 눈시울을 적시셨다. 나는 울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내를 얻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가장은 그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잊지 않으려 했었는데 어느새 또 망각의 바다에 묻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때로는 보아도 못 본 척하고, 자식의 가슴에 늘 가장 가까이 가슴을 대고 있어야 한다는 아버님의 교훈을.

  나는 얼른 아내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여보, 더 좋은 운동화는 없어?”

2010. 6. 27

한밭수필2010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