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눈물

살구꽃 눈물

 

 

돌담 허물어진

산 아래

빈 집 뜰에

 

혼자서

살구꽃이

눈물처럼 지고 있다.

 

작년 봄

산으로 가신

할아버지 그리워서

 

 

2020. 4. 28

posted by 청라

청령포 관음송觀音松

 

 

남쪽은 층암절벽 서강이 곡류曲流하여

세상과 끊어져서 구름 밖에 아득한 곳

나라님 날개 꺾이어 새처럼 추락한 곳

 

하늘이 무너진 날 옥가獄街에서 통곡하고

목숨을 걸어놓고 동을지冬乙旨에 안치했네.

충의공忠毅公 저 붉은 충절 세세년년 빛나리라.

 

임의 맑은 혼은 관음송觀音松에 스며들어

나라의 위기 앞에 표정 바꿔 경고하네.

후손아, 옷깃 여미고 저 기상을 이어가자.

 

 

2020. 4. 23

posted by 청라

가을 강 비 내릴 때

가을 강 비 내릴 때

 

 

사비성 아우성이

백마강에 가라앉아

백제 한

쪼아보려

부리를 박은 물새

 

역사는

비에 젖어도

단풍으로 타고 있다.

 

 

2020. 4. 21

posted by 청라

들꽃

들꽃

 

 

나 들꽃이라 무시하지 마라.

 

못난 꽃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다 외면할 때도

 

나는

거친 땅에서 싹을 틔워

어두운 들을 밝힐 꽃대를 세운다.

 

폭풍이 불어

모든 꽃들 다 누워 일어서지 못할 때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불의不義에 맞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일어선다.

 

밟을수록

더욱 끈질기게 일어나

꺾여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꽃을 피워

어두운 세상 환하게 덮는다.

 

 

2020. 4. 19

문학사랑132(2020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강가에서

강가에서

 

 

저 물 흐르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더 자연스럽게

 

막히면 돌아가고

둑이 있으면

채우고 또 채워 넘어가는

 

강가에 서 있으면

세상 살아가는 바른 도리가

보일 듯도 하다.

 

작은 미움에도 갈기를 세워

분노의 물거품 일으키며

때로는 폭포로 떨어지던

산골 물소리 같은 젊음을 흘려보내고

 

이제는 하늘도 산도 가슴에 품고

, 작은 잠자리 그림자

풀꽃들의 향기도 품으며

 

바람이 속삭이다 가는

시간의 어느 굽이를

어쩌다 이만큼 흘러왔는가.

 

바다가 보이는 삶의 하류에서

미운 것도 예쁜 것도 섞여서 잔잔해지는

깨어지지 않을 평화를 보았네.

 

 

2020. 4. 17

대전문학88(2020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전화 한 통

전화 한 통

 

 

일없이 뒤숭숭해

지는 꽃 바라보네.

적막에 갇혀 살며

시들시들 야위다가

만나잔

전화 한 통에

다시 활짝 피는 봄날

 

 

2020. 4. 9

posted by 청라

 

 

향기 있는 사람끼리

마음 비비며

저런 빛깔로

사랑했으면 좋겠네.

 

피어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저런 말씀으로

살았으면 좋겠네.

 

 

2020. 4. 8

 

 

posted by 청라

백마강 물새 울음

 

 

백마강 물새들은 아직도

백제 말로 운다.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궁궐터에 가서

연화문蓮花紋 기와를 쪼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백마강으로 와서

고란사 종소리와 화답和答한다.

 

백마강 물새 울음엔

피를 통해 전해지는

향기 같은 게 있다.

 

하오下午의 물그림자가 담고 있는

풀꽃들의 춤

 

듣고 있으면 어깨부터 출렁이는

신기神氣 같은 게 있다.

 

 

2020. 4. 8

시와 정신72(2020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고승高僧

고승高僧

 

 

밤 새워 독경讀經해도

멍울처럼 안 풀리는

 

목탁木鐸을 만 번 쳐도

바람인 듯

안 보이는

 

참 도

남의 아픔에

손을 잡아 주는 것

 

 

2020. 4. 2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