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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눈
그 날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눈보라치는 연미산 고개를 넘으시면서
하얗게 덮인 금강의 백사장이며 빨랫줄처럼 흔들거리는
공산성의 성벽들을 샅샅이 눈에 담으셨다.
“내가 이제 여기 또 올 수 있을지 몰라”
아버지의 쉰 목소리에서 눈바람소리가 울렸다.
쉰아홉에 휘몰아친 팔월의 눈보라
간이 돌처럼 딱딱해져서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몇 마지기 땅뙈기로 아들 셋을 대학 보내며
꿈꾸었을
아버지의 무지개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는 벌판처럼 쓸쓸해진 그의 시선을 피해
너무도 일찍 와버린 아버지의 겨울을 생각했다
첫 월급을 타서 보낸 한약 한 재가
아버지의 삶에 이른 눈보라를 불러왔을까
아들의 첫 선물에 너무도 좋아하던 환한 얼굴 너머로
죄책감처럼 몰래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꺼질 듯 꺼질 듯 숨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삶의 된서리에도 푸르게 견뎌가던
명아주 한 포기 시들어가는 소리였다.
그 해에는 눈도 참 일찍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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