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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
가을이 곱게 익어가는 토요일입니다. 엊그제 플라워랜드에 갔더니 국화꽃들이 농익을 대로 익어서 늦은 가을을 환하게 불 밝히는 것을 보고 ‘아, 원숙하다는 것은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서로 다른 영혼으로 살다가 오늘 비로소 한 몸이 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연리지와 같아서 저는 두 사람의 인생이 결혼을 통해 화창해지라고 비는 마음을 연리지를 통해 말해보려 합니다.
연리지는 서로 뿌리가 다른 두 가지가 서로 엉겨 붙어 한 나무로 살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로, <후한서> ‘채옹편’에서는 처음으로 ‘효’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이제 부모님은 네 분이 되겠지요. 자고로 상대편의 부모님께 잘못하고 사랑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 배우자를 통해 새로 인연을 맺는 부모님을, 가족을 진정 내 부모님,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모실 때 더 튼튼하고 싱싱한 연리지가 탄생된다는 것을 신랑 신부는 가슴 깊이 인식하고 실천해주길 바랍니다.
연리지의 상징적 의미는 점차로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 ‘부부애’ 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뿌리가 다른 나무끼리 한 나무로 살아가며 다시 찢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 필요할까요. 저는 바로 변치 않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같이 뜨겁던 사랑도 잘못 가꾸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맙니다. 이 사랑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늘 배우자를 믿고 사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려고 자신을 희생할 때 천 년 만 년 푸름을 잃지 않는 연리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 또한 깊이 되새길 것을 주례는 신랑 신부에게 당부합니다.
저는 얼마 전 제 세 번째 시집인 <춤바위>에 ‘부부’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이 시에는 연리지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이 가득 담겨 있기에 주례는 하객 여러분이 증인으로 참석한 이 자리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부부
엄기창
나는 마음의 반을 접어서
아내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산다.
더듬이처럼 사랑의 촉수를 뻗어
아내의 작은 한숨마저 감지해 내고는
아내의 겨울을 지운다.
어깨동무하고 걸어오면서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추고
내가 넘어지면
아내가 일으켜주고
천둥 한 번 일지 않은 우리들의 서른여덟 해
사랑하고 살기만도 부족한 삶에
미워할 새가 어디 있으랴.
늘 마음의 반을 접어 서로의 마음 갈피에 끼우고, 상대방의 작은 번민까지 감지해 지워주려는 마음, 고달픈 인생행로에서 한 사람이발을 틀리면 서로 맞춰가려는 마음, 사랑하며 살기만도 부족한 인생에서 미워할 새가 있겠냐는 강한 의지, 이런 것들을 잊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일생은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아름다운 새 시작에 축복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10월 30일
주례 엄 기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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