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과 정예의 파노라마

                             ― 엄기창의 시세계

조 남 익 시인

 

 

 

󰊱 화려한 당선, 그후

  청라(淸羅) 엄기창(嚴基昌) 시인이 화려한 당선을 하게 되는 것은 공주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재학중인 22세 때였다. 시전문지 시문학이 창간 2주년의 기념사업으로 실시한 전국대학생들의 전국대학시집에서 그의 아침 序曲이 장현숙(동국대 국문과)작업 Ⅲ」과 함께 나란히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전국대학시집은 시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국대학생들의 시를 모음이란 뜻으로 사용된 듯하다. 시문학의 발표에 의하면 응모가 542편이었다. 예심에 예심을 거듭하여 최종심은 김남조 유경환 두 분에게 의뢰하게 된다.

당선작 2편이 최고상이었고, 우수작 3, 입선작 42편이 시문학(197312월호)에 모두 발표된다. 이미 오래 전 일을 이렇게 상세히 적는 것은 이에 대한 기록이 잘못 전해지고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엄기창은 공주사범대 수요문학회의 동인이었다. 조재훈 교수의 지도 아래 수요문학회에서는 유병환, 구중회, 최병두, 조동길, 심규식 등이 활동했다. 엄기창의 시문학당선은 수요문학회에 고무적인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시문학의 당선작에는 추천이 1회를 거친 것으로 간주되는 특전이 있었다. 그리고 전국대학시집행사는 1회로 끝난다.

엄기창이 제2회 추천을 완료한 것은 당선으로부터 2년이 되어가던 시문학197511월호에서였다. 추천된 시는 아침바다, 원점에서2편이었고, 추천자는 이철균 시인이었다.

엄기창의 천료 소감을 보면 시는 나의 거울이다. 내 정신의 몰골을 비춰보며, 끝없이 반성을 되풀이하는 내 양심의 꽃이다로 시작된다. 이때의 엄기창은 ROTC로 임관한 국군 장교(중위)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엄기창과 함께 나란히 천료하게 되는 분이 있었으니 김용재였다. 그는 장시라 할 수 있는 파도 앞에서를 선보였고, 추천자는 역시 이철균이었다. 그는 당시 충남고등학교 교사였다. 한 지면에 같은 지역의 두 시인이 탄생하였지만, 정작 김용재, 엄기창 두 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용재는 있는 그대로를 살고 싶지 않아서 무슨 변혁의 꿈을 꾸다가 학창에서 즐기던 시공부를 시작했습니다로 천료소감을 시작하고 있다.

엄기창의 당선작 아침 序曲을 보기로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노래를 알았다.

비스듬히을 베고 누운 들이

악보 속에서 걸어 나와

목젖을 두드렸다.

우는 새의 목 너머로

훔쳐 본

아직 어는 악보 속에서도 살지 않는

沈澱,

아침의 곧은 줄기 섬센

가지를 골라

새는 노래를 뿌린다.

번득이는 들로 構想짓는

몇 올 가락이 햇살처럼

鮮明하게

숲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다.

<公州師大 國語科>

― 「아침 序曲전문(시문학, 197312월호)

 

아침 序曲20대의 발랄한 젊음과 아침이라는 신선한 이미지가 결합된 환상적인 작품이다. 불과 16행의 이 시가 당선의 계열에 든 것은 노래 (풍류줄 현, 현악기에 매어 소리를 내는 줄. 또는 현악기의 준말) (소리) 등 실제의 아침보다는 음악과 숲속의 햇살을 소재로 한 생명 탄생의 신비를 배경으로 한 때문이다.

이 시에 대한 당시의 심사평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체로 작품수준이 均等하여 優劣의 큰 차이는 없다고 여겨졌다.반면에 아쉬웠던 점은 個性主張하고 主題들도 그다지 淸新하지는 못했었다 當選을 차지한 嚴基昌作品詩語生硬이 좀 있었으나 透徹을 인정할 수가 있어 이 점을 취했다 말하자면 詩化하려한 作品意圖가 비교적 分明하고 迫進性을 내어 풍긴다.

