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차를 마시며

 

 

움츠리고 있던

구절초 꽃 한 송이

찻잔 속에서 활짝 피어나면

 

기와집 가득 감싸 안는

가을의 향기

 

차 한 모금에

나도 향기가 되어

 

가을비 소리 타고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 수많은 날들 중

가장 빛나는 하루

 

시월의 앞섶에는

뭉클뭉클 번져가는

오색 빛 함성

 

2018. 4. 26

충청예술문화91(201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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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의 밤

 

 

골물소리에 몸을 헹굽니다.

열대야의 꼬리가

조금씩 잘려나갑니다.

속세의 일들 실타래로 엉켜

밤새도록 불면의 바다엔

별들만 섬광閃光처럼 반짝입니다.

무엇을 비는 것일까요.

독경소리 화단 끝에서

봉숭아꽃 한 떨기로 피어납니다.

부처님 눈에 담긴 미소처럼

어둠 속에서도 붉어서 따뜻합니다.

달빛을 뽑아 실을 감으며

목탁소리 한 바가지 머리에 끼얹으면

비누거품처럼

번뇌의 때를 벗겨낼까요.

속 비운 목어처럼 편히 잠들 수 있을까요.

태엽 풀린 시간은 여명을 깨워내도

나는 아무것도 비우지 못했습니다.

 

 

2018. 4. 20

순수문학201810월호(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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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세상

환한 세상

 

 

아침에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위층 처녀가

안녕하세요.”

나도 기분이 좋아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수고하십니다.”

버스를 타는데 운전기사가

어서 오세요.”

점심을 먹고 나오며 식당 주인에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작은 꽃잎이 모여 꽃밭이 되듯

반가운 인사가 모여

환한 세상이 된다.

 

 

2018. 4. 19

충청예술문화89(20198월호)

한글문학20(2020년 가을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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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독백

 

 

비 그치자

봄꽃들이 한꺼번에 화르르 타올랐다.

계절이 서둘러 가는 산마루에서

소용돌이치는 시간의 결을 들여다본다.

우리들의 사랑은  옛날처럼

순차적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매화가 질 때쯤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질 때쯤 철쭉꽃이 피고

지천으로 널려 폈다

일시에 지고 마는 꽃이 아니라

질릴 때쯤 새 꽃으로

연달아 피어나는 사랑이고 싶다.

 

 

2018. 4. 9

문학사랑127(2019년 봄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