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의 나

수필/교단일기 2010. 12. 28. 16:07

20년 후의 나

 

유리창 밖으로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는구나. 메마른 나뭇가지에 조금씩 설화가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설경에 대한 감탄보다 너희들의 움츠린 어깨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내가 선생이기 때문일까?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너희들 교실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단다. 내 첫 시집에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야간자습’이란 제목으로 써서 수록한 것이 있는데 한 번 소개해 볼까.  

투명한 유리창은/ 아이들의 상승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수많은 목소리에 눌려 작아질 대로/ 작아진 아이들의 소망은/ 가끔은 무지개빛 호랑나비가 되지만// 초록빛 자유로운 바람으로/ 날아오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철조망은 날개를 찢어 놓았다.// 벽에 걸린 시계의/초침은 멎어 있었다.// 영산홍꽃 꽃가지마다/불을 지핀 오월이/ 산 접동새 소리로 아이들을 데리러 왔지만// 유리창에 부딪혀/ 힘없이 비가 되었다.// 어둠을 태우는 형광등/ 환한 불빛이/ 우리 아이들에겐 오히려/ 진한 어둠이었다.

                                                                       <야간자습> 전문

 

우리 예쁜 공주님들아!
또 한편 생각해보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하게 싸워나가는 너희들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단다. 여자는 연약한 게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남자들과 당당하게 실력으로 맞설 수 있도록 자신을 닦아나가는 것이 현대 여성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육십 살쯤 되어가는 내 친구들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일찍이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는 자기발전의 노력을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몇 번쯤 성공의 기회가 오는데, 미리 준비한 사람들만이 그러한 기회를 잡아 성공하여 존중받는 인생을 살아나갈 수가 있단다.

3년 전 대전고 67회 제자들의 20주년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몇 명의 제자들의 말을 듣고 감격한 적이 있단다. 그 애들의 졸업 전 마지막 시간에 ‘20년 후의 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제출하게 했는데, 그 글을 쓰면서 정말로 20년 후의 영광스런 자신의 모습을 위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고 했지. 그때 비로소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되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다 보니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였다고 감사의 말을 하더구나. 한 학생의 말이라면 인사 삼아 한 말이라고 하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미래에 희망을 주는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

너희들도 이 기회에 2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지 않겠니? 그리고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보려므나. 그러면 20년 후 먼 발치에서 나를 보았을 때 달려와 자랑하고 싶을 만큼 성공해 있을 게다. 내가 가장 보기 싫어하는 것은 청소년 시기에 아무런 의욕 없이 살아가는 학생들이란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을 일일이 깨워 세워놓고 수업을 한 것이란다. 노력하다 지나쳐 실수하는 삶은 희망이 있지만, 아무 것도 시도해 보지 않는 삶은 희망이 없는 것이지. 나는 정말 선생이 되고 싶어 교단에 섰고, 학생들을 위해 고집을 피우다가 큰 고난도 겪어본 사람이다. 지금도 내 큰 소망은 너희들이 내년에 가고 싶은 대학의 학과에 합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고, 미래에 자신의 주위나마 밝힐 수 있는 등불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란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고, 여름에 가꾸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단다. 우리 예쁜 공주님들, 20년 후에 모두 자기가 추구하는 부문에서만은 권위자가 되자.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멈추지 말고, 고지를 향하여 힘차게 걸어가자.

20년 후, 아름답게 피어 세상을 향해 향기를 뿌리고 있을 너희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2010년 12월 세모

엄 기 창(국어,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