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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해설〕
파란만장 치유治癒의 노래
엄기창 시인
1. 시의 효용效用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시에는 어떤 효용效用이 있기에 독자들은 끊임없이 시를 읽고 있는가.
루이스는 “시란 무엇보다도 즐기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이는 시의 효용效用을 문학의 원초적인 쾌락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예술 활동의 정화작용(카타르시스)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즉, 시인은 한 편의 좋은 시를 창작함으로써 즐거움을 갖게 되며, 독자는 좋은 시를 읽음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새로운 감동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간접적이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주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시는 ‘재미’와 ‘감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한정민 시인에게 있어서 시란 노년의 아픔과 외로움을 치유治癒해주는 친구 같이 소중한 존재다. 아내와 사별하고, 아들과 두 딸 모두 집 틀어 나가고, 자신도 방광암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황혼의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서시’에서
“나 혼자입니다./역전 마당/흔들리는 사람들 물결 속에서도/나 혼자입니다./장미꽃은 피어도/손을 내밀지 않습니다./비둘기 노래도/울음소리로만 들립니다./노숙자의 그림자 속에/혼자만 남았습니다./잠깐 스쳐온 여행이라 여겼는데/세월에 떠밀려온 황혼의 언덕에서/한 점 흔들리는 바람결에도/명치끝이 아립니다.” 라고 노년의 외로움을 노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만이 그의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그를 웃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2. 한정민 시인의 삶의 발자취
내가 한정민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14년 9월 어느 날이었다. 40년 가까이 봉직하던 교직에서 물러나와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내게 ‘대전문예창작연구회’에서 시를 같이 공부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첫날 거기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사람이 한정민 시인이었다. 나보다 일곱 살 연상으로 칠십이 넘어 늦게 문학에 입문한 한정민 시인은 자신의 삶을 모두 태워 시에 몰두하는 열정적인 시인이었다. 2014년 1월『문학사랑』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이미 그 해 4월 『먼 훗날』이라는 시집을 발간하였고, 이어서 2015년 대중적 서정시의 매력이 넘치는 『진도 육자배기』, 2016년에 아내의 간병과 자신의 방광암 투병의 절실한 서정을 모아『한정민 병상일기』를 상재하였다.
그의 삶은 오로지 시에 몰입되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쓰면 무엇보다 즐거워하고, 시가 써지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내가 본 어떤 시인보다 그는 가장 시인다운 생활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1944년 4월 25일 진도에서 탄생한 한정민 시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풍족하고 만족할 만큼 행복한 삶은 아니었던 듯싶다.
“ 부잣집
아이들은 책가방을 들고
운동화를 신고
나는
책보를 메고 검정고무신 신고
중학교에 다녔다.
동네에서
읍내 학교까지는
시오리길
눈보라 치는 날이면
눈에 젖어 시린
발이 부르트도록 산길을 뛰었다
그 길이
꿈 찾아 서울로 줄행랑 친
내 깨달음의 시작이었다.”
-「검정고무신」전문
한정민의 시는 상황이나 시적 대상을 소박한 시어로 묘사하여 감성에 호소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의 고향 집은 화장실에 가면 바닷게들이 떼 지어 돌아다닐 만큼 바다와 가까웠다.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이 ‘도추바’였던 것을 보면 그는 뒤통수가 툭 튀어나온 개구쟁이였던 것 같고, 그 당시 농촌이나 어촌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음직하던 집안에 대한 불만도 있었던 것 같다. “부잣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었는데, 자신은 검정고무신 신고 눈 오는 날 언 발로 고개를 넘었다는, 그 것이 꿈 찾아 서울로 줄행랑을 치게 된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심상치 않은 앞날을 예고하는 파란만장波瀾萬丈의 예고편이었다.
“ 책가방 팽개치고
서울로 가출
전라도 촌놈이라고
직장을 구하려고 해도
보증 서줄 사람이 없어
여인숙에서 호객을 하며 구두닦이를 했다.
뒤늦게
중국집 접시닦이로 취직하여
일 년간 일했건만
품삯은 한 푼도 주지 않고
(중략)
눈물 마시며 자란
전라도 촌놈
전라도를 빛내는 시인이 되었다.
삶의 태반을 타향에서 지냈지만
내 시 속에
황토 향기가 풍기는 건
내 피가
전라도 사랑을 담은
황토빛깔이기 때문이다.
