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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자유성에 깃든 절제와 균형의 시조미학
-엄기창 시조세계
권갑하(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1
시조(時調)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시조를 쓴다고 하면 아직도 창(唱)을 한번 해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시조창이 이렇게 일반에 강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18세기 전후 국민적 인기를 누린 데 따른 결과이지만, 노래와 분리된 현대시로서 시조를 창작하는 시인들로서는 곤혹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시조에 대한 인식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서구 문화에 매몰된 20세기 근대화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한시만을‘시’라고 불렀던 조선시대 사대적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또다시 서구에서 들여온 자유시만을 ‘시’라고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오늘을 살고 있다.
언제부턴가 시조를 창작하지 못하면서 어찌 이 땅의 시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자유시만을 창작해오던 시단의 중견 시인들이 시조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를 경험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한 결과이기도 한데, 어찌됐든 우리 스스로 폄하하고 외면했던 시조를 다시 읽고 쓰는 현실은 고무적이다.
시조와 관련해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문제는 자유시단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흐름이다. 폭력적 이념이 문단을 지배하던 1970~80년대를 지나 1990년대 들면서 신서정이 유행했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시 경향이 젊은 세대 중심의 ‘미래파’ 시였다.
이들은 기존 시인들과 다른 감수성과 시학으로 중언부언과 리듬의 소멸 등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난해한 시를 창작했는데, 이에 반발해 등장한 것이 ‘극서정시’운동이다. 근본적으로는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불안감 속에서 나온 현상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논쟁의 핵심은 ‘산문적 장시’를 추구하는 젊은 시인 중심의 미래파와 ‘응축의 짧은 시’를 지향하는 중견 원로 중심의 극서정시 계열의 대립이었다. ‘극서정’과 ‘탈서정’의 이러한 대립은 어떤 ‘이즘’의 충돌이라기보다 디지털과 모바일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 환경에 적응하려는 시단의 몸부림으로 읽혀진다.
논의가 여기에 이르면, 극서정시는 결국 45자 내외의 짧은 시양식인 시조와 만나게 된다. 짧으면서도 좋은 시 창작은 나름의 서정과 운율, 시적 긴장 구조를 내재해야만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짧은 시의 지향은 결국 최적화된 시의 그릇으로 빚어진 시조의 특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관점에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상에서 5~6행 정도 읽으면 페이지를 넘기는, 짧은 시가 선호되는 시대의 도래는 그런 점에서 시조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로 인식된다. 앞으로의 예술은 갈수록 양식의 복합화, 종합화 경향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조는 자유시보다 용이하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시 형식적 인자를 지녔기 때문이다.
환경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엔 솔깃해하면서 우리의 정형시인 ‘시조’는 외면하는 문화적 자긍심이 결여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청라淸羅 엄기창嚴基昌 시인은 시조와 자유시를 함께 창작하는 시력 40여년의 대표적인 이 땅의 중견 시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시조집 『봄날에 기다리다』를 상재한다. 시조와 자유시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시혼을 불태워 오고 있는 엄 시인의 남다른 창작열에 후배 시인으로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엄 시인은 특히 자유시에서도 짧은 시를 지향하는 시인이란 점에서 그의 시세계는 주목된다. 굳이 시조라는 시 형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시는 기본적으로 절제와 함축, 균형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바다가 어디
깊은 산골 맑은 물만 받아
저리 맑은가
끊임없이 황하黃河를 가슴에 품고서도
씻고 또 씻어
바다는 금방 하늘을 닮는다
- 「바다」 전문
