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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달의 문제작<시>
타자시학
정 신 재
<문학평론가>
라캉에 의하면 타자는 주체가 아닌 모든 사람만이 아니라 주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든 사물에 해당되는 궁극적인 기표(SIGNIFIER)이다. 이 타자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의 궁극적인 기표이기 때문에 사실상 나를 정의한다.(조셉 칠더스 게리 헨치 외, 『현대 문학 문화 비평 용어 사전』문학동네, 2001) 『시문학』9월호에는 주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타자가 대행하고 실패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 많았다.
대부분의 시에는 타자가 들어있다. 주체가 타자와 함께 대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화자의 몫이다.
중략
5. 융합의 미학
몸이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 기관과 피와 살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몸의 각 부분은 융합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융합이 몸을 살린다.
엄기창에게 타자는 융합을 추구하는 존재요, 사물이다.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엄기창, 「슬픔을 태우며」부분
전쟁에서 패배한 군사 “나라 없는 백성”을 통해서 시인은 “역사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현재에 남아있는 타자의 생명력에 주목한다. 타자의 생명력이 지속되는 한 역사는 “바람”처럼 굴러가는 것이다.
『시문학』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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