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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에 해당되는 글 4건
- 2022.12.30 징검다리
- 2022.12.28 팔월의 눈
- 2022.12.27 득음得音
- 2022.12.01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글
징검다리
하나쯤은
이가 빠져 있어도 좋다
네가 내게 들어와
삶을 춤추게 하던 그 다리 같이
등이 간지러운 시간만큼
설렘이 부풀어 올라
그 날 산바람에 묻어오던
뻐꾸기 소리처럼
올 것만 같다
한 번 업은 후에
평생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아
글
팔월의 눈
그 날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눈보라치는 연미산 고개를 넘으시면서
하얗게 덮인 금강의 백사장이며 빨랫줄처럼 흔들거리는
공산성의 성벽들을 샅샅이 눈에 담으셨다.
“내가 이제 여기 또 올 수 있을지 몰라”
아버지의 쉰 목소리에서 눈바람소리가 울렸다.
쉰아홉에 휘몰아친 팔월의 눈보라
간이 돌처럼 딱딱해져서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몇 마지기 땅뙈기로 아들 셋을 대학 보내며
꿈꾸었을
아버지의 무지개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는 벌판처럼 쓸쓸해진 그의 시선을 피해
너무도 일찍 와버린 아버지의 겨울을 생각했다
첫 월급을 타서 보낸 한약 한 재가
아버지의 삶에 이른 눈보라를 불러왔을까
아들의 첫 선물에 너무도 좋아하던 환한 얼굴 너머로
죄책감처럼 몰래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꺼질 듯 꺼질 듯 숨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삶의 된서리에도 푸르게 견뎌가던
명아주 한 포기 시들어가는 소리였다.
그 해에는 눈도 참 일찍 왔다
글
득음得音
상수리나무 잎새에 매미 소리가 박혀있다
한 달의 득음得音을 위해
칠 년을 침묵의 폭포 아래서 피를 토한
고단한 생애가 판화처럼 찍혀있다
매미는 알았을 것이다 때로는 덧없는 길도
묵묵히 걸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노래 한 곡 반짝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무명가수의 뒷모습이나
하루의 삶도 보장받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우화羽化가
결코 부질없는 생애는 아니라는 것을
매미가 한 달을 소리쳐 울기 위해
칠 년을 고행 하듯이
시 한 편 남기기 위해 메아리 없는 외침
수도 없이 외쳐대는 시인들이여
모아이 석상처럼 매미는 시력을 반납한 채
껍질로 남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의 득음得音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온 세상을 쩌렁쩌렁 울려줄 것인지
사람들의 가슴에서 꽃으로 피어날 것인지
세상에 무의미한 생애란 없다
글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가을은
오래 묵혀두었던 그리움을
꺼내보게 하는 계절
은행잎마다 내려앉은
노란 그리움에 같이 물들다 보면
서랍 속에 넣어둔 편지를 읽게 된다
그리움은 나비이다
보고싶다보고싶다보고싶다
갈바람 한 줌에도
무수히 날아오르는 그리움의 군무
진정한 그리움은
너에게 닿지 못 한다
간절함의 무게로 떨어져 흙이 된다
줍지 마라
흘러간 사랑은
흙이 묻은 채 그냥 놓아두어라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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