金南祚

시가 기품을 내뿜으면서 엄정한 위의(威儀)에 있을 때 전율할 수가 있다. 삶의 고난이나 체취가 별로 묻어있지 않아도 진정성의 감동은 큰 것이다. 이는 시신(詩神)의 음성, 곧 신운(神韻)의 경지이며, 시의 절창인 것이다. 아침 序曲은 엄기창의 재능이 한껏 승화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얀 돛단 배가

아침의 鍵盤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파도에 몸을 던지고

잊었던 리듬을 생각하는 갈매기.

쾌적한 바람이 햇살 층층을 彈奏한다

미역 숲에서 멸치 떼들이

五線의 층계를 올라간다.

갈매기 노란 부리가

번뜩이는 音樂을 줍고 있다.

 

2

밤내 뒤척이던

허전한 어둠의 꿈 밭

소라 껍질이 휘파람 불며

모래알 손뼉을 쳐 뿌리고 있다.

얼비친 하늘의 푸른 물살을 타는

갈매기 눈알에

잊은 리듬이 내려앉는다.

하늘 속의 빛 이랑이 내려와 앉는다.

― 「아침 바다전문(시문학197511월호)

 

아침 바다원점에서와 함께 시문학의 추천을 끝내게 되는 작품이다. 앞에서 본 아침 序曲에 못지않은 시의 신선도와 리듬 감각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시적 응시가 깊은 안정감을 준다고 하겠다.

이 시에 대한 추천사는 엄기창 씨에게서는 영원과 순간의 좌점(座點), 그리고 출발과 도착의 동시성을 보았다. 이것으로 2회 추천이 완료되어 시단에 내보내면서 앞날을 축복한다(李轍均)”는 비교적 짧은 표현을 보인다.

 

󰊲 뜻을 얻어 부활하는 시편들

  엄기창 시인은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서울의 천둥󰡕(시문학사, 1993), 󰡔가슴에 묻은 이름󰡕(오늘의문학사, 2004)이 그것인데 오늘의 물량화시대에 비교적 과작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시집 󰡔춤바위󰡕3시집에 해당한다.

훌륭한 능력도 기회가 없으면 빛이 없다고 하지만, 엄기창 시인의 경우는 화려한 당선 그 후, 인문고교의 교직생활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초기의 단형에 이끌리어 시의 호소력을 등한시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제3시집에 이르러 엄기창 시인의 시혼은 시의 뜻을 새롭게 얻어 부활하는 경지를 선보인다. 초기의 재능이 대기만성의 기틀을 보임이리라. 이제 그는 고독을 깨우치는 연치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그 고독에서부터 지혜와 관조의 초자아로 확대된 눈을 뜬다. 시가 인간의 묵시록(黙示錄)이라면, 그의 언어에 대한 입증 능력은 서정시의 진경에 기적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그 구체적인 실례를 보기로 한다.

 

절 마당은

무량(無量)의 바다로 이어지고

무어라고 지껄이는 갈매기 소리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바다를 지우며 달려온 눈보라가

기와지붕을 지우고

탑을 지우고

목탁(木鐸) 소리마저 지운다.

 

지워져서 더욱 빛나는

관음상 입가의 미소처럼

 

나도 눈보라에 녹아서

돌로 나무로 바람으로 지워지면

갈매기 소리 알아 듣는 귀가 열릴까.

 

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

― 「향일암(向日庵)에서전문

 

향일암에서는 한편의 서정시로서의 직관과 품격을 갖춘 명징성(明澄性)이 매력이다. 엄기창 시인이 드디어 뜻을 얻어 부활하는 시편인 것이다. 그의 기세는 바야흐로 풍부한 서정과 사고력이 숙성되어 감을 느끼게 한다.

시인의 사명이 고도의 미적 쾌락을 일깨우는 것이라면, 고차원의 감정, 곧 정신의 성숙인 것이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해방감과 지성의 빛을 은은하게 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대중적 취향보다는 고급 독자들의 미학적 가치가 뒷받침될 때, 최고의 성취를 보게 한다.

그러나, 현대의 서정시, 시의 가치관은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다. 우리가 읽는 시에서 서정시는 압도적인 비율로 많은 편이고, 독자 또한 적은 편이 아니다. 문학의 독자는 국민적 지층에 민도로서 깊이 대중화되어 있다.