제 3시집에 발표된 「바다」는 짧지만 깊은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다. 끝임 없이 탁한 황하를 가슴에 품지만 바다는 금방 푸른 하늘을 닮는다는 진술은 속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던진다. 여기에‘씻고 또 씻어’라는 자기 정화와 극복의 자세는 고결한 선비의 품격을 표출한다. 군소리를 최대한 줄인, 뼈를 깎는 절제와 함축 속에서 폭발력 강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짧은 시 창작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짧은 시를 쓸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인들이 길게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짧은 시 창작에는 남다른 관조와 직관, 절차탁마의 장인 정신이 요구된다. 엄 시인이 40여 년의 긴 시력에도 불과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는 과작의 여정을 보이고 있는 것도 어쩌면 시인의 이러한 시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그동안 간결하면서도 명징한 이미지의 서정적 작품들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첫 시집 서울의 천둥(시문학사, 1993)에서 향토적 서정에 바탕을 둔 결 고운 서정을 직조해냈다면 두 번째 시집 가슴에 묻은 이름(오늘의문학사, 2004)에서는 선자(先慈)에 대한 곡진한 사랑을 승화된 언어로 노래했다. 세 번째 시집 춤바위(2014, 오늘의 문학사)에 이르러서는 한 단계 부활하는 시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절제와 스밈의 시학」(조재훈), 「눈부신 서정과 맑은 향기」(리헌석), 「원숙과 정예의 파노라마」(조남익) 등으로 조명된 시인의 시세계를 통해서도 엄 시인의 빛나는 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재훈은 언어의 경제 원리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시인으로 절제와 응축의 미학이 돋보이며, 견고한 시적 구조에도 자연 친화와 미세한 것에 대한 애정, 삶의 내면 투시 등 남다른 스밈의 친화력을 지녔다고 엄 시인의 시세계를 극찬했다.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에 대한 평설은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시조의 경우 내용 측면만 다룰 경우 정형시로서의 형식 미학을 간과할 수 있다. 과잉과 일탈의 자유시가 범람할수록 정형의 시조가 지닌 미적 의의와 가치는 주목받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정형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매력 강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 백일장 등에서 시조 작품을 심사하다 보면, 시조 형식에서 벗어난 작품을 상당수 만날 수 있다. 이는 시조 형식에 대한 교육과 해설이 제대로 뒷받침 되지 못한 탓이 크다 할 것이다.
현대시조의 형식적 조건은 3장 6구 45자 내외로, 각 장은 4음보로 구성되며, 종장의 첫 구는 3·5음절로 엄격히 제한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조건만으로 좋은 시조의 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좋은 시조가 되기 위해서는 묘사와 진술이 조화로운 원리 속에서 특히 종장에서 반전이나 승화, 비약 등의 의미적 전환이 크게 일어나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경우 외형은 시조지만 시조로서의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다음 작품을 통해 엄기창 시조의 형식 미학과 표현 감각을 살펴보기로 한다.
솔 사이로 새는 별을
소주잔에 동동 띄우고
보름달 곱게 깎아
떡갈잎에 한 조각 싸서
임 한 잔 마실 때마다
입에 넣어 주는 밤
산은 바람을 불러
가락을 연주하고
물은 하늘을 담아
별 세상을 꾸며주네.
임과만 둘 있는 세상
시간마저 멈춘 계곡
- 「청하계곡에서」 전문
2수로 짜인 이 작품은 초·중장의 시상 전개와 종장의 응축적 전환이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중장이 경(景)의 세계인 감각적 구체에 가깝다면 종장은 의미를 부여하는 정(情)의 세계로 집약되고 있다. 초·중장이 열림의 세계라면 종장은 포괄적인 닫힘의 미의식을 창출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감각적 표현이 돋보이는데, 특히 동적인 이미지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어느 한 부분도 율격에 걸림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는 동과 정, 감각과 관념, 펼침과 전환이 응축과 절제로 형상화되고 있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엄기창의 시조는 이렇게 응축과 절제의 전통미학과 현대적 리얼리티를 동시에 구현하는 현대시조의 보편적 창작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흔히 지적되는 고답성에서도 훌쩍 벗어나고 있다. 소위‘편안한 시조’를 지향하면서도 시조의 정체성과 리듬감을 잃지 않는 미덕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정형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대 자유성을 수용한 장의 구분이나 장 내의 분절도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3
엄기창 시조집 『봄날에 기다리다』는 대부분의 작품이 단수 또는 2수로 구성된 데서 짧은 시를 지향하는 시인의 시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시세계는 타고난 선비적 품성에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삶의 방식과도 닮아 있어 신뢰를 더한다. 「여백」은 시인의 이러한 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벽을 비워 놓았더니
산이 들어와 앉아 있다
꽃향기
골물 소리
집안 가득 피어난다
채우고 채워진 세상
하나 비워 얻은 평화
-「여백」전문
시인은 비움의 미학을 지향한다. 벽을 비우니 산이 들어오고 그 속에서 꽃향기와 골물소리를 누리는 세계는 자연동화의 한 경지다. 이러한 정신은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고 노래한 면앙정 송순의 자연 순응과 안분지족의 삶을 닮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정신의 사상적 토대는 무엇일까. 바로 불교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천년고찰 마곡사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 “아침에는 독경소리 저녁에는 풍경소리/ 법당 문에 귀 기울려 묵언참선”(「보리수」 일부)하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적 시심을 일궈왔다. 과잉과 과장이 난무하는 현대시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우고 내려놓고 은둔하는 불교적 사유는 성찰과 함께 치유의 손길을 거느린다.