-「전라도 촌놈」부분
이 시집 『전라도 촌놈』의 표제시다. 중학교 2학년이던 한정민 시인은 가난한 집안과 농업에 종사하던 아버지를 도와야 하는 농어촌 생활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이웃집 여고생을 짝사랑 했지만 그 여고생은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 딸인지라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 같다. “소쩍새 울음 울던/열다섯 시절/이웃집 여고생을 짝사랑했다.//좋아한다./말 한마디 못하고/가슴앓이 하다가//반백이 넘도록/내 마음 거울 속에 그리기만 했던/사랑//칠순에/둘 다 홀로 되었어도/이룰 수 없어//나 홀로/덩그러니 추억을 지우는/연습만 하고 있다.”라고 그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서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한정민 시인은 결국 어느 날 새벽 아버지의 소판 돈을 훔쳐 가출을 한다. 진도대교가 놓아지기 전이라 작은 배를 타고 울돌목을 건너면서 아버지가 쫓아올까봐 가슴을 졸였다 한다. 그러나 이 가출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깡패들에게 돈을 모두 빼앗기고 결국은 여인숙의 호객꾼이 되어 밤에는 호객을 하고 낮에는 구두닦이를 하였다. 식당 주인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중국집 접시 닦이로 취직하였지만 주인은 품값을 한 푼도 안 주고 올 데 갈 데 없는 놈 밥 먹여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라고 호통을 쳤다. 심술이 난 그는 어느 날 손님 신발 열다섯 켤레를 똥통 속에 집어넣고 도망을 나왔다. 이 가출이 그의 파란만장波瀾萬丈의 시작이었다.
눈물을 마시며 자랐지만 그는 이제 전라도를 빛내는 시인이 되었다. 타향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한정민 시인은 ‘전라도 촌놈’임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는 황토빛 향기가 난다. 이것은 전라도와 진도를 사랑하는 한정민 시인의 마음이 시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월남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월남 파병을 요청했다. 1965년 10월 13일 월남에 파병되는 맹호부대의 일원으로 한정민 시인이 참전하게 된 것은 그의 일생에 커다란 전환기가 되었다. 이른 나이에 꿈에 부풀어 가출했지만 이룬 것 없이 타향살이의 신산만 경험하던 한정민 시인에게 월남참전은 일종의 탈출구가 된 것이었다. 소판 돈 훔쳐 나와 성공하지도 못한 죄책감에 전사한다면 전사 보상비라도 아버지께 전해지겠지 하는 막다른 심정으로 월남에 갔지만, 포탄 쏟아지고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다니는 전장은 너무도 무서운 지옥이었다.
하늘에선
고엽제가 쏟아지고
땅에서는
베트콩의 총신이 겨눠지고
눈을 감으면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있을지 몰라
잠을 잘 수가 없다.
고국이 천국이라면
여기는 지옥이다.
고국 사람들아
천국은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한다.
지옥이 되고 나면
후회할 틈도 없다.
-「지옥」
고엽제가 쏟아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지옥 같은 전쟁터, 눈을 감으면 누가 목을 베어갈 지도 모르는 위기의식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런 속에서도 천국은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지 지옥이 되고 나면 후회할 틈도 없다는 잠언적 교훈을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한정민 시인의 시에서 이렇게 아포리즘적 요소를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살짝 내비치는 이런 교훈들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소박한 표현 속에 언뜻언뜻 내비치는 날카로움, 이것이 한정민 시가 지닌 매력이다.
한정민 시인은 이런 지옥 속에서 결국 살아나와 국가 유공자가 되었으며, 1967년 전매청(담배인삼공사)에 채용되어 유복하게 지내게 되었으니, 때로는 용기 있는 결단 한 번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옛 성현들의 말씀에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겠다.
한정민 시인의 첫 번째 불행은 아내의 발병이었다. 건강하던 아내가 2002년 갑자기 페암 진단을 받은 후로 간신히 유지되던 그의 행복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 직장은 다녀야 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극진히 간호했지만 아내는 2005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엄마의 사랑을 잃은 어린 3남매를 다독이며 뒷바라지하여 잘 교육시키고, 이젠 모두 각자의 둥지를 마련하여 내어보냈다. 아내를 보낸 지 15년이 되었지만 한정민 시인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산다.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가슴 시릴 때마다
당신이 해 주던
보리밥 맛 잊을 수 없어
보문산 보리밥집을 찾습니다.
나 홀로 덩그러니
싱싱한 채소와 나물로
쓱쓱 비벼 먹습니다.
후식으로
부침개 한 접시
막걸리 한 사발
“여보 잔 받으시오
내 술 한 잔 받으시오“
당신의
빈자리에
망초 꽃이 피어납니다.
