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시/제7시집 2025. 12. 9. 13:20

조약돌

 

 

저 돌들이 처음부터

저리 동글동글 했던 건 아니다

 

우주만 한 바위였다가

 

뿔처럼 모났던 젊은 날의 객기

다 깎아내고

 

사랑의 기쁨과

멍울처럼 금간 아픔도 다 갈아내고

 

마침내 오랜 세월의 숫돌에

모든 미련까지 다 털어내어

 

밤톨만 해진 무정만 남아

저리도 반질반질

빛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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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시/제7시집 2025. 12. 6. 10:03

우리들의 천국

 

 

서귀포 앞 바다는 지금도 만원이다

 

고추냉이 맛 세상의 바람도

여기 와서는

숨죽은 채 야자수 잎에 머물고

 

흰 말떼처럼 갈기 휘날리는 파도는

초원을 휘저으며 뛰놀고 있다

 

전생의 반쪽을 만나듯

서귀포 동백꽃은

봄이 설레어서 몰래 붉는가

 

밭머리에 선 돌담처럼

가슴마다 구멍 뚫린 채 한숨에 젖던 사람들도

모두 꽃빛으로 향기롭게 익는구나

 

단비에 머리 감은 한라산아

정갈한 네 정수리까지 다 드러나는

아침이 오면

 

외돌개 눈망울 걸어놓은 먼 수평선에

흰 돛배 하나 떠서 오겠지

 

 

 

 

 

posted by 청라

산사 가는 길

시/제7시집 2025. 11. 28. 07:45

산사 가는 길

 

 

풍경소리는

그냥 내려오는데

나는 마중 나왔다고 반겨주고

 

산꽃 향기는

어제나 그제나 똑같은데

오늘만 특별히 향기롭다고

박수를 친다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엔

초록을 밟고 가는 바람에도

가슴이 뛴다

 

불당 가득 채운 미소에

어서 기대고 싶은 욕심에

지름길로 들어서면

 

돌아가는 길이 빨리 가는 길이라고

뻐꾹새 운다

posted by 청라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

시/제7시집 2025. 11. 22. 10:48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처럼

능소화 송이들 중 그냥 한 송이

 

어울려 핀 모습은 화려하지만

자세히 보면

미소 뒤에 감춰진 저 단단한 멍울

 

아프다 아프다 해도 소용없으니

능소화는

그냥 입다물고 시들어간다

 

그래도

이름 없이 돋았다 지는 풀이 아니라

꽃으로 핀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픔 없이 사는 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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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가시

시/제7시집 2025. 11. 20. 15:16

탱자 가시

 

 

예쁜 꽃으로 필 야망은 조금도 없다

 

연분홍 향기로 몸단장하고

꺾어갈 사람 애타게 기다리며

가슴 졸일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항시 하늘 향해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벌 나비도 새들도 안을 수 없는

천형의 몸이라 해도

 

부정한 것들에 몸을 숙이지 않고

옳은 것은 옳다고 지키며 사는

진초록 마음을 지닌 사내로 살겠다

 

 

 

 

posted by 청라

인구 절벽 앞에서

시/제7시집 2025. 11. 15. 09:23

인구 절벽 앞에서

 

 

나무가 없으면

산이 아니다

 

풀이 없으면

들이 아니다

 

사람이 없는데

나라라고 온전할까

posted by 청라

시/제7시집 2025. 9. 28. 09:45

 

 

아침나절

갑자기 솟아오른 비둘기처럼

 

신문마다 방송바다 날개 펄럭이는

사제 뉴스 한 마디

 

세균처럼 번식해서 세상을 잡아먹는

말말말

 

말에 묶인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지향 없이 가고 있다

 

밥과 군대는 넘치는데

믿음이 없구나

 

서로 발 걸고 쿵하고 넘어지는

화려한 꽃들

posted by 청라

달빛 이불

시/제7시집 2025. 9. 15. 08:53

달빛 이불

 

 

사르륵 사르륵

누군가 오는 발자취 소리에

잠 깨어 보니

 

따스한 새벽 달빛

창을 넘어 들어와

아내의 종아리를 덮어주고 있다

 

다 잊고 편히 쉬세요

평생 고생했어요

 

달빛 한 자락 손에 쥐고

울컥 치솟는 울음을 참지 못했네

posted by 청라

어깨동무

시/제7시집 2025. 8. 30. 08:41

어깨동무

 

 

당신의 맑은 미소가 된서리를 맞던 그 날까지

우리 인생은 아직

한여름인 줄 알았습니다

찍혀 나온 사진에 숭숭 구멍 뚫린

소중하게 쌓아온 것들 잘려나간 멍 자국을 보면서

이제 나도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행복한 날들은 왜 이리 짧은 걸까요

긴 머리에 보랏빛 원피스

당신의 봄날은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함께 걷는 삶의 길에 시름없이

국화꽃이 피었다 시들어갑니다

나의 힘든 날들을

당신이 나누어 이고 왔듯이

당신의 힘든 날은 내가 나누어 지고 가려 합니다

아픈 고갯길 어깨동무로 함께 갑시다

 

posted by 청라

이인삼각

시/제7시집 2025. 8. 18. 20:28

이인삼각

 

 

발이 맞지 않는다고

끈을 풀 수가 있나

붙안고 달려온 길 몇 십 년인데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