서정시의 오래고 낡은 운명,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전통, 한시조차 그 운문율이나 정서까지 여전히 답습되기만 한다는 것은 무언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반성과 비판이 있다. 세상이 변해도 서정시는 변하지 않는다는 자책인 것이다.

그렇다고 난해한 기교와 난삽한 수사를 앞세운 시들, 해독의 틈이 전혀 없는 시들, 일부에서는 아직도 서정시를 쓰느냐?”는 질문이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경향에서는 여전히 자연은 서정의 원형질이고, 영원한 시의 오브제라고 주장한다.

불온한 시로 말해지는 시의 혁신은 시인의 취향에 따라 언어와 수사에서, 그리고 시정신의 확산과 깊이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제 시는 낡은 것조차 청순한 새로운 방식으로 혁파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있다. 시가 언어의 조직이고, 그 언어는 시대의 언어라야 한다는 대전제인 것이다.

엄기창 시인의 시는 시정신의 개척과 그 입증능력의 고양이다. 그의 시정신은 보다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전통을 이어간다.

최근 그는 불교적인 상념에서 수준있는 부활을 보인다. 향일암에서」 「마곡사에서」 「부처님의 미소」 「산사」 「가을 산」 「동학사 가는 길등은 모두 이런 취향의 소산이다. 깨달음을 중요하게 작품화하고, 보이는 것과 말하려는 것의 시 본질에 대한 투철한 소명이 있다. 현대적 서정의 맥박을 느끼게 한다.

향일암에서향일암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전남 여수시 돌산도의 금오산에 있는 절벽 암자이다. 우리 나라 4대 관음 기도처의 하나이며, 도 지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금오산은 거북이 모양이고, 향일암은 경전을 등에 모신 금거북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지우고 또 지운다는 향일암에서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종연)는 표현에 이른다. 세상의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해 가는 대자연이 뜻밖의 경이로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겉모습만 좇는 것은 바탕을 잃을 수도 있지만, 비어있는 근원으로 돌아가면 뜻을 찾아낸다는 청순한 불심의 울림이다.

다음 시는 현상적인 현실이면서도 그 깊이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있다.

 

불타는 단풍 산으로

노스님이 들어섰다.

 

산 빛 깨어지지 않고,

회색 승의가

단풍에 녹아든다.

작은 등짐에 담겨온

속세의 눈물들을

산문 앞에 부려 두고,

 

조금씩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비우고 비워 산바람이 된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가에

울던 새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저녁 어스름으로

지워지는 산들이

스님의 등 쪽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 「가을 산전문

 

고요와 비움의 경지는 청렴하고 결백한 염결(廉潔)의 고향일 것이다. 시에서는 일찍부터 사특함이 없는 정신’(思無邪)의 가치를 추앙하였고, 불교에서는 참선, 안거 등을 비롯하여 그 종교적 정진과 수행에 밀접한 바가 있을 것이다.

가을 산의 배경은 노스님과 단풍, 새울음과 저녁 어스름 등 소박하고 군소리가 거의 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시의 담백과 미적 취향은 적은 것이 아니다. 담담한 풍경을 하나씩 짚어주는 간결성에는 의외로 시적 경이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본래 시는 독창성이라기보다는 미묘한 충일감에 의하여 경이감을 준다. 그것이 퍼스나(persona)의 지고한 사상의 전달로 감동을 주고, 거의 기억처럼 느끼게 한다.

일찍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서사시인이나 서정시인의 뛰어난 작품은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고 신이 들어서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문학의 천재론의 근거가 여기 있었다.

작은 등짐에 담겨온/ 속세의 눈물들을/ 산문 앞에 부려두고// 조금씩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비우고 비워 산바람이 된다, 여기의 산바람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시의 직관에서만 가능한 신비로운 초월인 것이다.

서정주는 눈썹으로 절 짓기가 그의 어법이었고 구경적 생의 형식은 김동리의 문법이라고 한 것이 있다. 서정주가 직관적이었다면, 김동리는 논리적이었다. 시와 소설의 차이였다.

시의 직관은 잠깐 사이에 고금을 살피고, 눈 깜빡할 틈에 사해를 누른다. 천리를 틀안에 넣고, 만물을 붓끝으로 꺾는다고 했듯이 종횡무진의 상상력인 것이다.

