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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7시집에 해당되는 글 28건
- 2024.08.02 하일夏日 점묘點描
- 2024.07.11 늙은 투사의 저녁 술자리
- 2024.06.18 천 년의 울음
- 2024.06.13 아내는 착한 치매 중
- 2024.02.25 남산 뻐꾸기
- 2024.01.22 목줄
- 2023.12.23 첫눈
- 2023.12.12 낮달
- 2023.12.10 두 석상의 하나 되기
- 2023.11.25 소리의 틀
글
하일夏日 점묘點描
매미소리 한 줄금
골목을 쓸고 간 후
배롱나무 가지에 타오르는
늦더위 송이송이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진
마을회관 공터에는
고추잠자리만 하루 종일 맴돌다 간다
소 울음 닭소리도 잦아든 지 오래
노인 하나 산으로 가면 한 집씩
사립문 닫히는 마을
봉숭아꽃 몇 번을 피었다 져도
금줄 걸린 집 하나 찾을 수 없고
접동새 흐느낌만
어둠처럼 내리고 있다
글
늙은 투사의 저녁 술자리
친구들 더러는 여의도에 가고
모두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신문마다 이름들 반짝반짝 빛나는 저녁
혼자 앉아 김치 안주로
소주 몇 잔 꺾고 돌아앉는 어둠에
푸념처럼 슬그머니 떠오르는
벼린 초승달
무엇을 이루려고 젊은 날을 불살랐는지
권력놀음에 취해
서로에게 총질하는 서글픈 창문 너머로
삭막해진 산하를
그래도 촉촉하게 붙잡아주는 개구리 소리
글
천 년의 울음
백제의 노을 새 옷처럼 걸치고
낙화암에 서서
강물의 흐름에 녹아있는 시간의 결을 들여다보면
어떤 슬픔은 천 년을 가는 것도 있다
해가 갈수록 이끼처럼
푸르러지는 것도 있다
와당에 새겨진 눈부신 웃음에도
눈물은 숙성되어 짠해지고 있었다
고란사 종소리가 백마강에 윤슬로 반짝일 때면
잔잔하던 가슴의 깊은 어디쯤에선가
용암처럼 뭉클뭉클 솟아나는 인연의 울림
아, 나는 피에서 피로
천 년의 울음을 물려받은
백제의 후손
부소산 그늘에 기대어 한참을 흐느끼다가
그 날의 함성을 떠올려 보니
궁녀들 울음도 천 년을 살아
낙화암 진달래는
핏빛으로 붉더라
슬픔 밴 백마강은 쉬지 않고 울더라
글
아내는 착한 치매 중
오월 산은 빛나는 에메랄드
꾀꼬리 노래가
송이송이 금계국 잎 사이에 꽃을 매달면
신바람 난 아내는 만나는 사람마다
머스캣 한 줌씩 나누어준다
아내의 시계는 일곱 살로 돌아갔다
무의식 속에서도 빼앗는 것보다는
주는 것을 즐기는 아내
아내의 세상은 장밋빛인데
함께 걸어가는
나의 세상은 먹오디 빛이다
글
남산 뻐꾸기
남도에서 온 사람도 북도에서
온 사람도
뻐꾸기 노랫소리 들으면 눈물이 난다
서울이 온통 고향 산처럼
초록 물드는 오월이 오면
남산 뻐꾸기 짝을 부르듯
고향 사투리로 노래를 한다
봉수대에서 한 나절 초록을 품고있다가
팔각정으로 와서
도시의 소음들을 말갛게 씻어놓는다
남산 뻐꾸기 목소리
골목마다 구성지게 흘러넘치면
서울 사람들 모두 편안해진다
한 고향 사람처럼 어깨동무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연 이웃이 된다
글
목줄
아내가 목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다
파란 힘줄이 앙버틴 양 다리에서 소름처럼 돋아난다
눈 감고 생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동행하는 나의 목에도 줄이 매어져 있다
살아있는 것들의 목엔 모두 굴레가 채워져 있다
인생이 개처럼 인연의 목줄에 꿰여
덧없이 끌려가는 운명이라 해도
가장 낮은 자리가 내 자리라고 웃으면서 살아가자
지금은 혼자 다독이는 슬픔에 절어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삶이라 해도
잘 말린 구절초 꽃잎처럼
우릴수록 향이 깊어지는 그런 사림이 되자
올무에 옭힌 세상은 온통 눈밭이지만
나 혼자만 매화로 피어날 수는 없다
글
첫눈
바람 편에 배달된
아내의 걱정
이 먼 들녘까지 따라왔구나
정겨운 잔소리처럼 팔랑대는
기차의 창문 너머로
평생을 몰래 숙성시킨
속말을 보낸다
아내여
멀리 보내놓고
두근거리는 가슴처럼 날리는 눈은
다음 또 다음 생애에서도
천 년을 함께하고픈
내 마음이다
글
낮달
새 신을 사시고도
어머닌 오래도록 헌 신을 기워 신으셨다
찢어진 데가 또 찢어져 발가락이 나와도
시렁 위에 모셔둔 신발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저 건너로 가시고 난 후
너희들이나 신으라고 어머니 벗어놓고 간
하얀 고무신 한 짝
어머니
저승의 주막집까지
맨발로 절뚝이며 가셨는가요
오늘도 끼니 거르신
창백한 얼굴이 가을 하늘에 슬프다
글
두 석상의 하나 되기
통일 전망대 내리는 비엔 소금기가 배어있다
갈 수 없는 마을이 그리워 울다 떠난 사람들의 눈물과
높새바람에 펄럭이던 수많은 소망들이
포말처럼 부서져서 해당화로 피는 곳
남해에서 달려온 꽃바람이 철조망에 막혀
한숨으로 시드는 곳
겨울만 사는 동네는 봄이 와도 쪽문을 열지 않는다
산 하나 넘으면 저기가 고향인데
나의 그리움은 늘 우연雨煙에 가로막힌다
두고 온 어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고향 마을의
학 울음소리
나의 어린 시절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봄이면 제비처럼 찾아와 울던 고향이 함흥이라는
그 할아버지
발걸음 뚝 끊긴지 오래인데
아직도 하나가 되어 하늘에 닿지 못하였는가
미륵불 성모 마리아 두 석상의 기도는
이산가족의 간절한 소망처럼 끝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잎새 툭 하고 떨어지고
국토는 아직도 굳게 동여맨 허리띠를 풀지 않는다
글
소리의 틀
다듬이 소리
봄날 배꽃 피어나는 달밤 산골 물소리처럼
마을 골목을 쓸고 가던 그 소리엔
누나가 수틀에 그리던 꿈이 살고 있다
빨래방망이 소리는 어머니 한숨
밤낮으로 일을 해도 자식들
대처로 학교 못 보내는
평생 푸념 같은 아픔이 배어있다
베 짜는 소리 속엔 할머니
삶의 여유가 들어있다
눈물도 웃음도 날줄로 쌓여
오래 묵은 대추나무 같은 세월이 거기 있다
사랑방에는
아버지 기침소리가 살고 있어야
제 맛이다
고달픈 삶을 기워 짜놓은 자리만큼
질기지만 위태롭던
아버지의 등
소리에도 틀이 있다
세월의 강물에 다 쓸려가 아득하지만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가두어놓은
그리운 것들은 다 소리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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