-「아내의 망초 꽃」전문
아내를 잃은 슬픔을 고분지통叩盆之痛이라 한다. 『장자』지락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내가 죽은 후 물 단지를 두드리며 운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아내를 떠나보낸 후 그리움을 지울 수 없어 아내와 자주 가던 보리밥집에 간다. 둘이 먹던 보리밥을 혼자 먹으며 부침개 한 접시에 눈물 섞어 막걸리 한 잔을 마신다. 생전에 하던 대로 아내에게 막걸리를 권하니 빈자리에 망초 꽃이 피어난다는 시다. 얼마나 눈물겨운 사랑인가. “여보 잔 받으시오/내 술 한 잔 받으시오.//당신의/빈자리에/망초 꽃이 피어납니다.” 사부곡思婦曲으로 얼마나 격조 높은 표현인가. 아내는 공기나 물과 같이 늘 우리 주위에서 함께하기에 평소에는 고마움을 모르다가 부재 시에야 그 귀함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또 다른 시 「첫눈」에서 더욱 상승된다. “창 밖에/첫눈이 내린다.//하얀 나비 날아오르다/창문에 부딪혀 녹아내린다.//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눈꽃으로 피어나/당신의 눈물 나비가 되었나 보다.//창문 열고/손 내민다.//바람으로 사르셨나./손에 잡히지 않는/내 마음 속 하얀 나비”
한정민 시인의 시에는 ‘망초 꽃’이나 ‘나비’와 같은 비유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참신한 비유가 한정민 시인의 시를 범속을 초월해 절구絶句로 이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정민 시인의 두 번째 불행은 어머니의 설암 발병이었다. 고향 진도에서 지적 장애자인 동생을 보살피며 살던 어머니를 대전으로 모시고 와 보훈병원에 입원시키고 극진하게 간호했다. 혼자 몸으로 온 정성을 다해 간호한 보람도 없이 어머니는 2013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정민 시인에게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 외에 또 하나의 간절한 그리움이 생기고 말았다.
첫닭 울면
잠 깨어나 평생 일만 하시다가
이승 떠나신
어머님 얼굴
부엌문 밀치고 나와
보리방아 찧던
저 주름살
울 어머니
곱던 얼굴에 늘어난
삶의 훈장
발길 끊겨
잡초만 무성한 고향집
마당 귀퉁이
주인 잃고 나뒹구는 절구통
-「절구통」전문
고향집 마당에 뒹굴고 있는 절구통을 보며 이승 떠나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곡진한 사모곡思母曲이다. 옛날 어머니들은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 가족들에게 먹이고는 하루 종일 들에 나가 노동을 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다시 저녁을 지어 먹이고, 빨래나 바느질 등 가사를 돌보느라 허리를 펼 새가 없었다. 절구통 역시 어머니를 괴롭히는 가구에 지나지 않았다. 방앗간에 갈 만큼 넉넉한 집이 아니면 절구통에 곡물을 찧어 밥을 했다. 한정민 시인은 절구통에 보리방아 찧던 어머니 모습을 회상하면서 이제는 마당 귀퉁이에 버려진 절구통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정민 시인에게는 절구통이 어머니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한정민의 시는 이해하기 쉽다. 힘들여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맑은 물처럼 그 내용이 환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삶의 체험을 비교적 친근한 비유와 상징으로 엮어가기 때문이다. 참신한 감각적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를 너무 멀게 하여 시인 자신조차 무슨 말을 한 지 모르는 난해시를 남발하는 시인들이 많은 요즈음 그렇기에 한정민의 시가 더욱 소중하다.
나는요
종합병원 전문의랍니다.
고혈압 십칠 년
전립선 비대증 십사 년
협심증 팔 년
방광암은
BCG 약물 투입
내시경 검사
치료중
온갖 병과 어울려 살다 보니
어느새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나는 전문의」전문
『진도 육자배기』에 실린 『나는 전문의」라는 시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여 고엽제를 마셨기 때문일까.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한정민 시인에게도 온갖 병마가 찾아든다.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 협심증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중에 어느 날 혈뇨가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병원에서 세포검사를 하니 방광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중첩되는 불행에 절망을 느끼지만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BCG 약물 투입 등의 치료를 받는다. “온갖 병과 어울려 살다 보니 어느새 전문의가 되었습니다.”는 시구에서 조지훈의 「병에게」라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너무 자주 만나다 보니 전문의가 되었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표현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조남익 선생님은 한정민 시인의 시집 『진도 육자배기』해설에서 “한정민의 시에는 시의 결구에서 고차원적 언어 표현이 유지된다. 이는 작시 상으로도 시의 태작駄作을 막고 성숙된 한 시인의 면모를 살필 수 있게 한다.”고 평가한 바가 있다. 한정민 시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따뜻하고 친근감 있는, 소통하기 쉬운 시적 전개에 종련 결구의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표현이 시의 격조를 스스로 높이고 있다.