비우고 비워 산바람이 된다는 것은 이 시의 절구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흔히 문학은 제3의 눈이 있을 것을 강조한다. 자기 속에 있는 영원한 시력, 변함없는 파수꾼, 결코 자는 일 없는 목격자의 눈이 그것이다.

엄기창이 가을 산에서 보이는 것은 속세를 떠난 정신의 적멸(寂滅)이다. 언어에 의한 입증능력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한 창작의 매력이 있다. 시가 거룩한 것이라면, 바로 이런 경지 때문일 것이다.

시는 지식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주변이었다. 모든 학문을 포괄하며, 또한 모든 학문이 이에 근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 명징한 이미지, 알레고리 시학

  어쩌니 해도 수사술은 문학의 본질이다. 특히 시는 말이나 글을 아름답고 정연하게 꾸미고 다듬는 기교적 재능이 큰 영향을 끼친다. 수사술은 자신의 이야기를 신용있게 드러내는 언어능력인데, 정서에 대한 환기, 표현에 대한 입증능력을 뜻한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훌륭한 작품은 사상성과 예술성이 서로 등가(等價)와 조화에 있다고 한 것은 T.S엘리어트였다. 여기의 예술성이란 바로 수사술을 지칭한 것이다. 수사의 세련성, 거시적 가치의 심미성, 독자적인 문채(文彩) 등은 대가들의 명작에서 접할 수 있다.

엄기창 시인의 언어는 비교적 명징하고 간결하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단형으로 빛을 내었고, 2시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30년 세월을 주로 단형에 몰두한 감이 있다.

현대시에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이미니즘, 이미저리(여러 이미지들의 집합적 명칭) 등은 낯익고 흔한 용어들이다. 그런가 하면 가장 애매성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저리만 해도 그 적용 범위는 시의 독자들에게 경험된다는 심상’(이미지)으로부터 시의 요소에 이르는 총체적인 데까지 달한다. 이미저리는 비유언어, 곧 은유와 상징을 가장 광채있는 부분으로 보며, 모순과 충돌하는 언어를 수용함으로써 탄력적인 현대시의 규범에 이른다.

엄기창의 단형에서 가시를 보자. 그 이미지가 선명한 사례가 될 것이다. 볼멘소리 아내의 노여움과 탱자나무의 가시가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숨기다가 숨기다가/ 무심코 튀어나온/ 아내의 볼멘소리처럼// 수줍게 고갤 내민 탱자나무 새순에/ 가시/ 하나의 불과 42자의 단형이다.

이미지란 말로 만들어지는 그림이다. 한편의 시가 하나의 이미지일 수 있는데, 그것은 시를 구체화할 때 가능한 것이다. 가시는 구체화된 한 편의 이미지이며, 매우 예리한 바가 있다.

 

물총새의 눈동자가

돌의 적막(寂寞)을 깔고 앉아서

부리 끝에 한 점 핏빛 노을

노을 속에서 물고기의 비늘들이

더욱 빛나고 있다.

 

저마다의 의미로 피어난 꽃들,

숨을 죽이고

온 몸 털 세워 바라보는 저

바위의 응시(凝視).

물총새의 부리 끝에

반짝

물비늘이 일렁인다.

 

퍼덕이는 물고기의 몸부림 속으로

내려앉는 어둠,

그 어둠마저도 아름다운 황혼 무렵에…….

― 「황혼 무렵전문

 

황혼에 물총새가 총알처럼 날쌔게 물속의 먹이를 낚아채는, 물고기의 사냥을 소제로 한 시다. 그런데 단순히 사실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해설적의미장치를 배치한다. 그것은 곧 풍경적 묘사가 아니고, 시인의 의도적 철학과의 연쇄고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리 끝에 한 점 핏빛 노을”(1), “저마다의 의미로 피어난 꽃들”(2), “퍼덕이는 물고기의 몸부림 속으로/ 내려앉는 어둠”(4) 등이 그것인데, 단말마적인 상황이 중후한 시의 의미로 채색된다. 변화된 시의 기법으로 진보적인 수사술일 수도 있다.