골 깊어 한낮부터
부엉이는 울어서
부엉이 울음 따라
송홧가루 날려서
담 없는 절 마당으로
산이 그냥 내려와서
여승은 염불하다
끝내는 걸 잊었는지
부처님은 웃다가
성내는 걸 잊었는지
저녁놀 익은 조각이
꽃비처럼 날린다.
-「은적암」전문
「은적암」은‘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불교적 사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사유를 더욱 깊게 이끄는 것은 첫수의 ‘~서’와 둘째 수의 ‘~지’로 끝나는 각운 처리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첫수의 경우 각장의 각운이 서로 인과관계를 가지면서 불교의 물아일체의 사유를 더욱 심화시키는 매우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라밀경 한 소절이/ 구절초로 눈을 틔워// 목탁 소리 한 울림에/ 한 송이씩 꽃을 피”(「영평사」 일부)우는 정경이나 “모란꽃/ 모든 귀들은/ 법당 쪽으로만 기울”고, “불경소릴 들으려고/ 깃 세워 퍼덕이는 장면” 등도 모두 부처님의 섭리가 작동되는 불성 이입의 세계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또 다른 세계를 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육친에 대한 곡진한 사랑을 담은 시편들이다. 육친에 대한 정과 그리움은 특히 이승을 떠난 누이와 부모님을 그리는 부분에서 절절하게 표출되고 있다.
작은누님, 오셔요.
버들피리 불게요.
회재 높아 못 온다 해서
낮게 깎아 놓았어요.
산굽이
돌아 돌아서
아지랑이만 날리네요.
산그늘이
내려와서
장막처럼 드리우고
남가섭암 불빛이
별빛으로 일어서요.
밀양 땅 산자락에 누운
누님 기다리는 봄 하루.
-「봄날에 기다리다」 전문
이번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이 작품은 세상을 떠나 밀양 땅에 묻힌 누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간절히 노래하고 있다. “어머님도/ 아버님도/ 다 가시고 없는 집에// 누님이/ 좋아하던/ 앵두 혼자 익어간다.// 짙붉은 앵두 빛깔에/ 넘쳐나는 서러움.“(「누님 부음 오던 날」 전문)은 이제 그리움을 넘어 현실적 기다림으로 승화된다. 이승을 떠난 누님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는 「선물」시편에서 더욱 절절하다. “고향 산 솔바람을 박씨처럼 물고 가서/ 작은 누님 무덤가에 총총히 심어놓네요./ 첫 제사 선물 삼아서 솔향기도 담아가고.// 여기 솔바람은 열무김치 맛이다, 야/ 부모님 유택 뒤로 산 뻐꾸기 울던 시절/ 누님의 그 말소리가 저녁달로 뜨네요.”(「선물」 전문) 이들 시편은 특히 구어체의 적절한 기법 구사로 마치 살아 있는 누님과 속삭이는 듯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제 2시집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시편들이 이번 시집에서는 격정을 가라앉힌 승화된 음역으로 나타나 울림의 깊이를 더한다. 특히 아버님 제삿날 “눈보라 칼바람에 온몸 꽁꽁 어셔서/ 우성 지난 길가에 주저앉아 떨면서도/ 내 옷깃 여며주시던 모닥불빛 그 손길”(「눈길」 일부)을 추억하며 아버님의 부재를 실감하는 장면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도 다르지 않는데, “한 대접 정화수에 밤하늘 별을 담아/ 새벽녘 꿈을 헹궈 자식들 복 비는 마음/ 살포시 지은 미소에 성스러운 그 눈빛”(「정화수」 일부)으로 차원 높게 승화되고 있다.
이러한 그리움의 정서는 자연스럽게 가정의 행복과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갈무리된다.