3. 황혼의 외로움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다 인간만큼 고독한 존재는 없다. 그것이 인간의 기본 명제이다. 인간은 태어 날 때도 혼자 외롭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도 혼자 외롭게 죽어간다. 인간이 외롭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인간에게 있어 외로움은 우리가 매일 먹는 물이나 밥과 같다.”고 정호승 시인은 말한 바 있지만 인간은 혼자 태어나 결국에는 혼자만 남는 외로운 존재다. 삶의 격동기를 지나 한정민 시인도 어느덧 일흔일곱의 나이가 되었다. 아내와 사별한 지도 15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혼자이다. 아들과 두 딸들도 결혼하여 모두 가정을 꾸렸고, 손톱 밑의 가시처럼 늘 괴롭히던 방광암도 완치판정을 받았다. 황혼이 짙어지면서 그의 삶에 농도를 더해가는 것은 외로움이다.
김밥으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동태찌개
막걸리 한 사발로
점심을 때우고
어스름 저녁
식당 문을 밀치고
공복보다
사람이 그립습니다.
습관처럼 울리지 않는 휴대폰
누구라도 부르고 싶습니다.
아무라도 부르고 싶습니다.
저녁까지
세끼 혼밥이 싫어
더운 밥 마주하고
하루를
포만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혼밥이 싫어」전문
한정민 시인의 대부분의 시처럼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시다. 요즈음 선진국에서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것이 노인들의 외로움이다. 가족들이 파편화되어 둘이 살다가 하나가 가면 외로움을 씹어가며 남은 생을 보내야하는 것이다. 노인들의 도시락을 전달해 준다거나 고아원을 방문하는 등 봉사활동에 마음을 써 보기도 하고, 독거노인을 초청해 점심을 대접하기도 하지만 존재의 외로움은 사라지질 않는다. “주말은/
애들하고 함께 하고 싶다.//고희를 넘어/혼자 사니/ 사람이 그립다.//아들딸하고/밥이라도 먹고 싶은데/전화가 없다//외로울 때는/애들은 내 마음 속/ 보석이다.”라고 한정민 시인은 시「보석」에서 손주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자손들이 관심을 가져준다고 원천적 외로움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주 전화 속에서 손주들의 재롱을 보여주는 것, 반찬이라도 한 가지 가져다가 식사를 챙겨주는 것, 이런 인간 사이의 작은 정성이 모여 노인들의 고독사를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4. 아픔을 치유治癒해주는 시
시가 나를 살렸다고 한정민 시인은 자주 말하고 있다. 아내와 어머니가 불행한 일을 당하고 자신마저 방광암으로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문학사랑』신인상으로 등단하고 『먼 훗날』, 『진도 육자배기』, 『한정민 병상일기』등의 시집을 출간하면서 그 기쁨의 에너지로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만길 높이로 치솟은 물결처럼 인생의 심한 기복을 시로 승화시켜 노년의 외로움마저 극복하고 평화를 찾았다는 것이다.
시에 꽂히면 인생에 꽃이 핀다. 노년에 극한의 슬픔이 온 몸을 지배할 때, 그 슬픔의 바다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가능성이 안 보일 때, 그 슬픔을 울부짖듯 시로 토해내고, 그것을 시집으로 묶어낸 후 말끔하게 가라앉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시에는 절망을 치유治癒해 내는 힘이 있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몸에 담긴 불순물을 모두 걸러내고 시들어가던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힘이 있다. 한정민 시인은 시가 지닌 힘을 깨달았으니 이제 그의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불행을 닦아주는 묘약妙藥이 되리라.
좀 늦게 입문했으니 삶의 애환을 신명난 목소리로 풀어낼 때 친근하고 따뜻한 감정과 종연이 갖는 함축적 묘미를 살리고 투박한 표현을 조금 가다듬는다면 행복한 생활 속에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오늘도 한정민 시인은 시를 통해 얻은 생의 기쁨을 상기된 목소리로 노래한다.
어둠의 대궁 위에
아침의 꽃이 피듯
내일은
밝은 햇살로 오겠지.
시여!
불행을 쓸어내는
신의 날개여!
여명을 깨워내는
우렁찬 종소리로
햇살 고운 아침
창문 열어젖히고
두 팔을 힘껏 펼친다.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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