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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유감遺憾
나는 버스를 탔을 때 자리가 없으면 젊은이들과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없었던 젊은이도 자리를 양보하게 되고, 또 자리를 양보할 처지가 못 되어 앉아있는 젊은이의 마음은 한없이 불편하고 불안해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냥 손잡이를 잡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전면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하고 접혀지는 도로를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혹시 비틀거려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안정감 있게 서 있으려고 노력한다.
어느새 나도 자리를 양보할 나이에서 양보 받을 나이가 되었는가. 한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나지도 않았는데 세월은 저만큼 가버리고 말았다. 내 나이도 가을이 되어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긴장시키는 내 나이에 대해 나는 유감이 많다.
며칠 전 시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탔다. 가장교를 건너는데 버스가 휘청 하여 내 자세가 좀 흔들렸나보다. 앞에 앉았던 50대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 비슷한 사람도 없었다.
“저 말인가요?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 나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바로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휴대폰을 가지고 놀던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뒤로 가버렸다. 앉으라는 말도 없었다. 제 딴엔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역전에서 내릴 때까지 뒤편에 서있는 그 학생을 보며 마음이 짠하고 불편했다. 염색은 세월을 속이는 것 같아 정말 싫지만 빨리 머리를 까맣게 물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언젠가 이 버스를 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도 80대 할아버지는 서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휴대폰만 가지고 놀았다. 할아버지가 힘겹게 서서 흔들거리는데도 그 학생은 본 척도 않고 놀이에만 열중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학생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후닥닥 일어나서 뒤로 도망을 갔다. 그 할아버지는 제 자리인양 얼른 앉아버렸다. 나는 속으로 ‘뭐 저런 주책맞은 영감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다. 젊은이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긴 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내 손자가 버스 안에서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있지만, 그러나 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만 편해지기 위해 학업에 지친 어린 학생들에게 억지로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그런 어른은 없어야겠다.
2016.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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