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꽃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세상을 환하게 한다
쓰르라미 울음으로 저물어가는
여름의 황혼 무렵
지다 만 능소화 가지 끝에 피어난
저 진 주황빛 간절한 말 한 마디
바람의 골짜기에
향기로운 웃음을 전하면서
너는
사랑을 잃은 친구의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해준다
보라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남의 살 찢으려고 날을 세우는 것들
널린 세상에
벌 나비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감싸 안고
젖을 물리듯 자장가 불러 주는
세상의 어머니여!
내생에서는 잠시라도
너처럼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다
글
어머니가 고향이다
어머니 없는 마을은 고향도 타향 같다
어둔 밤 재 넘을 제 마중 보내 반긴 불빛
된장국 끓이던 향기 잡힐 듯이 그립다
빈 집의 살구꽃은 왜 혼자서 타오르나
돌절구 돌 맷돌은 버려진 채 비를 맞고
노을 녘 부르던 목소리 귀에 쟁쟁 울려온다
어머니 가시던 날 고향도 따라갔나
어린 날 추억들은 밤 새 소리에 아득하다
허전해 돌아가는 발길 어머니가 고향이다
글
벌레의 뜰
화랑곡나방 한 마리
회백색 호기심 활짝 펴고 내 주위를 선회한다
시가 싹트는 내 서재는 벌레의 뜰이다
어디에서 월동했다 침입한 불청객일까
날갯짓 몇 번으로 시상詩想에 금이 마구 그어진다
홈·키파 살그머니 든다
그리고 놔두어도 열흘 남짓인 그의 생애를 겨냥한다
내 살의殺意가 뿜어 나오고 떨어진 그의 절망을
휴지에 싸서 변기에 버리면
깨어진 시가 반짝반짝 일어설까
창 넘어서 보문산이 다가온다
고촉사 목탁소리가 함께 온다
벌레야 벌레야
부처님 눈으로 보면 나도 한 마리 나방
푸르게 날 세웠던 살생을 내려놓는다
벌레하고 동거하는 내 서재는 수미산이다
글
물 위에 쓴 편지
물오리 한숨 풀어
물 위에 편지를 쓴다
썼다 지운 이야기는
꽃잎으로 떠도는가
옛날은 희미해지고
향기만 가득 풍겨온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