물총새의 냉정한 살기를 돌의 적막’ ‘바위의 응시라고 한 것도 그만의 비유라고 하겠다.

30년대만 해도 시는 풍경 등 외면적인 감각에 더 많이 열중했다. 관념이나 심리적 사상까지도 시의 회화성으로 바꾼 것이 김광균(1914~1993)이었는데, 결국 그의 시에는 사상이 스며들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예술적 표현이란 마음 깊은 곳에 접하는 일이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상성은 도저히 경시할 수 없는 문제로 대두된다. 황혼 무렵은 약육강식의 구도이지만, 냉정한 대자연의 근원인식에서 포용된 이미지를 거느리고 있다.

알레고리(allegory)의 서양 원어의 뜻은 다른 것을 말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화(寓話) 우의(寓意) 등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라 할 수 있고, 교훈적 풍자적인 내용을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사물에 빗대어 넌지시 비추어 쓰는 수사법인 것이다.

우의소설(寓意小說)에서는 빗대어 쓴 것이 이야기가 되겠지마는 시에서는 원관념을 숨기고 보조관념만 드러나게 된다. 내용의 음영이 비유나 설명이 겉으로 드러난 이상의 숨은 내용이 암시되는 것이다. 가령 대부분의 속담은 이런 전형에 속하는데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등이 그러하다.

알레고리는 우화법 풍유법 우유법 등의 번역을 볼 수 있다.

엄기창 시인의 첫시집의 서울의 천둥이나 등은 원관념은 드러나지 않고 보조관념으로만 된 알레고리를 본다. 서울의 천둥은 너무도 복잡한 서울에 대한 위기의식의 풍자가 천둥이고, 이의 원관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은 사랑의 원관념이 보조관념만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제3시집에서도 파계(破戒)」 「똥을 묻으며」 「맹인(盲人)의 그림 보기」 「바다등은 작품의 의도가 따로 있는 작품들이다. 알레고리의 시학은 지혜의 소산이며 의도된 방략(方略)’의 작품이기 때문에 주제가 너무 선명할수록 작품성은 떨어지게 된다. 예술성을 중시할수록 세련된 표현을 취한다. 사실 주제가 정신적 도덕적 역사적 또는 정치적으로 너무 표면화될 수는 없다.

엄기창의 단형인 바다를 보기로 한다.

바다가 어디/ 깊은 산골 맑은 물만 받아/ 저리 맑은가/ 끊임없이 黃河를 가슴에 품고서도/ 씻고 또 씻어// 바다는 금방 하늘을 닮는다는 것이 전문이다.

광대한 바다의 맑은 물이란 실은 황하가 그의 누런 물을 씻고 또 씻어 맑게 되었고 하늘을 닮은 것이라는 이야기로 교훈적인 내용이다. 사회의 악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이 오히려 나의 인격적 성장에 좋은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이 시는 가르친다.

이솝우화는 가장 널리 읽히는 대중적 알레고리로 되어 있다. ‘동물 우화는 특히 그 교훈이 직설적이다. 가령 포도 우화에서 여우가 포도는 시어서 먹을 수가 없다고 핑계대는 것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엄기창의 맹인(盲人)의 그림 보기에는 맹인 지팡이 짚고 미술 전시회 가네”(2)로 이 시가 진행한다. 그러나 하나를 보면/ 하나밖에 모르는 놈들/ 맹인은 산수도에서. 우주를 보네// 앞을 못 보아서/ 더 큰 세상을 보네”(4.5)로 끝난다.

대부분 사람들은 두 눈을 가지고서도 하나밖에 못 보는 놈들이지만, 맹인은 오히려 더 큰 세상을 보네이다. 사물의 본질을 보는 맹인의 심안(心眼)을 예찬하면서 세상을 질책한다. 아이러니가 섞인 날카로운 알레고리이다.

엄기창 시인은 정연한 시작법에 골몰한다. 이 난해시가 판치는 시대에 적은 듯 뜻을 얻고 표현의 정도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 겸허한 선생님이자 시인의 자아가치

  시인에게는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적으나마 속내 깊은 자존심 같은 것이 숨어 있다. 시인은 일찍부터 시인은 세계의 마음이다또는 시는 인정받지 못한 세계의 입법자이다.” 등을 읽으며 시를 쓴다.