문 열면 안겨오는
아내의 웃음꽃다발
곤두섰던 털 재우고
바람 묻은 외투를 벗으면
내민 손
반가운 눈빛에서
일어서는 봄 햇살
-「가정」 전문
가정의 행복은 부부사랑에서 시작된다. 시인은 ‘문 열면 안겨오는 아내의 웃음꽃다발’에 ‘봄 햇살’ 같은 행복감을 만끽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부 사랑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춰주고/ 내가 발 틀리면 아내가 발 맞춰 주”(「동반자」 일부)는 숨은 노력과 함께 “행복한 아내 마음의 미소지킴이 되고”(「미소 지킴이」 일부)자 하는 현실적 실천이 뒤따라야만 가능해진다.
엄기창의 시조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시장’으로 상징되는 낮고 힘겨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 즉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시조가 시절가조時節歌調인 점을 감안할 때 ‘오늘 여기’에 대한 관심과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 왜곡된 면이 있지만 그동안 시조가 음풍농월의 문학으로 비판 받아왔던 것도 이러한 시대정신을 외면한, 자연서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 녹는 시장 골목
비둘기는
맨발이다.
신발 전 털신 한 짝
사 신기고 싶구나.
종종종
서둘러 가는
머리 위엔 하얀 눈발.
하루 종일 찍어 봐도
허기진 건
숙명이다.
싸전의 주인은
쌀알 한 톨 안 흘리네.
구구구
나직한 신음
핏빛으로 깨진 평화.
-「비둘기-시장풍경 5」
맨발의 비둘기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초상은 하루 종일 찍어 봐도 허기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 현실은 쌀 한 톨 흘리지 않는 각박한 무대이며 서둘러 돌아가는 머리 위엔 차가운 눈발이 쌓이고 나직한 신음을 토하는 아픔을 노정한다. “장마 뒤의 깊은 계곡”(「주름살-시장 풍경3」) 같은 주름살 깊게 파인 노점상 할머니는 그러한 현실 속의 대표적인 초상이다. 이들을 시적 재현의 대상으로 삼은 데서 우리는 엄기창 시인의 현실의식을 높이 살 수밖에 없다.
쇠락해가는 농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도 이러한 시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 시인은 “봄 햇살 사운대도 대문은 굳게 닫혀/ 울안에 혼자 사는 살구꽃 꽃가지만/ 아무도 보는 이 없이 목청 돋워 피”(「빈집」)고 있는 농촌을 애잔하게 바라본다. 「2016년 산골마을」 은 “꼬부랑/ 할머니/ 혼자/ 고샅길/ 걸어가서// 쾅쾅쾅/ 대문 두드려도// 깨어날 줄/ 모르는/ 마을”로 표상되고 있는데, 이 마을은 “봄이 와도 꽃은 없고/ 꾀꼬리 꽃 부르던/ 목소리도 사라지고/ 고샅길/ 꼬불꼬불 돌아/ 경운기만 가고 있”(「장다리골」)는 풍경으로 다시 그려진다.
누구나 그러하듯, 어느 순간 세월의 깊이를 문득 깨닫게 된다. “얼룽이는 삶의 무늬/ 취해서 살다 보”면 “가로수/ 잎 진 가지에/ 칼바람이 앉아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루살이에 비하면 짧은 삶이 아니었네.
매미의 마지막 노래 초록 잎에 꽃물 들여
온 산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구나.
진다고 아주 지고 머문다고 아주 머무나
있음도 없음도 흘러가는 바람이라.
저 산불 꺼지고 나면 무욕無慾의 눈 덮이리.
-「각성覺性의 가을」전문
사는 일 돌아보면 “있음도 없음도 흘러가는 바람”임을 문득 깨닫게 되는 계절이 가을이다. 붉게 타는 단풍이 지고나면 무욕의 흰 눈이 세상을 뒤덮는다. 아마도 ‘이순’이라는 연치가 그쯤의 풍경 아닐까 싶다. “작년에 본 굽은 나무/ 올해 보니 또 새롭다./ 잔가지 자를 때도/ 망설이고 또 망설여,/ 미운 것/ 예쁜 것들을/ 구별 않고 보는 나이”(「이순耳順」)가 바로 그런 계절의 마음가짐이요, 시선이다. “익숙한 옷들을 벗고/ 눈발 아래 서는” 시간이지만 “지난 세월 실을 뽑아/ 새 날의 그물을 짜며/ 또 한 발/ 못 가본 바다에/ 생生의 기旗를 세”(「퇴임 이후」)워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계절은 “제 눈물 젖은 가랑비 울음 모아 흐르는”(「낙화 기행」) 시간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대에게 다가가는 길은 끊어지고/ 오늘따라 어둠은 장막처럼 가로막아// 창문에/ 비친 불빛만/ 바라보며 서 있”(「우수憂愁」)는 우수어린 시간일 수도 있다.
