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어느 여름날

 

호박 덩굴 감아 올라간 흙담 밑이 고향이다.

말잠자리 깊이 든 잠 한 토막 끊어내어

무작정 시집보내던 어린 날의 풋 장난

 

담 따라 옥자 순자 송이송이 피어나면

일없이 호박벌처럼 온 종일 헤매던 골목

밥 먹자 부르던 엄마 감나무에 걸린 노을

 

건넛산 부엉이 울음 방죽엔 처녀 귀신

쪽 달빛 한 줌이면 콧김으로 날려버린

그 세월 먼 듯 가까이 안개처럼 아른댄다.

 

 

2019. 7. 31

posted by 청라

벽파진 함성

 

 

아픔에 꺾이지 않는 것들은

모두 함성으로 살아있다.

왜란에 반도가 불타오를 때

열 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

바다 물은 섞이고 흘러갔지만

그들의  피는 올곧게 땅으로 스며들어

황토마을 땅들이 왜 붉은지 아는가.

피에서 피로 전해지는

꽃보다도 붉은 마음

아름다운 것들은 세월의 지우개로

지울 수 없다.

벽파진에 와서 눈을 감으면

파도 소리에도 바람 소리에도

그들의 함성은 천 년을 살아있다.

 

2019. 7. 27

posted by 청라

토마토

토마토

 

 

너무 익어서

미소 한 번 보내면

톡하고 떨어지겠다.

 

이쁜이처럼

 

2019. 7. 26

posted by 청라

나무

나무

 

 

나무는 허리를 곧게 펴고 서있다.

둥치 감아 올라오는 칡덩굴의 초록빛에

칼날이 번득여도

허리를 굽히는 법이 없다.

 

꼭대기까지 다 덮어

숨 쉴 공간 하나 없어도

하늘 향해 뻗어 나가던 꿈마저

다 막혀도

나무는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작은 틈으로 바라보면

산은 온통

풀들의 분노를 활활 피워 올린

검붉은 칡꽃 밭

 

풀들은 공생할 줄을 모른다.

욕심을 한 뼘이라도 더 뻗어

세상의 진액을 남김없이 빨아댈 뿐

 

온 산을 기세 좋게 휘감은 저 풀들의 반란

산을 지키는 것은 풀이 아니다.

칡덩굴이 무성할수록

산은 황폐해진다.

 

수만 톤의 무게가 찍어 눌러도

나무야, 절대 허리를 굽히지 말자.

뿌리를 넓고 튼튼하게 벌려

모진 장마가 할퀴고 지나갈 때에

산을 지켜주자.

 

 

2019. 7. 6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