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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보성 차밭에서
엄 기 창
차나무 가지 끝마다
혼(魂)불 환하게 밝혀드는
저 연초록 손들을 보아라.
흰 눈을 이고 견딘 겨울의
뚝심을 모아
쌉싸래한 맛 속에 숨어있는
상큼한 차향(茶香)을 일으켜 세우나니
삼나무들도 어깨동무하고
눈짓 주고받으며
제암산(帝巖山) 정기를 퍼내어 끝없이 보내주고 있다.
득량만(得粮灣) 파도야,
대양(大洋)을 치달리던 폭풍의 노래들을
엽록소에 담아주려고
밤새도록 뻘밭을 기어오르느냐.
보성 차밭머리에서
성스러운 차 한 잎을 피우기 위해
정결한 머리로 기도하는 오선(五線)의
선율에 취해
다시는 일상(日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2014. 4. 25
<문학사랑> 2015년 여름호(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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