돌 틈마다 세월의 무게가 돌이끼로 덮여있다.
깨어진 기왓장에 박혀있는 삶의 무늬
시간이 스쳐 온 자리 스며있는 눈물과 한숨
무너져도 일어서는 분노를 다독이며
단심丹心 의혈義血이 꽃처럼 지던 그 날
함성이 떠난 자리에 흰 구름만 떠도네.
무엇을 깎아내려 밤새도록 쏟아 붓던
비바람 지나간 성터 수목 빛이 더욱 곱다.
역사는 지우려 할수록 더 파랗게 살아난다.
-「성城」 전문
역사의식이 돋보이는 위 시조는 엄기창 시조의 또 다른 빛깔로 자리한다. 시인은 “세월의 무게가 돌이끼로 덮여 있는” 옛 성을 통해 삶의 무늬와 “시간이 스쳐 온 자리에 스며 있는 눈물과 한숨”을 읽는다. 의혈이 꽃처럼 지던 그 자리엔 흰구름만 무심히 떠돈다는 진술은 오늘을 있게 한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역사는 지우려 할수록 더 파랗게 살아난다”는 구절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식 속에서 길어 올린 울림이 큰 시적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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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창 시인은 다양한 시적 관심사를 정격의 시조 양식 속에 조화롭게 우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시적 대상에 진솔하게 접근하는 시적 진정성으로 고답적이지 않는 현대 서정시조의 색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단수 또는 2수 내외의 짧은 시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이는 비우고 내려놓는 불교적 사유와 일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절제된 삶의 품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엄기창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시편들이 환기시키는 이러한 진솔한 시각과 온기 어린 시선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시풍은 특유의 시적 감응력을 발휘하는데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시인의 선한 인품과도 닮아 있어 더욱 신뢰가 간다.
시인은 ‘시조를 쓰는 이유’를 “툰드라의 가슴마다/ 햇살 씨앗 깊게 심어// 벌 나비/ 날갯짓하게/ 봄꽃 가득 피우려”는 마음에서라고 했다. 겨울잠을 자는 툰드라의 가슴에 봄꽃을 피우려는 마음,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엄기창 시조가 지향하는 드높은 세계라 여겨진다.
그러나 엄기창 시가 안겨주는 이러한 따뜻한 기운은 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지워도 날이 서는 아픔을 다독이”(「하회탈」)는 자기 극복의 고통 과정과 “오늘도 웃는 연습에/ 하루해가 저”(「마애삼존불」)무는 노력 속에서 얻게 되는 성취라 하겠다. 어쩌면 그러한 시세계는 “그리움이 안으로 익”고 “긴 겨울을 초록으로 견딘 아픔”이 있었기에 얻어질 수 있는, “향기로 자욱이 퍼지”(「인동초」)는 그런 성취일 것이다.
시인은 대학시절부터 시인의 길을 걸어온 시력 40년의 대표적인 한국문단의 중견 시인으로 자릴 잡았으면서도 여전히 신인의 자세로 겸허하게 시를 받들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그가 줄기차게 견지해온 삶의 태도와 다르지 않으며 시의 품격을 높이는 중심적 사유로 작동한다. 어쩌면 그것은 앞에서 살핀 불교적 사유와 “풀 뒤에 숨어 읊조리는 자줏빛 저 고백을/ 가다가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듣고 있”는 관심과 배려의 정신이 승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낮고 그늘진 곳에 눈길을 떼지 않는 현실의식과 치열한 역사의식은 순수서정에 바탕을 둔 엄기창 시세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라 할 것이다.
자유시와 함께 시조를 쓰고 있는 시인답게 시인이 보여주는 시조의 문법 또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대적 사유와 감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도 다양한 빛깔로 시조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범람과 일탈 속에서 응축과 절제의 양식인 시조를 쓴다는 것은 고행을 마다 않는 수행자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그 길은 고통스럽지만 성스러운 축복의 여정이다.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엄 시인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올리며 모쪼록 건강과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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