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시/제7시집 2023. 12. 23. 08:52

첫눈

 

 

바람 편에 배달된

아내의 걱정

 

이 먼 들녘까지 따라왔구나

 

정겨운 잔소리처럼 팔랑대는

기차의 창문 너머로

 

평생을 몰래 숙성시킨

속말을 보낸다

 

아내여

멀리 보내놓고

두근거리는 가슴처럼 날리는 눈은

 

다음 또 다음 생애에서도

천 년을 함께하고픈

내 마음이다

 

posted by 청라

낮달

시/제7시집 2023. 12. 12. 17:05

낮달

 

 

새 신을 사시고도

어머닌 오래도록 헌 신을 기워 신으셨다

 

찢어진 데가 또 찢어져 발가락이 나와도

시렁 위에 모셔둔 신발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저 건너로 가시고 난 후

 

너희들이나 신으라고 어머니 벗어놓고 간

하얀 고무신 한 짝

 

어머니

저승의 주막집까지 

맨발로 절뚝이며 가셨는가요

 

오늘도 끼니 거르신

창백한 얼굴이 가을 하늘에 슬프다

posted by 청라

두 석상의 하나 되기

시/제7시집 2023. 12. 10. 09:11

두 석상의 하나 되기

 

 

통일 전망대 내리는 비엔 소금기가 배어있다

갈 수 없는 마을이 그리워 울다 떠난 사람들의 눈물과

높새바람에 펄럭이던 수많은 소망들이

포말처럼 부서져서 해당화로 피는 곳

남해에서 달려온 꽃바람이 철조망에 막혀

한숨으로 시드는  곳

겨울만 사는 동네는 봄이 와도 쪽문을 열지 않는다

산 하나 넘으면 저기가 고향인데

나의 그리움은 늘 우연雨煙에 가로막힌다

두고 온 어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고향 마을의

학 울음소리

나의 어린 시절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봄이면 제비처럼 찾아와 울던 고향이 함흥이라는

그 할아버지

발걸음 뚝 끊긴지 오래인데

아직도 하나가 되어 하늘에 닿지 못하였는가

미륵불 성모 마리아 두 석상의 기도는

이산가족의 간절한 소망처럼 끝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잎새 툭 하고 떨어지고

국토는 아직도 굳게 동여맨 허리띠를 풀지 않는다

 

posted by 청라

가을 산

시조/제3시조집 2023. 12. 8. 08:26

가을 산

 

 

시든 몸 빛바랜 얼굴

저리 고울 리가 없다

 

한여름 모진 신열

용암처럼 들끓다가

 

갈바람

서리로 식혀

아우성을 놓는 자태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