시인들은 귀기(鬼氣)가 서려있는 보들레르의 새로운 전율적 창조27세로 요절한 중국 중당기의 이하(李賀)의 시편들도 조금씩은 공부한 터이다. 국내의 고전적인 시인이나 작품은 거의가 학교 교육에 들여온다.

시는 항상 속세와의 일정거리를 둔다. 속세란 우리의 삶이 사는 늪이지만, 지고한 문학의 관조를 위해서는 그 흙탕물을 다 뒤집어 쓸 수는 없다. 설령 죽음과의 슬픔이 있어도 작품에서는 고급스럽게 녹여 놓는다.

장자의 말처럼 신발이 맞으면 신발의 존재를 잃는다는 것은 정신적 달관과 조화가 얼마나 기초적인가를 알게 한다. 예술이란 필연적으로 소아의 세계가 아니라 대아적인 소명의식이라야 공감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엄기창 시인은 전형적인 그것도 공주가 낳은 시인이다. 온후한 그의 모습을 보면 진선지인(眞善之人)이란 바로 저런 사람이겠지 한다. 근본이 착한 사람, 그늘이 없어 보이는 얼굴인 것이다.

조재훈 교수는 첫시집의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엄기창 시인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시집의 원고를 통독하다 보니 그는 아직도 유년의 고향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변하지 않는 그의 느릿한 말씨와 부처님의 미소인 듯 따사로운 그의 소리 없는 웃음이 그의 사람됨과 문학의 성향을 모두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겸허한 순결성이라고나 할까? 노자가 일찍이 갈파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처럼 낮은 데서 표없이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엄기창이란 선생님이자 시인이다.

조재훈 절제와 스밈의 시학

엄기창의 이런 바탕은 첫시집에서 연번호가 없는 고향연작시 5, 금강2편이 나온다. 2시집에서는 부제 思母十題에 의한 모친의 장례에 이르기까지의 10, 그리고 시의 제목에 공주, 대전, 공산성, 대청소, 계족산, 현충원, 계룡산 등의 지역 지명들이 여과없이 등장한다.

시가 공감성이 적은 소아적인 소재나, 사사로운 편견에 갇힌다는 것은, 시의 소주제에 스스로 갇힌다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는 엄기창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의 시가 최소한의 공공성, 대아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지 않고 편견의 사사로운 유희로 쓰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미당 서정주는 삼국유사를 탐독하면서 시의 구상을 다듬는다는 것을 밝힌 적이 있다. 시집 󰡔신라초󰡕 󰡔동천󰡕을 비롯하여 그의 명시들이 이런 노력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엄기창 시인의 경우는 그의 겸허한 순결성의 자아가치에서 햇빛 같은 시의 구원을 본다. ‘자아가치는 천지만물에 대한 인식이나 행동주체인 자아가 성스러운 만족·보상·탕감 등의 태생적 경지를 소요하고 있음이다. 그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진선지인이었고, 공리적인 세상에서 높은 초월의 인성적 감동으로 시의 질을 잡는다.

 

아파트 안 도로를 차로 달리다가

다리 다친 비둘기 가족을 만나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선다.

 

경적을 울리면

아기 비둘기 놀랄까봐…….

 

산을 오르다가

허리 구부러져 누운 들국화를 보면

발을 멈추고 튼튼한 이웃에 기대어 준다.

 

가벼운 바람에도

몇 번이나 뒤돌아본다.

잠시만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내 따스한 마음 머물 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조그마한 나의 온기가

다리가 되고, 날개가 되고

숨결이 되어줄 사람 얼마나 많은가.

 

단풍잎 붉은 기운이

핏줄을 타고 들어온다.

바람은 차도 가을은 따뜻하다.

― 「따뜻한 가을전문

 

따뜻한 가을은 역시 뜻을 얻고 있는 작품으로 따뜻한 시인의 마음이 곧 깨끗한 시가 되었다. 비둘기들이 놀랄까봐 차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든가, 등산길에서 구부러진 들국화를 세워준다든가 등은 쉬운 일 같으면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그마한 나의 온기가/ 다리가 되고, 날개가 되고/ 숨결이 되어 줄 사람 얼마나 많은가”(6) 하고 시인은 나의 온기에 대해서 깊은 뜻을 헤아린다. 이런 마음씨를 자비심이라 할 수 있고, 불성이라고들 할 수 있겠지만, 시인은 일상의 생활감정에서 찾아낸다.

