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시조/제3시조집 2022. 10. 26. 07:30

단풍

 

 

 

 매미들아 지난여름

한스럽게 울어대더니

 

잎새마다 진한 멍울

양각으로 찍혔구나

 

사람들

가슴마다로

옮겨 붙는 저 아픔

posted by 청라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세상을 환하게 한다

 

쓰르라미 울음으로 저물어가는

여름의 황혼 무렵

 

지다 만 능소화 가지 끝에 피어난

저 진 주황빛 간절한 말 한 마디

 

바람의 골짜기에

향기로운 웃음을 전하면서

 

너는

사랑을 잃은 친구의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해준다

 

보라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남의 살 찢으려고 날을 세우는 것들

널린 세상에

 

벌 나비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감싸 안고

젖을 물리듯 자장가 불러 주는

세상의 어머니여!

 

내생에서는 잠시라도

너처럼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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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고향이다

시조/제3시조집 2022. 9. 7. 21:40

어머니가 고향이다

 

 

어머니 없는 마을은 고향도 타향 같다

어둔 밤 재 넘을 제 마중 보내 반긴 불빛

된장국 끓이던 향기 잡힐 듯이 그립다

 

빈 집의 살구꽃은 왜 혼자서 타오르나

돌절구 돌 맷돌은 버려진 채 비를 맞고

노을 녘 부르던 목소리 귀에 쟁쟁 울려온다

 

어머니 가시던 날 고향도 따라갔나

어린 날 추억들은 밤 새 소리에 아득하다

허전해 돌아가는 발길 어머니가 고향이다

 

 

posted by 청라

벌레의 뜰

 

 

화랑곡나방 한 마리

회백색 호기심 활짝 펴고 내 주위를 선회한다

시가 싹트는 내 서재는 벌레의 뜰이다

어디에서 월동했다 침입한 불청객일까

날갯짓 몇 번으로 시상詩想에 금이 마구 그어진다

홈·키파 살그머니 든다

그리고 놔두어도 열흘 남짓인 그의 생애를 겨냥한다

내 살의殺意가 뿜어 나오고 떨어진 그의 절망을

휴지에 싸서 변기에 버리면

깨어진 시가 반짝반짝 일어설까

창 넘어서 보문산이 다가온다

고촉사 목탁소리가 함께 온다

벌레야 벌레야

부처님 눈으로 보면 나도 한 마리 나방

푸르게 날 세웠던 살생을 내려놓는다

벌레하고 동거하는 내 서재는 수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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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쓴 편지

시조/제3시조집 2022. 9. 1. 19:58

물 위에 쓴 편지

 

 

물오리 한숨 풀어

물 위에 편지를 쓴다

썼다 지운 이야기는

꽃잎으로 떠도는가

옛날은 희미해지고

향기만 가득 풍겨온다

posted by 청라

4월의 눈

4월의 눈

 

 

잠 안 오는 밤 접동새 불러

배나무 밭에 가면

4월에도 눈이 온다

보아라!

푸른 달빛 아래

다정한 속삭임의 빛깔로 내리는

저 아름다운 사랑의 춤사위

외로움 한 가닥씩 빗겨지며

비로소 지상에는 빛들의 잔치가 시작된다

배꽃이 필 때면 돌아오겠다고

손 흔들고 떠난 사람 얼굴마저 흐릿한데

사월 분분히 날리는 눈발 아래 서면

왜 홀로 슬픔을 풀어 춤사위로 녹이는가

접동새 울음은 익어

은하수는 삼경으로 기울어지고

돌아온다는 언약처럼

분분히 무유의 흙으로 떨어지는 꽃잎

돌아서서 눈물을 말리는 것은

다정도 때로는 병이 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청라

산안개

시조/제3시조집 2022. 8. 29. 22:35

산안개

 

 

한여름 비온 날 아침 산봉우리 올라 보니

초록빛 골짜기마다 시루떡 찌고 있다

담 너머 떡 사발 나누던 고향생각 아롱댄다

 

posted by 청라

가을 저녁

시조/제3시조집 2022. 8. 28. 17:26

가을 저녁

 

 

커피 잔 채워놓고

벤치에

앉아 보니

 

샛노란

은행잎에

세월이 배어 있다

 

커피 향

그리운 얼굴

아롱아롱 하구나

posted by 청라

여적

시조/제3시조집 2022. 8. 26. 21:26

여적

 

 

노을이 부서지네

두루미 부리 끝에

짝 잃은 눈동자에

허전한 가을바람

맴돌다

한숨이 되어

어둠으로 덮이네

 

posted by 청라

4월의 소리

시조/제3시조집 2022. 8. 26. 07:52

4월의 소리

 

 

민들레 꽃다지 꽃 다 져서 허전한데

떠나간 임들처럼 그리움 품은 꽃대

연초록 아우성인가 타오르는 저 외침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