시의 표현이 순수하고 내용이 성숙된 것을 본다. 바로 완숙의 세계인 것이다. 예술을 신성시한다든가, 마술적 열광을 높이 사기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복잡할수록 존경스럽고 성화(聖化)와 같은 감화의 순치 또한 얼마나 값진 일이겠는가.

본래부터 시는 진선미(眞善美)였다. 인간이 이상으로 삼는 참다움·착함·아름다움인 것이다. 셸리는 그의 시의 옹호에서 시는 지복지고(至福至高)의 마음의 지고지복(至高至福)의 순간의 기록이다라고 한다. “지극히 높고 지극히 행복한 기쁨의 경지에서 시는 탄생할 것이라고 했다. 정신적인 극치의 환희인 것이다.

아름다움에는 세상을 구원한다는 믿음이 있음이다.

시 한 편을 더 보기로 한다.

 

아파트 유리창을 닦는다.

골짜기마다 감추고 있는 보문산의 비밀이

가까이 다가온다.

 

산밑 낮으막한 등성이에서

불꽃을 피워 올려

산벚꽃 연분홍으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

온 산을 덮는 봄날의 환희와

 

비온 날 아침 떡시루를 찌듯

뭉게뭉게 일어나는 골안개로 온 몸을 가렸다가

한 줄기 햇살로 맨살 드러내어

진초록 함성 하늘 향해 이글거리는 여름날의 열정,

 

늦여름 초록의 밑둥에서 조금씩 배어나와

색색으로 물들였던 산의 간절한 이야기 떨어지고

나무 가지마다 침묵으로 앙상한

저 가을날의 고독

 

시루봉 이마 하얀 눈으로 덮이고

골짜기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옅어졌다가

어느새 수묵의 함초롬한 자세로 식어있는

겨울날의 허무

 

유리창을 닦는다.

집안 가득 보문산을 들여놓는다.

― 「유리창을 닦으며전문

 

유리창을 닦으며는 같은 계열의 엉겅퀴꽃의 노래와 함께 활성적인 시인의 인식과 정서가 녹아든 원숙함을 보인다. 기교적으로도 함축적이다.

6연의 이 시는 처음과 끝에서 수미상관의 묘미를 응용한다. “아파트 유리창을 닦는다/ 골짜기마다 감추고 있는 보문산의 비밀이/ 가까이 다가온다”(첫연), “유리창을 닦는다/ 집안 가득 보문산을 들여놓는다”(종연)가 그것인데, 전체적 균형을 잡/아준다. 대전의 명산인 보문산의 비밀’ ‘집안 가득 보문산을 들여놓는다의 발상법이 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엄기창 시인은 역시 자질과 열정을 갖춘 시인이었다. 화려한 당선 그 후, 그는 이상하게도 영광의 상처처럼 너무 오래 침체되어 있었다. 그러나 초기의 단형에 얽매였던 시의 틀을 과감히 깨고, 대기만성의 원숙과 정예의 파노라마를 일으키며 기적적인 부활을 보인다.

그는 시의 뜻을 얻었을 뿐 아니라 깨끗한 서정과 함께 시를 응용하는 시력도 함께 회복한다. 그는 시의 광야에서 선지자의 넋을 마음껏 외칠 수도 있으리라.

다른 사람을 넘기도 어렵지만, 자신을 넘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엄기창 시인은 무한한 시의 세계를 끝없이 동경하며 그에 도달하려는 치열한 내공이 있었기에 부활될 수가 있었다. 더구나 그의 시는 평이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메아리가 있다. 현대시의 리듬과 표현기교, 그리고 전반적인 예술성의 수준을 유지한다.

릴케는 일생의 10편의 좋은 시를 쓰기 어렵다.”고 했다. 겸허하고 순결한 엄기창 시인의 영혼과 열정을 축복하면서 그의 앞길을 조용히 지켜보고 싶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